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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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인 청이 소설을 낸 작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소설 속의 작가의 경험이 담긴 것도 맞는 것 같다. 청 역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냈는데, 그 책에 잃어버린 자전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와 다른 점이라면, 그 자전거의 주인이 아버지였고 아버지 역시 자전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청의 책을 읽은 독자로부터 받은 메일에 자전거의 소재에 대한 궁금증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메일은 청에게 그동안 잊고 있던 자전거 더 나아가 아버지의 존재를 찾기 시작한 원동력이 되었다. 청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자전거는 행복표 자전거였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고물상 주인인 아부로 부터 오래전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전거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막상 본 아버지의 자전거에는 옛날처럼 04886번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상표와 번호 외에는 예전 기억과 많이 다른 자전거였다. 많은 튜닝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자전거는 사실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카페 주인인 압바스의 여자친구 애니의 것이라 들었는데, 그 또한 아니었다. 자전거를 훔쳐 간 범인을 찾으려 이보다는 자전거의 옛 기억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청은 그렇게 자전거의 주인들을 찾아 나선다.

첫 이야기는 압바스의 추억이었다. 군 복무 당시 그가 머물던 곳은 노인들만 남아있는 농촌이었다. 자전거가 필요한 날은 동네에 세워져 있는 노인들의 자전거를 빌려타곤 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노인 라오쩌우와 친해진 압바스는 제대를 얼마 앞둔 날, 라오쩌우로 부터 부탁을 받고 잠수복을 입은 채 물 밑에 들어갔다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라오쩌우를 만나러 간 압바스는 라오쩌우의 자전거를 받게 된다. 라오쩌우의 자전거는 말레이시아 은륜 부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전거는 또 다른 이야기의 매개가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전쟁의 이야기들... 대만을 넘어 말레이시아로, 일본에 의해 아시아의 전쟁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청의 가족 이야기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전쟁의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사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이 책에 등장한 일부 이야기가 작가 우밍이의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 우밍이가 쓴 소설 속에 등장한 자전거의 소재에 대한 독자의 편지를 받았다는 바로 그 대목이다. 그때부터 우밍이는 자전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관심이 바로 이 책 도둑맞은 자전거 속에 아버지의 자전거를 찾아 나선 청의 이야기로 펼쳐진 것이다.

소설이라지만 자전거에 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은 기분도 들고, 역사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당시에는 집 한 채 값에 맞먹어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 색다르기도 했다. 살아있는 나비를 잡아 날개를 뜯어내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고물상을 하는 아부가 자전거상을 운영하는 부부로부터 마음으로 가게 안의 물건들을 인수하는 부분은 나 역시 감정이 이입해 울컥하기도 했다. 도둑맞은 자전거를 통해 청은 과거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기억과, 그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나라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끔찍한 전쟁의 기억 속에는 마냥 끔찍하지만은 않은 기억들도 담겨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어린 시절 자전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살 터울 동생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내 첫 자전거인 세발자전거를 비롯하여, 새벽 배달을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며 따라나선 일까지 말이다. 그때는 그 아파트가 왜 이리 높고 커 보였는지, 아버지의 자전거는 왜 이리 빨랐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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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일리아스 - 트로이의 노래 한빛비즈 교양툰 22
동사원형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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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에 의해 쓰인 인류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 이 책은 고전의 고전이라 불리는 유명한 책이다. 그럼에도 접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서사시임에도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늘 마음에는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만화로 보는"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되니 부담이 한결 덜어진다. 일리아스의 주제는 인간의 분노와 용서다. 여기서 인간은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다. 신인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반신반인이다. 일리아스의 주된 이야기는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과 결을 같이 하는데, 트로이 전쟁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아킬레우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미모를 자랑하는 테티스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았으나, 테티스의 자녀가 아버지 보다 더 위대해진다는 예언 덕분에 그 둘은 결혼을 포기한다. 결국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된 테티스. 그들의 결혼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등장했으니,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였다. 에리스는 자신을 초대하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불화의 씨앗을 놓고 간다. 그 유명한 황금사과다. 문제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이 황금사과를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트로이 전쟁의 서막을 자랑하는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황금사과의 주인이 자신이라 생각하고, 결국 사과 주인을 선택하게 된 것은 트로이의 파리스였다. 이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자신에게 사과를 준다면 권력과 부(헤라), 명예(아테나), 사랑(아프로디테)를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헬레네를 보인다. 문제는, 헬레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유부녀)였던 것이다.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인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파리스의 나라인 트로이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은 사실 인간과 신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파리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헤라, 아테나 그리고 테티스 대 아폴론, 아프로디테, 이리스 등이 합세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우스 또한 등장한다.(나름 중립으로) 전쟁 속에서 포커스가 맞추어진 것은 바로 영웅들이다. 10년간이나 이어진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10일간의 이야기가 일리아스를 통해 풀어진다. 아킬레우스를 비롯하여 헥토르, 오디세우스, 아이아스, 메넬라오스, 아이네이아스, 글라우코스, 파리스 등 익숙한 이름의 영웅들이 격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아킬레우스는 왜 분노를 느낀 것일까? 아킬레우스는 사실 그리스 편에서 굳이 싸울 명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인기녀 헬레네에게 구혼한 사람들은 전쟁에 꼭 참여해야 한다.) 우선 그에게 내려진 신탁은 공적을 세워 이름을 날리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테티스는 아들의 출전을 막았다. 사실 아킬레우스가 전쟁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은 신탁 때문이라기보다는 아가멤논과의 불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장기전이 된 전쟁의 양상이 트로이 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 휘하에 미르미돈 사람들을 이끌고 출전한다. 큰 공적을 세운 것에 휩쓸린 나머지, 아킬레우스의 조언을 잊어버린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절친의 죽음에 아킬레우스는 심한 분노를 느끼고, 복수를 위해 결국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오래된 서사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도 여전히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인간의 삶의 희로애락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복수 그리고 용서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 여신의 싸움에서도 등장했듯이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 또한 삶에서 늘 고민하는 중요한 요소이니 말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절친의 죽음 앞에 자신의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아버지의 비통 그리고 용서에 이르는 인간이 가진 절묘한 감정들을 풀어낸 일리아스. 원전을 읽기 부담스럽다면, 우선은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먼저 접하면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반복되는 옛 것(고전)을 통해 현재의 삶의 영향과 깊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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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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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 보듯 하시는군요? 사과 성명문을 내는 게 먼저 아닙니까?"

"사과요?"

"그래요, 사과.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저지른 경범죄쯤으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떤 발표도 없이 그저 협조하겠다, 한마디뿐이라니

외교 결례도 이런 외교 결례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네 한국은 사과를 그따위로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매우 유감이군요."

세 번째 만나는 고호 작가의 작품이다. 앞 전의 두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 신작인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가까운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북한과 일본의 이야기다. 각기 다른 사건이라 보이는 일들이 접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는가, 사건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으며 읽으며 더 흥미로울 듯싶다.

1991년 4월. 한 여성과 남자아이 둘 그리고 수행비서로 보이는 여성까지 4명이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한다. 그들은 크라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이름을 묻는 직원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가 아유미라고 대답한다. 체크인을 한 카드의 주인은 그레타 박.

그에 앞서 한 사건이 발생한다. 유리코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제 사건이다. 1986년 7월 나가노현에 거주하는 이노우에 유리코라는 여학생이 실종된다. 유리코가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가까이 지냈던 문학 교사 시게무라 역시 행방이 묘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 역시 전부 거짓이었다.

사건을 계속 추적한 경찰 아키라는 시게무라로 보이는 남자가 사라진 시점과 그레타 박이 사라진 시점이 같다는 사실을 찾지만, 위 선에서는 우연의 일치라 무시하고 넘어간다.

2025년 3월.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일왕 나루히토의 외동딸인 아이코가 납치당한다. 범인은 한국인 문준기로 밝혀졌다. 아이코가 사라진 곳인 가쿠슈인 대학에서는 갑작스러운 연기가 퍼진다. 경호원들이 당황한 사이 납치범은 아이코를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이 일로 일본 대사는 외교부를 찾아 사죄를 요구함과 동시에, 범인 문준기의 신병을 일본으로 인계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아이코는 정말 납치된 걸까?

문준기의 할아버지 문수용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인해 홋카이도 탄광마을 유바리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1943년 12월 12월 탄광 제3갱 폭발사고로 조선인 74명이 매몰된다. 그 이야기는 공식 극비문서였던 터라 공개되지 못하다가 2019년 비밀이 해제된다. 평생을 남편이 돌아올 거라 여기며 재가도 하지 않고 살았던 문준기의 할머니.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아들문경상은 결국 아들 문준기에게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그날 이후, 문준기는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연히 하게 된 채팅의 상대는 일본의 고위 관계자였다. 그리고 그의 조부 역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준기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그토록 아버지와 할머니가 염원하던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그 또한 준기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협력하고자 한다. 과연 그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 속의 이야기는 가까운 지리만큼 가까이 얽혀있다.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자신들의 과거사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외교 결례를 들먹이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본의 태도였다. 공주의 목숨과 가치는 대단하고, 자기들의 전쟁에 동원되어 어디에 묻힌 지조차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목숨과 가치는 먼지인가? 아마 저자는 그런 현실을 꼬집기 위해 이런 부분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역사와 인물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기에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씁쓸했던 이야기였다. 생각지 못한 반전과 함께, 책 표지의 문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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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왕 -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
이케이도 준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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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과거의 선수인 것이다.

달릴 수 없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

하코네 러너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마라톤 러너로 성장한 라이벌.

모기는 그이 등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그저 방관할 뿐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사이다 전개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새 장편소설을 만났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처음 만난 건 드라마로도 제작된 한자와 나오키였다.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불의에 굴하지 않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정도를 가며 은행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제적이지만 또 감동적으로 그려졌었기에 그 이후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다. 사실 이케이도준의 소설의 내용 전개는 비슷하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와 은행권의 장난질, 각종 배신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 번의 위기로 기업의 어려움이 끝나고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어려움은 찾아오고, 그때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타개해가는 과정이 통쾌하게 그려져 있다. 이번 작품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일본 전통 버선을 만드는 고하제야의 이야기다. 4대째 이어온 버선 제작 업체인 고하제야는 갈수록 수요가 줄어가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사장인 미야자와 고이치는 가업임에도 사양산업이라 할 수 있는 고하제야를 아들 미야자와 다이치에게 물려주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이 다른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만 임시 직원으로 회사에 둔다. 그날도 백화점 매장 축소로 담당자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딸의 부탁으로 신발을 사러 갔다가, 기묘한 모양의 신발을 발견한다. 비브람사에서 나온 파이브 핑거스라는 신발인데, 착용감이 좋고 모양이 특이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착용감을 말하자면, 전통 버선인 다비 역시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던 미야자와는 우연히 사이타마 중앙은행의 융자 담당 사카모토 다로와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지인 아리시마를 소개받는다. 과거 고하제야에서 만들었던 러닝화인 육왕을 토대로 다비와 러닝슈즈를 합쳐 고하제야 만의 특별한 러닝화를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이미 사양산업이 되어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형편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적잖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무이자 경리 담당인 도미시마 겐조(겐 씨)는 미야자와의 의견에 반대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제와의 니시이 후쿠코와 야쓰다 도시미쓰, 아리시마 등의 도움으로 기존 육왕의 새로운 버전을 만든다. 문제는 육왕의 실적에 대한 지표가 없다는 것이었고, 실제 착용을 통해 품질을 개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육상 유망주였던 다이와 식품의 모기 히로토는 경기 중 부상을 입는다. 라이벌이었던 아시아 공업 게즈카 나오유키는 승승장구하는데, 부상으로 앞으로의 선수 생명조차 위태한 지경에 처한다. 대기업 아틀란티스의 슈피터인 무라노 다카히코는 이런 모기의 상황이 안타깝다. 주법을 바꾸지 않으면, 회복되어도 부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모기에게 더 이상의 후원을 통한 광고효과를 얻기 어렵겠다는 아틀란티스 영업부장 오바라 겐지는 무라노에게 더 이상 모기를 지원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당장 주법을 바꾸려면 새로운 러닝화가 필요하다. 그 시점에 미야자와는 주법을 바꾸려는 모기에게 육왕을 제공하고자 하지만, 감독인 기도 아키히로는 탐탁지 않아 하고 모기에게 신발을 전달하지 않는다. 다행히 신발은 모기에게 전달되지만, 듣보잡인 업체의 신발을 믿을 수 없었던 모기는 방 한편에 육왕을 처박아 둔다.

융자 담당 사카모토가 타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자, 가뜩이나 자금 융통이 어려운 고하제야는 어려움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러닝화 밑창 때문에 고민인 고하제야에게 신소재지만, 기업의 파산으로 사장된 특허 실크레이 기술을 개발한 이야마 하루유키를 소개해 주는 사카모토. 덕분에 가볍지만 내구성이 좋고, 친환경 소재인 실크레이 덕분에 육왕의 질은 크게 업그레이드된다. 하지만 자금의 문제에 부딪친 데다, 기계마저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된 고하제야는 육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때 대기업인 펠리스에서 자회사로 들어오라는 솔깃한 제안을 하는데...

중소기업은 참 힘들다. 육왕 속 이야기가 실제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케이도 준의 손에서 탄생하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는 수난에 가깝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극이 이끌어지긴 하지만, 대기업에게 어렵게 개발한 기술력을 빼앗기도 도태되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러닝화 천 회사 다치바나 러셀이 대기업 아틀란티스의 회유에 고하제야를 배신하는 장면 또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케이도준의 소설에는 특히 은행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은행원 사카모토의 말처럼 은행은 미래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과거 실적에 대한 평가에 따라 자금을 대준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신소재를 발명했지만 자금 때문에 파산한 실쿨이나, 새로운 신발을 만들었지만 자금이 없어서 생산장비를 구매할 엄두가 안 나는 고하제야, 회사에 광고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바로 내치는 아틀란티스 등 다양한 기업의 생리를 통해 사업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었다. 소설처럼 중소기업이 자신의 권리와 기회를 빼앗기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자부심이란 간판도 직함도 아니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거지.

회사가 크든 작든, 직함이 근사하든 근사하지 않든

그런 건 관계없어.

자신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얼마나 책임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

 

나는 이제 과거의 선수인 것이다.

달릴 수 없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

하코네 러너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마라톤 러너로 성장한 라이벌.

모기는 그이 등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그저 방관할 뿐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진정한 자부심이란 간판도 직함도 아니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거지.

회사가 크든 작든, 직함이 근사하든 근사하지 않든

그런 건 관계없어.

자신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얼마나 책임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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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져라 - 일과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인간관계의 기술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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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You can't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but you can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당신은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의 본성을 바꿀 수 없으나,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 자체를 바꿀 수는 있다.

나이를 먹어도 쉽지 않은 것을 꼽자면 단연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 요령이 생기니 조금은 쉬워질 거라 생각했지만 글쎄... 죽을 때까지 어려운 게 인간관계가 아닐까? 책의 제목이 끌렸던 이유는 단연 "마흔"의 방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른을 앞두고 "서른"으로 시작하는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마흔이 되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우연의 일치일까? "마흔"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마흔을 불혹이라고 하지 않나?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마흔이라고 하는데, 마흔을 맞이한 나는 여전히 매일이 쉽지 않다. 20대 때에는 마흔이 되면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의 자리에 "착각"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될 정도로 서른이나 마흔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나는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워킹맘이니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의 에피소드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조우성 변호사의 책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알고 있다. 26년 차 로펌 대표 변호사인지라, 아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관계를 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속에는 실전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우선 인간관계를 4계절에 비유해서 4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제목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간단하지만,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제목 한 줄이 궁금증을 더한다. 각 내용 또한 길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실제적인 이야기 속에 변호사로서의 경험담도 담겨있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예도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어렵지 않게 읽힌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야 하는구나!'이야기도 다수 있다. 내 경우는 주위에 친한 지인이 많지 않다. 인간관계도 관계지만, 여러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발 넓게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위로가 되었던 내용이 있다. 인간관계를 많이 늘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양보다는 질! 이 여기도 등장한다. 가지치기의 인간관계라고, 건강한 관계는 깊이 있는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너무 많은 인맥에 목매지 말자.

또한 경조사에 대한 내용도 기억이 남는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10년 넘게 절친이던 친구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같이 갈 친구가 없다는 이유였다. 혼자 결혼식에 덩그러니 있기 민망하다고 못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럴 수 있다 싶었지만, 그 이후로 그 친구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성인이 돼서도 일 년에 서너 번씩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낼 정도로 오래 유지했던 관계도 자연히 끊어졌다. 경사도 그렇지만, 애사의 경우 특히 더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애사에 소홀해지면 관계가 돈독해지기 어렵다. (물론 코로나라는 상황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사소한 하나가 마음을 열기도 하고, 마음을 닫게 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팁이 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도 역시 기초가 중요한 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이 먹어도 인간관계는 어렵다고...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책 제목의 뜻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을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도, 야박하게 굴지 말아. 세상은 참 좁디좁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거든...

그러니 다시 안 볼 사람이라도 기분 좋게 헤어져. 그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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