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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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인 청이 소설을 낸 작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소설 속의 작가의 경험이 담긴 것도 맞는 것 같다. 청 역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냈는데, 그 책에 잃어버린 자전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와 다른 점이라면, 그 자전거의 주인이 아버지였고 아버지 역시 자전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청의 책을 읽은 독자로부터 받은 메일에 자전거의 소재에 대한 궁금증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메일은 청에게 그동안 잊고 있던 자전거 더 나아가 아버지의 존재를 찾기 시작한 원동력이 되었다. 청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자전거는 행복표 자전거였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고물상 주인인 아부로 부터 오래전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전거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막상 본 아버지의 자전거에는 옛날처럼 04886번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상표와 번호 외에는 예전 기억과 많이 다른 자전거였다. 많은 튜닝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자전거는 사실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카페 주인인 압바스의 여자친구 애니의 것이라 들었는데, 그 또한 아니었다. 자전거를 훔쳐 간 범인을 찾으려 이보다는 자전거의 옛 기억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청은 그렇게 자전거의 주인들을 찾아 나선다.

첫 이야기는 압바스의 추억이었다. 군 복무 당시 그가 머물던 곳은 노인들만 남아있는 농촌이었다. 자전거가 필요한 날은 동네에 세워져 있는 노인들의 자전거를 빌려타곤 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노인 라오쩌우와 친해진 압바스는 제대를 얼마 앞둔 날, 라오쩌우로 부터 부탁을 받고 잠수복을 입은 채 물 밑에 들어갔다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라오쩌우를 만나러 간 압바스는 라오쩌우의 자전거를 받게 된다. 라오쩌우의 자전거는 말레이시아 은륜 부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전거는 또 다른 이야기의 매개가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전쟁의 이야기들... 대만을 넘어 말레이시아로, 일본에 의해 아시아의 전쟁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청의 가족 이야기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전쟁의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사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이 책에 등장한 일부 이야기가 작가 우밍이의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 우밍이가 쓴 소설 속에 등장한 자전거의 소재에 대한 독자의 편지를 받았다는 바로 그 대목이다. 그때부터 우밍이는 자전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관심이 바로 이 책 도둑맞은 자전거 속에 아버지의 자전거를 찾아 나선 청의 이야기로 펼쳐진 것이다.

소설이라지만 자전거에 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은 기분도 들고, 역사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당시에는 집 한 채 값에 맞먹어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 색다르기도 했다. 살아있는 나비를 잡아 날개를 뜯어내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고물상을 하는 아부가 자전거상을 운영하는 부부로부터 마음으로 가게 안의 물건들을 인수하는 부분은 나 역시 감정이 이입해 울컥하기도 했다. 도둑맞은 자전거를 통해 청은 과거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기억과, 그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나라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끔찍한 전쟁의 기억 속에는 마냥 끔찍하지만은 않은 기억들도 담겨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어린 시절 자전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살 터울 동생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내 첫 자전거인 세발자전거를 비롯하여, 새벽 배달을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며 따라나선 일까지 말이다. 그때는 그 아파트가 왜 이리 높고 커 보였는지, 아버지의 자전거는 왜 이리 빨랐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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