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만화 중에 머털도사가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24시간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신 녹화된 만화를 비디오로 틀어놓고 자주 봤었다. 당시 머털이 스승인 누덕도 사 사후 그로부터 배운 도술을 통해 마을을 돌며 요괴를 소탕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만화였는데, 요괴를 잡은 후 머리털을 이용해 돌로 만드는 게 인상 깊었다. 당시 꼬마였던 내 생각에도 요괴는 무섭고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인 "한성 요괴 상점"을 본 순간 옛 기억이 급 떠올랐다.
마포에서 한성 요괴 상점을 경영하는 박물군자 최북과 삼절 부인이라 불리는 매화당 서 씨의 외동아들인 최한기는 하루아침에 집을 물론 부모님을 잃는다. 잠결에 너무 뜨거운 기운을 느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순간 주문이 생각났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를 넘어갈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지, 어머니 매화당 서 씨는 한기에게 약을 한 알 먹였다. 용광로 속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는 환약이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부모님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고통스러운 한기는 마포의 가게에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가게 안 역시 뭔가의 습격을 받은 티가 역력했다. 당장 한 끼 먹을 돈조차 없을 정도로 막막한 와중에 옆 가게인 오복 마음 상담소의 복희에게 도움을 받게 되는 한기.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어머니가 말씀하신 매화나무가 떠오른 한기는 그곳에서 청동함을 발견하는데, 그 안에는 아버지의 편지와 요괴 화첩이 담겨있었다. 허벅지에 북두칠성 점이 있는 존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한기는 그동안에 익힌 주문으로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괴에 의한 사건을 해결하기로 한다. 그런 와중에 마마(홍역)에 걸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문제는 홍역이 한꺼번에 마을을 덮쳤다는 것과, 3년 전에 마마에 걸렸던 사람이 다시 걸렸다는 것.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풍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돈 천 냥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가 건넨 환약을 먹은 사람들은 다음 날 병이 나았다. 좌포도청 종사관이자 복희와 소꿉친구였던 황희의 이야기를 들은 한기는 풍이 요괴 두억시니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약을 먹은 마을의 주민 모두가 머리가 터져서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엽괴(전문적으로 요괴를 잡는 사람) 한기는 마을로 향하고, 자신만의 주문을 통해 두억시니 풍을 사로잡아 서책 속에 가두게 된다. 하지만 풍이 들고 있던 깃발에 적힌 용(龍)이라는 글자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읊고 다니는 한자와 천지현황 우주홍황 을 시작으로 조금씩 구체적으로 완성되는 주문 속의 용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 속에는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특히 강력한 요괴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 두억시니 풍뿐 아니라 무두귀 극쾌나 한기 집안의 원수인 용손 등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하고, 그에 대항하는 엽괴들이 등장한다. 승려 출신 독고당 뿐 아니라 기생 출신 해어화 옥류, 무사 출신 묵검과 과거 자객이었다가 요괴가 된 석천 전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엽괴와 요괴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표지 뒷장에 담겨있는 판다의 정체는 참으로 흥미롭다. 요괴임에도 고산자라는 이름뿐 아니라 한기의 동생이 되는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아쉬움이 있다면... 후속편이 꼭 나왔으면 싶다. 한기와 복희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계속되는 요괴 사냥의 이야기도 궁금하니 말이다. 또한 여행을 떠난 한기의 부모님 이야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