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분, 꺼내 먹는 자본주의 - 화폐와 금리부터 부의 축적 원리까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자본주의 수업
더나은삶TV(채수앙)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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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힘들었던 전공과목 중 하나가 경제학이었다. 낯선 용어도 많고, 도표나 그래프나 이론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때 경제학에 대한 기초이론을 잡아둬서 그런지, 경제학 책을 읽을 때 종종 예전에 배웠던 용어들이 가끔 생각이 나곤 한다. 학창 시절에는 몰랐지만, 사회에 나와 경제학 관련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경제학도 역사처럼 흐름을 타야 이해가 쉽다는 것이다. 경제학을 장식하는 상당수 이야기는 역사와 관련이 있다. 당장 자본주의만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나 그 전후 사정을 알게 되면, 한결 이해가 편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총 6개의 챕터 총 86가지의 자본주의와 관련된 경제학 내용이 등장한다. 역사, 화폐(돈), 경제구조, 투자, 부 등 자본 주의하면 연결되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차례대로 읽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듯싶다. 각 주제의 이야기들은 타 주제의 이야기와 또 연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용이 반복되기에 자본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증가할 것 같다. 참고로 전체적으로 한 주 제당 3페이지 전후의 분량이기 때문에 제목처럼 3분이면 한 주제를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인플레이션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 인플레이션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이라 하면 시중에 화폐가 많이 풀려 물건값이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책에는 인플레이션의 예로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과 은광산 발견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야기한다. 같은 인플레이션이라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부분과 영향을 크게 받는 부문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사회 변화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한 사람들은 신흥 부자인 부르주아 계급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부를 보존하기 위해 결국 시민혁명의 주도세력이 된다.

또 한참 문제가 된 비트코인(암호화폐)에 대한 부분도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과연 암호화폐가 중앙정부의 화폐로 채택될 수 있을까? 저자는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러다 보니 검은 돈이라 말하는 비자금이나 불법행위 자금 등의 세탁처로 사용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늘 균형 상태가 영원할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세상의 균형은 늘 무너지게 마련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회복이 가능한 자산 군이 있는가 하면,

회복 불가능한 자산 군도 있게 마련입니다.

균형이 무너지면 투기적 세력이 달려들게 되고, 균형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경기 사이클을 쉽게 예측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미국의 컨퍼런스보드 경기선행지수, OECD 경기선행지수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매달 통계청이 발표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를 이야기한다. 스스로의 감이 아닌 이런 지수를 잘 확인하고 파악한다면 투자의 위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그 밖에도 투자에 앞서 공부하면 좋을 경제학 분야나 투자에 앞서 조심해야 할 행동 들도 책 속에 담겨있기에 이론과 실전 두 개의 개념을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그리고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주제별로 간추려서 담겨있지만, 경제학 용어 자체가 사실 아무리 쉽게 풀어낸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흥미 위주의 책을 생각했다면 어렵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자본주의뿐 아니라 전체적인 경제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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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요괴상점
기구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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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만화 중에 머털도사가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24시간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신 녹화된 만화를 비디오로 틀어놓고 자주 봤었다. 당시 머털이 스승인 누덕도 사 사후 그로부터 배운 도술을 통해 마을을 돌며 요괴를 소탕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만화였는데, 요괴를 잡은 후 머리털을 이용해 돌로 만드는 게 인상 깊었다. 당시 꼬마였던 내 생각에도 요괴는 무섭고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인 "한성 요괴 상점"을 본 순간 옛 기억이 급 떠올랐다.

마포에서 한성 요괴 상점을 경영하는 박물군자 최북과 삼절 부인이라 불리는 매화당 서 씨의 외동아들인 최한기는 하루아침에 집을 물론 부모님을 잃는다. 잠결에 너무 뜨거운 기운을 느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순간 주문이 생각났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를 넘어갈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지, 어머니 매화당 서 씨는 한기에게 약을 한 알 먹였다. 용광로 속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는 환약이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부모님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고통스러운 한기는 마포의 가게에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가게 안 역시 뭔가의 습격을 받은 티가 역력했다. 당장 한 끼 먹을 돈조차 없을 정도로 막막한 와중에 옆 가게인 오복 마음 상담소의 복희에게 도움을 받게 되는 한기.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어머니가 말씀하신 매화나무가 떠오른 한기는 그곳에서 청동함을 발견하는데, 그 안에는 아버지의 편지와 요괴 화첩이 담겨있었다. 허벅지에 북두칠성 점이 있는 존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한기는 그동안에 익힌 주문으로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괴에 의한 사건을 해결하기로 한다. 그런 와중에 마마(홍역)에 걸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문제는 홍역이 한꺼번에 마을을 덮쳤다는 것과, 3년 전에 마마에 걸렸던 사람이 다시 걸렸다는 것.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풍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돈 천 냥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가 건넨 환약을 먹은 사람들은 다음 날 병이 나았다. 좌포도청 종사관이자 복희와 소꿉친구였던 황희의 이야기를 들은 한기는 풍이 요괴 두억시니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약을 먹은 마을의 주민 모두가 머리가 터져서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엽괴(전문적으로 요괴를 잡는 사람) 한기는 마을로 향하고, 자신만의 주문을 통해 두억시니 풍을 사로잡아 서책 속에 가두게 된다. 하지만 풍이 들고 있던 깃발에 적힌 용(龍)이라는 글자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읊고 다니는 한자와 천지현황 우주홍황 을 시작으로 조금씩 구체적으로 완성되는 주문 속의 용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 속에는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특히 강력한 요괴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 두억시니 풍뿐 아니라 무두귀 극쾌나 한기 집안의 원수인 용손 등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하고, 그에 대항하는 엽괴들이 등장한다. 승려 출신 독고당 뿐 아니라 기생 출신 해어화 옥류, 무사 출신 묵검과 과거 자객이었다가 요괴가 된 석천 전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엽괴와 요괴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표지 뒷장에 담겨있는 판다의 정체는 참으로 흥미롭다. 요괴임에도 고산자라는 이름뿐 아니라 한기의 동생이 되는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아쉬움이 있다면... 후속편이 꼭 나왔으면 싶다. 한기와 복희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계속되는 요괴 사냥의 이야기도 궁금하니 말이다. 또한 여행을 떠난 한기의 부모님 이야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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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in 상하이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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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날 우연히도 강강에게 몇몇 행운이 기적적으로 겹쳐졌다.

바꿔 말하면 동물원 측, 특히 웨이잉더에게는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대체로 불행한 사고란 설마 하는 우연이 도미노처럼 연쇄한 결과 일어나는 것이다.

전 작인 도미노 이후 17년 만에 등장한 후속작의 배경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하이다. 도쿄역을 중심으로 테러단체와 각종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등장했던 전작에 이어, 두 번째 작품 역시 상하이의 청룡 반점이라는 호텔을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앞 권을 몰라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기왕이면 겹치는 등장인물들이 있는지라 전 작을 읽고 본다면 더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후속작이 나오는 데는 17년이 걸렸지만, 작품 속 이야기는 5년이 지난 상태다.

두 작품의 동일 인물이라면 호러 영화감독인 필립 크레이븐과 그의 반려동물인 다리오, 간토 생명에 근무 중인 호조 가즈미와 다가미 유코. 그녀들은 간토 생명에 근무하다가 이치하시 겐지와 결혼과 함께 상하이로 이주한 에리코(가토에서 결혼 후 이치하시로 성이 바뀌었다.)를 만나기 위해 상하이에 온다. 앞 권에서 이치하시 겐지는 피자집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상하이로 이주하면서 초밥 배달 회사인 스시 구이네이를 연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여전히 스피드를 자랑하는 겐지의 가게는 어둠의 세계를 자극하고 있었다.

필립 크레이븐의 반려동물인 이구아나 다리오는 시작과 함께 사망한다. 필립이 머물던 청룡 반점의 주방에 들어갔다가 식재료로 착각한 요리장 왕탕위안에 의해 요리 재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가족과 같은 다리오를 잃은 필립은 슬픔에 영화 촬영을 거부하고, 전 자기에서부터 등장한 영화 배급회사 직원인 아베 구미코가 다리오의 영혼이 슬퍼하며 필립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결국 필립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풍수사를 찾아 나서게 되고, 루창싱을 만나게 된다. (루창싱을 오해한 영화제작 스태프들에 의해 또 특이하고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어떤 상황인지는 직접 만나보자!)

그리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은 미술작품에 관한 인물들이다. 그림 예의 떠오르는 별인 예술가 차이창윈과 그의 작품 전시 및 판매에 직접 관여하는 골드 드래건 갤러리의 맥스 창 그리고 아틀리에에 근무하는 오치아이 미에다. 이번 상하이 편의 특이한 점은 다리오 뿐 아니라 상하이 동물원에서 이미 탈출 이력이 있는 판다 강강과 동물원의 수색 견인 닥스훈트 찬찬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어둠의 조직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보물과 관련한 이야기인데, 그 전면에 등장하는 동물은 바로 다리오였다. 다리오의 뱃속에서 발견된 박쥐라는 이름의 옥도장이 사건의 키워드가 된다. 다리오는 왜, 어떻게 도장을 삼킨 것일까? 어둠의 조직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상대편이 되는 경찰 조직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젊지만 범죄 소탕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경찰서장 가오칭제와 홍콩경찰이자 모비딕 카페 직원으로 잠입한 매기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

다리오를 잃고 슬픔에 빠져 PTSD(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게 된 필립에게 무엇이라도 먹이기 위해 등장한 것은 단연 초밥! 그리고 그 초밥집은 전편에도 연관되어 있는 에리코의 남편 겐지가 운영하는 초밥집이다. 자 이렇게 하나 둘 사건의 장소인 청룡 반점으로 모여든다. 도쿄역과 다른 분위기의 상하이 청룡 반점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이야기에 다리오의 영혼이 누군가(?)의 몸으로 들어가고, 사람보다 영악한 판다 강강까지 합류하니 정말 정신없이 벌어지는 한결 업그레이드된 대 환장 파티를 맛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하필 그 시점에 이렇게(마치 우연처럼) 이루어진 판은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이야기가 뒤섞여 등장하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안 그러면 대 환장 파티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 도쿄에 이어 중국 상하이를 찍은 도미노의 다음번 활약기는 어디가 될까? 설마 대한민국 서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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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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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다. 무척 신선했다. 이런 구성을 가진 책을 처음 만나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당혹스럽다. 진실이라 생각했던 사실이 진실이 아니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실제가 아닌 소설이었기에 반전이라는 단어로 대체될지도 모르겠다. 트러스트(trust)는 우리가 잘 알 듯이 신뢰를 뜻하는 단어이다. 근데, 이 책을 읽은 후 찾아본 trust에 신탁이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뢰도 되겠지만, 책 속 금융업을 하는 주인공 벤저민 레스크(앤드루 베벨)의 직업을 이야기하기도 하겠다 싶기도 하다. 과연 둘 다에 trust가 붙는 게 맞는가 의문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신선한 구성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어찌 보면 이 또한 반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성이 스포일러 일지도 모른다. 총 4개의 글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해럴드 배너가 쓴 소설 채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앤드루 베벨이 쓴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이고, 세 번째는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을 대필한 아이다 파르텐자가 쓴 회고록을 기억하며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밀드레드 베벨이 쓴 일기 선물이다. 넷 중 세 개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를 찾았는가? 바로 "베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모든 이야기는 금융가이자 큰돈을 움직였던 사람 앤드루 베벨과 그의 아내인 밀드레드 베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첫 번째 작품이 소설이기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긴 하다. 앤드루 베벨은 벤저민 레스크로, 밀드레드 베벨은 헬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네 개의 이야기가 다 같은 사람을 등장시키니 내용이 같을까?

글쎄... 글은 누구의 입장에서 기록되었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록되기 때문에 시점의 차이를 넘어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듯싶다.

유력한 집안의 아들인 벤저민은 아버지를 잃고 또 얼마 안 되어서 어머니를 잃는다. 타인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그였지만, 돈을 굴리는 데는 출중한 능력과 운이 따랐다. 그래서 가진 돈이 마치 풍선인 듯 부풀고 또 부풀어 오른다. 돈이 많아지고, 금융가에서 유력한 사람이 되어감에도 그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일을 좋아하고, 잘할만한 비서를 통해 일을 처리한다. 벤저민은 자신의 돈을 자랑하는 것도, 값비싼 물건을 구입해서 치장하는 것도 즐기지 않지만 비서가 그 일을 잘했기에 비서인 셸던 로이드가 한껏 부를 과시하게 되면 그의 주인인 벤저민은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지가 간접적으로 표현되었기에 나름 만족한다.(최소 이 정도의 머리는 있으니 그 모든 사업을 통해 돈을 부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돈을 불렸던 그는 다음으로 생각한 일이 있었다. 바로 결혼이었다. 가문의 명성은 있지만, 돈은 없었던 처가 브레보트 가문의 딸인 헬렌을 아내로 맞는다. 헬렌은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 이후 1907년과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벤저민은 자산을 지킬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앞 이야기의 주인공인 벤저민의 실제 모델인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이 등장한다. 베벨 가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이 모든 위기를 어떻게 넘겨왔고,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앞 이야기에서 좀 부정적인 형태로 등장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바로잡고자 노력한다고 해야 할까? 연이어서 등장해서 그런지 자신의 삶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또 미화해서 해석하는 분위기가 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서전 대필 작가 아이다 파르텐자의 글에서는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에 차마 담을 수 없었던 앤드루의 실제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필 작가인 그는 사실 앤드루의 비서였다. 어쩌면 세 개의 이야기 중 앤드루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이야기가(그래서 더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많지만, 문제는 그 또한 아이다 파르텐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쓰인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과연 네 번째 앤드루의 부인인 밀드레드의 일기에서는 앤드루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세 개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앤드루의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가 가장 큰 흥미이자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부유하고 성공한 금융가의 이야기. 과연 이 이야기의 승리자는 누구일지, 조금은 딱딱한 주제의 이야기지만, 한 인물이 각자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왜곡되어갔는지에 방점을 두고 읽는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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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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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장편소설 도미노. 최근 후속작이 나왔던 터라, 정주행을 시작했다. 첫 장부터 혀를 내둘렀다. 사실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힘든 이유가 등장인물의 이름이 헷갈리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따로 적어놓는다. 다행이라면 도미노의 등장인물과 주요 대사가 먼저 소개된다는 것이다. 근데 등장인물이 끝이 없다. 앞뒤로 빽빽하게 4페이지에 걸쳐 등장인물(28명)이 나오니 말이다. 도대체 이 책에 왜 이리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걸까? 역시 읽다 보면 그럴만 하구나! 싶다. 초반에는 정신이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고 앞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중반부는 지나야 했다. 거기다 두 페이지 가득 담긴 도쿄역의 지도. 등장인물만큼이나 복잡하다. 입체감 있게 읽기 위해서 + 좀 더 장면을 이하 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니 한 번씩 앞장으로 건너오는 것도 좋겠다.

도쿄역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과 인물이 등장한다. 15년 전의 소설이라고 하니, 지금과 형편이 다르긴 하다. 마감을 앞두고 탄 기차에서 발생한 사고로 입금이 지연되어 전체 지점이 패닉 상태에 빠진 간토 생명의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든 입금을 받기 위해 과거 인맥을 동원해 오토바이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와 간식을 사러 갔다가 졸지에 범죄자로부터 시한폭탄을 받게 된 이야기가 연결된다. 배우를 꿈꾸는 아이 아유카와 마리카는 상대 오디션 참가자의 엄마가 건넨 설사약이 담긴 음료를 먹고 배탈이 나지만, 전화위복으로 결국 오디션에 합격된다. 그 밖에도 사촌동생의 여자친구를 떼어내기 위해 새로 생긴 애인 역할을 하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와 호러 동호회의 회장이 되기 위해 영화를 보는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넓디넓은 도쿄 역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며 사건이 일어난다.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다 보니 결국은 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고 할까? 다행이라면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아주 우연히 그 시간에 그렇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모든 끈을 완벽하게 연결한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처음에 도미노란 제목과 작품이 어떤 연결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우선 작품 속에서도 혼잡하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 도미노처럼 덮친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일로 인해 독약을 먹었던 여성의 복부의 힘이 가해져 자동으로 약을 뱉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보니 차곡차곡 쌓인 첫 번째 블록 하나가 넘어지면 자연스레 다른 블록까지 넘어지는 게 바로 도미노이듯, 도쿄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꼬리가 되고 또 꼬리가 되면서 작품 속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그런 제목이 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마치 도미노이자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지도 하는 온다 리쿠만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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