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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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는 죽음의 도구일 뿐이고, 나를 휘두르는 것은 여러분의 손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당신과 당신 부모님,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다른 모두가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사람이지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욕망은 무엇일까? 죽음 없이 영생을 얻는 것 아닐까? 그랬기에 수천 년 전 진시황을 비롯한 많은 인간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불사의 약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미래에 인류의 그 꿈이 이루어졌다. 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려도, 사고가 일어나도, 설령 죽었더라도 재생센터에 가면 다시 살아난다. 물론 다치고, 아픈 몸이 아닌 정상의 몸으로 말이다. 거기에 늙은 몸을 다시 되살리는 회춘까지 할 수 있다. 현재 나이가 몇 살이건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다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삶을 이어간다. 몇 번이건 간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위협을 겪게 된다. 사람이 태어나기는 하는데, 죽지 않기에 사람으로 포화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어떤 편견도, 악의도 없이 수확자의 선택을 받으면 더 이상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수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은 1년간 수확을 당하지 않는 면제권을 받게 된다.

평범한 저녁, 역사연구가인 아빠, 식품 합성 기술자인 엄마 그리고 딸 시트라 테라노바와 아들 벤까지 4명의 가족이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시트라의 집에 불청객이 등장한다. 바로 고결한 수확자 패러데이였다. 수확자의 등장은, 가족 중 누군가가 곧 죽음을 맞는다는 뜻이다. 가족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패러데이와 같이 식사를 한다. 조금의 말실수가 있을까 봐 엄마 제니 테라노바는 전전긍긍한다. 다행이라면, 오늘 시트라의 집에서 패러데이의 수확을 경험할 사람은 없었다. 이웃집 사람을 수확하러 왔는데, 기다리다 지쳐 단지 배가 고팠기에 시트라의 집에 온 것이다. 궁금한 것은, 속에 품고 있는 것은 뿜어내고 마는 성격의 시트라인지라 다들 두려워하는 수확자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렇게 패러데이와 시트라는 인연을 맺게 된다.

햄버거의 양상추 취급을 당하는 로언 데이미시는 학교에서 여러모로 특출한 능력을 지닌 친구 콜 휘틀록이 패러데이에게 수확당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스러운 로언. 그날 이후로 로언은 학교에서 투명 인간이 된다. 친구를 지키기 못했다는(수확자의 뜻을 거부하는 경우 가족까지 다 수확 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유로 왕따 아닌 왕따가 된다. 화가 난 로언은 패러데이가 자신의 삼촌이고, 다음은 자신이 말한 사람이 수확당할 거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 이후 친구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로언을 피한다.

시트라와 로언. 둘다 수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초대된 vip석에서 둘은 그들을 초대한 수확자 패러데이를 만난다. 그리고 패러데이로부터 수습 수확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물론 둘 중 단 한 사람만 말이다. 사람을 수확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둘은 패러데이의 초대에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패러데이와 함께 수확하는 자리에 머물다 보니, 패러데이라는 수확자가 인간적이라는 사실에 조금씩 좋은 감정이 생기고, 자연스레 수확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일이 꼬인다. 수확자들의 모임인 콘클라베에 참여했다가 수습을 둘이나 둔 것에 반감을 가진 다른 수확자에 의해 새로운 규칙이 생긴다. 수습 둘 중 하나가 수확자가 되면 신임 수확자의 손에 다른 한 사람이 첫 번째로 수확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이 일로 패러데이는 스스로 수확(자살) 하게 된다. 졸지에 스승을 잃은 로언은 잔혹하고 자기 멋대로 수확을 해치우는 고더드에게로, 시트라는 수확자의 대모로 불리는 퀴리에게 가게 되는데...

불멸의 존재가 된 인간에게 죽음은 꼭 필요하기에 수확자가 생겼다는 내용 자체가 참 무시무시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죽음(책 속에서는 사망 시대라고 부른다.) 역시 누구에게나 수확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오지 않나? 물론 수확당한 사람의 가족은 1년간 죽음이 유예된다는 사실을 보자면 오히려 수확자가 있는 시대가 덜 고통스러울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름의 규칙과 계명이 있다고 하지만, 수확자들 속에도 이권과 욕심이 개입되어 조금씩 망가지는 듯한 상황이 펼쳐진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인간들이 내미는 뇌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수확함으로 그가 가진 소유를 챙기는 수확자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비단 죽음만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수확자 시리즈는 총 3권이라고 한다.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벽돌 책임에도 술술 익히는 걸 보면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시트라의 스승이 되는 퀴리의 수확 일기가 매 이야기 말미에 펼쳐지는 것도 또 다른 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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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랏소에
달시 리틀 배저 지음, 강동혁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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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내 상상 이상의 것을 늘 보여주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처음에는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몇 번 했다. 다행이라면 30페이지 정도 진도를 나가니 이야기가 조금 눈에 들어왔다. 물론 생각보다 더디게 읽히긴 했지만...

엘랏소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엘리의 본명이다. 엘리는 아파치 부족이다. 엘리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그의 옆에는 죽은 반려견 커비가 있다.(이 부분이 도입부에 이해를 막았다. 나중에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음에도;;) 덕분에 엘리는 커비를 느낄 수 있다. 죽음의 공포나 이별이 덜 고통스럽다. 엘리는 이런 능력을 벗 삼아 초자연현상 수사관이 되는 것이 꿈이다. 사실 엘리의 이런 능력은 모계 유전을 통해 전해졌다. 8대조 할머니가 엘리와 같은 탁월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엘리의 엄마도 그런 능력이 있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만 발현된다. 그런 엘리의 능력을 사용할 일이 생겼다.

엘리의 사촌인 트레버가 사망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트레버의 죽음에 패닉이 된 가족들. 엄마 역시 트레버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트레버의 집으로 향하기로 한다. 근데 엘리가 꿈을 꾼다. 피를 흘리는 트레버가 나타난 것이다. 트레버는 자신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게 아니라고 한다. 범인으로 한 사람을 지목한다. 바로 윌로비 마을 출신 에이브 앨러턴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켜달라는 트레버의 모습을 본 엘리. 아빠에게 꿈 이야기를 전하지만, 아빠는 경찰이 밝힐 것이니 우선은 시간을 주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엘리의 능력을 아는 아빠는 엄마와 함께 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엘리와 함께 하는 친구 제이와 앨. 그들과 함께 엘리는 사건을 파헤치고자 하는데...

이미 초반에 범인이 밝혀진 상태지만, 트레버의 사인이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여정은 생각보다 길다. 물론 중간중간 8대조 할머니의 활약상도 등장하고, 그와 함께 부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일까? 생각보다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엘리라는 10대 소녀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친구들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일은 흥미로웠다. 범인이라 밝혀진 에이브 앨러턴이라는 사람이 명망 있는 의사이자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사건을 더 눈에 띄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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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니타 프로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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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그녀 몰리 그레이는 리전시 그랜드 호텔의 메이드다. 객실 안에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돌려놓는 일을 하는 사람 메이드. 할머니 플로라와 함께 사는 몰리는 순진하고, 본 그대로 믿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은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 몰리를 동료들은 은근히 따돌린다. 호텔에서의 하루를 퇴근 후 할머니에게 들려주고 조언을 구하는 몰리. 할머니는 늘 몰리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사망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텐데, 우리의 몰리는 다음 날 출근을 강행한다. 놀란 호텔 매니저 알렉산더 스노우는 몰리에게 쉬기를 권유하나, 몰리는 내가 죽은 게 아니고 할머니가 죽었기에 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는 절대 꼼수나 대충이 허용되지 않는 몰리. 그녀가 담당하는 스위트룸 중에는 재벌로 알려진 찰스 블랙과 그의 트로피 와이프인 지젤 블랙이 자주 머문다. 우연히 지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몰리는 지젤과 친구가 된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청소를 위해 블랙 부부의 방을 방문한 몰리는 지젤이 울며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욕실을 제외한 다른 곳을 청소하는 중, 지젤이 나오자 욕실 청소를 하겠다는 몰리에게 나중에 하라며 내보내는 지젤. 평소와 다르긴 했다. 울었는지 눈이 빨간 지젤이 안쓰럽기도 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데 지젤은 거부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한 블랙 부부의 방. 욕실만 정돈하면 되었는데, 방 상태를 보니 전부 다시 청소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찰스 블랙을 보고, 처음에는 쉬고 있다고 생각했던 몰리는 평소와 다른 찰스에 모습에 가까이 가보는데 그가 죽어있다. 급하게 프런트에 전화를 하는 몰리. 시신을, 그것도 호텔 VIP의 시신을 목격하다니... 졸지에 참고인이 되어 스타크 형사의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충격을 받은 몰리를 위해 스노우씨는 쉬라고 하지만, 수석 메이드인 셰릴 그린의 꼼수 덕분에 일손이 모자라고 몰리가 출근을 하게 된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셜바 애드 그릴의 매니저인 로드니 스타일스는 전날 경찰 조사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데이트라고 착각하는 몰리. 몰리는 과거 로드니의 요청으로 머물 곳이 없는 후안 마누엘을 빈 호텔방에 넣어준 적이 있다. 그러면서 후안 마누엘의 짐이라며 가방을 침대 아래 넣어달라는 부탁을 매번 했다. 과연 그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참고인이자 목격자였던 몰리는 여럿의 계략에 빠져 졸지에 찰스 블랙을 살인한 살인자가 된다. 그녀가 한 것은 그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사실은 몰리를 이용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일 뿐인데 말이다. 다행히 몰리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의 오랜 친구였던 프레스턴씨와 그의 딸인 샬럿 그리고 로드니에게 그동안 이용당하며 수차례 협박을 받았던 후안 마누엘까지...

과연 우리의 몰리는 진실을 밝히고, 찰스 블랙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낼 수 있을까? 또한 다른 사건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가방에 대한 진실도 밝혀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을 오히려 바보나 호구로 여기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몰리가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몰리의 천성 때문이었다. 역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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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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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알기에 굽은 나무는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도 싫어하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와 마주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어령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여가 되었지만 그의 주옥같은 글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4권의 한국인 이야기를 참 흥미롭게 읽었는데,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가 남아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총 6권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책의 제목은 별의 지도다. 전 편보다 이해가 쉽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어령 교수 특유의 소위 꼬부랑 고개처럼 연관 고리를 이어가는 글은 이번에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천지인과 윤동주의 서시 일 것이다. 천지인은 무엇일까? 천은 하늘(天), 지는 땅(地), 인은 사람(人)을 말한다. 동양의 문화 속에는 천지인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게 많다. 당장 임금 왕(王) 자를 봐도 천지인의 석삼(三)을 수직으로 이은 것으로, 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곁들여 현재의 리더들에게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만을 얻는 것, 왕 자에서 하늘을 걷어내면, 흙 토만 남게 된다. 투표자의 마음뿐 아니라 하늘의 의미까지 알아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책 속에는 천지인과 더불어 지역주의, 연고주의를 넘은 세계인을 아우르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또한 등장한다. 형나라 사람이 활을 읽어버린 이야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형 자를 떼고(국가를 벗어나) 사람(인류)의 단계로, 거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책 속에는 유난히 시가 많이 등장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수영의 풀, 안도현의 나무에 대하여 등 학창 시절 수능을 준비하며 정말 많이 보고 배웠던 시를 이렇게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냥 의미 없이 달달 외웠던 시의 실제 의미를 나이가 들어 다시 접하니 자연히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슬픔이 담긴 시라고 배웠는데, 저자는 시를 다시 풀어준다. 진달래꽃은 절대 이별한 후의 감정을 표현한 시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한 시라고 말이다. 바로 시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if(가정법)이 등장하는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별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할 것이기에 이 시는 절대 이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시다. 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들어보면, 조금 더 살피면 실제 뜻을 파악할 수 있는데 설레발을 치고 실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별의 지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시로 저자는 윤동주의 서시를 꼽는다. 서시에 등장하는 "별"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를 저항시로 읽을 때와 의미 그대로 읽을 때 풀어내는 뜻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사실 서시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과거시제) 것은 "괴로워했다"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앞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미래 시제다. 사람 앞이 아닌 하늘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알았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향해 꿈을 꾸는 삶.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세상의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죽음을 맞이한다)을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삶. 그의 시 안에도 천지인이 담겨있다.

별(하늘)의 지도와 지상(땅, 사람)의 지도. 한국의 문화 속에 담겨있는 지도를 통해 또 다른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는 어떤 주제를 담고 펼쳐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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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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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고,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풀어내지 않은 진실이 궁금해진다.

7살 하원과 5살 상원을 키우는 전업주부 연정하는 같은 대학 출신 남편 오원우와 22평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맞은편에는 60평 아파트동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날이면, 정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소위 사모님이라 부르는 60평 여자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뱀 같은 그 눈, 정하는 왠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은 그 눈 때문에 답답하다. 늦은 밤 퇴근하여 거실에서 자는 남편과는 각방 생활을 한 지 오래다. 그날따라 딸 하원이가 침대로 파고들었고, 하원이를 재우던 중 문소리를 듣는다. 남편이다. 근데 화장실에서 씻는 시간이 길다. 피곤하다며 대충 씻고 자는 사람인데 말이다. 몰래 화장실로 향하던 정하는 피 칠갑을 한 남편을 보고 경악한다. 온토 피바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원이 깨기 전에 얼른 방으로 들어간 정하.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것이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남편을 출근시키고, 정하는 먼 슈퍼에서 락스를 여러 통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꼼꼼히 화장실을 청소하고, 세탁기에 들어있는 피 묻은 양복을 빨아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손잡이에 피가 묻은 우산도 챙겨 넣는다. 흉기는 보이지 않는다. 아들 상원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수습을 해야 하는 정하는 겨우 환기를 시킨다. 헐레벌떡 들어온 정하에게 상원은 치킨 이야기를 한다. 앞집 아저씨가 치킨을 사준다고 했단다. 상원이를 혼 내려는 찰나, 앞집 남자가 치킨을 들고 온다. 사양하지만, 굳이 치킨을 건네는 남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남편이 저지를 일을 수습하기 위해 가방을 갖다 버린다. 사건 며칠 후, 호프집 살인사건이 뉴스에 나온다. 그리고 출근한다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3주 후 경찰에 신고를 한다. 왜 3주나 기다려서 신고를 한 것인지, 경찰은 정하를 의심한다. 하지만 정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당당하다. 자신과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남자였지만, 사건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사라진 것이라 애써 마음을 먹는 정하. 그렇게 13년.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어느 날, 아들 상원이 사라진다. 아빠에게 간다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60평 사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파트 사람들끼리 함께 조문을 간다. 상원에게 치킨을 사준 그 남자가 바로 남편이다. 함께 조문을 갔지만, 정하를 힐끗 보는 듯한 그 남자의 표정을 애써 착각이라 생각한다. 혼자 몸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정하는 열심히 산다. 정하에게 호의를 베푸는 앞 동 남자 최우성. 말 옮기기 좋아하는 108호 자영 엄마 말로는 약사, 의사, 제약회사 사장 등 정확한 직업은 모르지만, 의약 쪽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인상도 좋고 깔끔하고 잘생긴 그가 왜 정하에게 자꾸 관심을 갖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년 넘게 그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산다. 혼자인 우성의 딸 지선의 결혼 준비를 돕기도 하고, 반찬을 해서 주기도 한다. 물론 우성은 그런 정하에게 재정적인 도움이나 아이들 먹을 치킨을 보내기도 한다. 하원의 대학 수시 발표 날. 하원과 이야기를 하다 우성과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이미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적극 찬성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우성과의 재혼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원우와 살 때 느껴보지 못한 소소한 사랑을 경험하는 정하.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깨달아가는 정하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우성의 애정이 마냥 고맙다. 그러던 차, 하원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상원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상원의 편지로 원우의 일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전 남편 원우와 현 남편 우성. 정하라는 아내는 같지만, 둘이 정하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정하를 얻기 위해 벌인 일이라기에는 너무 편차가 크다. 애정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와 자녀들을 방치하고 자신 만을 위해 살았던 원우, 그런 원우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간 정하, 한눈에 반한 정하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며 묵묵히 정하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린, 때가 왔을 때 극단의 선택까지 한 우성.

한편, 그럼에도 그동안 누리지 못한 소소하고 고마운 행복을 위해 어두운 과거의 진실을 닫아버린 정하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한다. 누구나 행복을 누리며, 사랑받으며 살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흥미로웠지만, 뭔가 완벽히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조금의 아쉬움이 남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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