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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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알기에 굽은 나무는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도 싫어하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와 마주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어령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여가 되었지만 그의 주옥같은 글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4권의 한국인 이야기를 참 흥미롭게 읽었는데,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가 남아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총 6권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책의 제목은 별의 지도다. 전 편보다 이해가 쉽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어령 교수 특유의 소위 꼬부랑 고개처럼 연관 고리를 이어가는 글은 이번에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천지인과 윤동주의 서시 일 것이다. 천지인은 무엇일까? 천은 하늘(天), 지는 땅(地), 인은 사람(人)을 말한다. 동양의 문화 속에는 천지인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게 많다. 당장 임금 왕(王) 자를 봐도 천지인의 석삼(三)을 수직으로 이은 것으로, 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곁들여 현재의 리더들에게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만을 얻는 것, 왕 자에서 하늘을 걷어내면, 흙 토만 남게 된다. 투표자의 마음뿐 아니라 하늘의 의미까지 알아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책 속에는 천지인과 더불어 지역주의, 연고주의를 넘은 세계인을 아우르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또한 등장한다. 형나라 사람이 활을 읽어버린 이야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형 자를 떼고(국가를 벗어나) 사람(인류)의 단계로, 거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책 속에는 유난히 시가 많이 등장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수영의 풀, 안도현의 나무에 대하여 등 학창 시절 수능을 준비하며 정말 많이 보고 배웠던 시를 이렇게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냥 의미 없이 달달 외웠던 시의 실제 의미를 나이가 들어 다시 접하니 자연히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슬픔이 담긴 시라고 배웠는데, 저자는 시를 다시 풀어준다. 진달래꽃은 절대 이별한 후의 감정을 표현한 시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한 시라고 말이다. 바로 시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if(가정법)이 등장하는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별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할 것이기에 이 시는 절대 이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시다. 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들어보면, 조금 더 살피면 실제 뜻을 파악할 수 있는데 설레발을 치고 실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별의 지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시로 저자는 윤동주의 서시를 꼽는다. 서시에 등장하는 "별"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를 저항시로 읽을 때와 의미 그대로 읽을 때 풀어내는 뜻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사실 서시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과거시제) 것은 "괴로워했다"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앞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미래 시제다. 사람 앞이 아닌 하늘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알았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향해 꿈을 꾸는 삶.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세상의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죽음을 맞이한다)을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삶. 그의 시 안에도 천지인이 담겨있다.

별(하늘)의 지도와 지상(땅, 사람)의 지도. 한국의 문화 속에 담겨있는 지도를 통해 또 다른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는 어떤 주제를 담고 펼쳐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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