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고,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풀어내지 않은 진실이 궁금해진다.
7살 하원과 5살 상원을 키우는 전업주부 연정하는 같은 대학 출신 남편 오원우와 22평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맞은편에는 60평 아파트동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날이면, 정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소위 사모님이라 부르는 60평 여자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뱀 같은 그 눈, 정하는 왠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은 그 눈 때문에 답답하다. 늦은 밤 퇴근하여 거실에서 자는 남편과는 각방 생활을 한 지 오래다. 그날따라 딸 하원이가 침대로 파고들었고, 하원이를 재우던 중 문소리를 듣는다. 남편이다. 근데 화장실에서 씻는 시간이 길다. 피곤하다며 대충 씻고 자는 사람인데 말이다. 몰래 화장실로 향하던 정하는 피 칠갑을 한 남편을 보고 경악한다. 온토 피바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원이 깨기 전에 얼른 방으로 들어간 정하.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것이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남편을 출근시키고, 정하는 먼 슈퍼에서 락스를 여러 통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꼼꼼히 화장실을 청소하고, 세탁기에 들어있는 피 묻은 양복을 빨아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손잡이에 피가 묻은 우산도 챙겨 넣는다. 흉기는 보이지 않는다. 아들 상원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수습을 해야 하는 정하는 겨우 환기를 시킨다. 헐레벌떡 들어온 정하에게 상원은 치킨 이야기를 한다. 앞집 아저씨가 치킨을 사준다고 했단다. 상원이를 혼 내려는 찰나, 앞집 남자가 치킨을 들고 온다. 사양하지만, 굳이 치킨을 건네는 남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남편이 저지를 일을 수습하기 위해 가방을 갖다 버린다. 사건 며칠 후, 호프집 살인사건이 뉴스에 나온다. 그리고 출근한다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3주 후 경찰에 신고를 한다. 왜 3주나 기다려서 신고를 한 것인지, 경찰은 정하를 의심한다. 하지만 정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당당하다. 자신과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남자였지만, 사건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사라진 것이라 애써 마음을 먹는 정하. 그렇게 13년.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어느 날, 아들 상원이 사라진다. 아빠에게 간다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60평 사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파트 사람들끼리 함께 조문을 간다. 상원에게 치킨을 사준 그 남자가 바로 남편이다. 함께 조문을 갔지만, 정하를 힐끗 보는 듯한 그 남자의 표정을 애써 착각이라 생각한다. 혼자 몸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정하는 열심히 산다. 정하에게 호의를 베푸는 앞 동 남자 최우성. 말 옮기기 좋아하는 108호 자영 엄마 말로는 약사, 의사, 제약회사 사장 등 정확한 직업은 모르지만, 의약 쪽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인상도 좋고 깔끔하고 잘생긴 그가 왜 정하에게 자꾸 관심을 갖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년 넘게 그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산다. 혼자인 우성의 딸 지선의 결혼 준비를 돕기도 하고, 반찬을 해서 주기도 한다. 물론 우성은 그런 정하에게 재정적인 도움이나 아이들 먹을 치킨을 보내기도 한다. 하원의 대학 수시 발표 날. 하원과 이야기를 하다 우성과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이미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적극 찬성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우성과의 재혼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원우와 살 때 느껴보지 못한 소소한 사랑을 경험하는 정하.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깨달아가는 정하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우성의 애정이 마냥 고맙다. 그러던 차, 하원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상원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상원의 편지로 원우의 일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전 남편 원우와 현 남편 우성. 정하라는 아내는 같지만, 둘이 정하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정하를 얻기 위해 벌인 일이라기에는 너무 편차가 크다. 애정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와 자녀들을 방치하고 자신 만을 위해 살았던 원우, 그런 원우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간 정하, 한눈에 반한 정하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며 묵묵히 정하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린, 때가 왔을 때 극단의 선택까지 한 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