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 급수표 받아쓰기 - 초등학교 입학하면 꼭 하는 급수표 받아쓰기
컨텐츠연구소 수(秀) 지음 / 스쿨존에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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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년이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1학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받아쓰기"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는 유치원 때 한글과 숫자, 구구단의 일부를 떼고 들어갔던지라 깍두기공책이라고 부르는 국어 공책에 또박또박 한글을 썼던 게 기억난다. 요즘은 1학년에 들어가 한글을 배우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이미 6살 때부터 한글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자석칠판이나 시중에 파는 놀이책을 가지고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한글에 재미를 붙인 아니는 따로 학습지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한글을 깨치긴 했지만, 쓰는 순서가 멋대로여서 다시 차근차근 봐주고 있는 상황이다.

"급수표"라는 말이 낯설었는데, 1학년 입학을 하고 나면 한 주씩 급을 올려가면서 한글 공부를 한다고 한다. 평소에는 머리말을 건너뛰기도 하는데, 초보 엄마인지라 어떤 식으로 해나가는지 궁금했는데, 일러두기와 머리말을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감이 잡혔다.

 

 

 

이 책에는 총 15급(15주 차)의 받아쓰기가 나온다. 우선 많이 읽어보고, 써보는 연습이 필요한지라 교재 역시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우선은 각 급에서 알아야 할 한글이 등장한다. 책의 구성은 매일 하는 학습지와 비슷하다. (어린 시절 아이템*을 매일 했는데, 공부한 날짜를 쓰는 칸을 보니 괜스레 반가웠다.) 4번 읽고 3번 쓰기라는 교재 구성대로 먼저 읽고 읽은 숫자를 표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한 장을 넘기면 여러 번 써볼 수 있도록 칸이 나누어져 있다.(입학하면 자연히 만나게 되는 국어 공책 모양이다.) 뒤로 갈수록 조금 더 긴 단어나 문장이 등장하는데, 띄어쓰기 연습까지 함께 할 수 있다. 연습을 했다면 실전 시험에 대비해 불러주는 내용을 써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두 번에 거쳐 듣고 쓸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까지를 잘 마무리하고 나면, 선 긋기나 미로 찾기 등 다양한 놀이터가 나온다.  

 

 

 

A4 사이즈로 큼직하기 때문에 눈에도 잘 들어오고, 쓰기는 10칸 공책 모양이기에 자연스럽게 읽고 쓰다 보면 10칸 공책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매 급수마다 4단계에 거쳐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레 익숙하게 써지지 않는 단어들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체계적으로 받아쓰기 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나처럼 받아쓰기를 봐주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 한 권이면 받아쓰기 준비가 끝이니, 엄마표 홈스쿨링에 관심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칭찬과 흥미 그리고 공부의 세 마리 토끼를 통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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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라이브러리 6
조지 오웰 지음, 배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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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고전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1984는 처음에 마주했을 때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주된 내용은 같지만, 책 속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행태와 그 안에 소속된 국민들의 모습이 씁쓸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나름 국가의 충성된 국민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충성된 것은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불려나가는 각종 행사(라기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가깝다)들로부터 세뇌되었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명 반동분자로 누군가에 의해 신고라도 당하게 되면 총살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윈스턴이 노트를 하나 가지게 된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할 무언가를 위해 잉크와 펜을 구한다. 자신만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오세아니아에서는 기록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반역 행동으로 간주될 정도로 큰 죄다. 그 이유는 윈스턴의 생각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오세아니아의 상황을 마주하자 생각나는 몇 장면이 있었다. 북한, 가스라이팅, 그리고 CCTV였다. 어린 시절부터 강제로 주입되다시피한 김씨 부자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그들의 안 좋은 소식 앞에서 오열을 하며 울부짖는 모습들이 겹쳐졌다. 책에 등장한 2분 증오의 시간을 통해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을 향한 분노에 가까운 반감과 빅브라더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은 사람만 달라졌을 뿐 맥락은 같기 때문이다.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이 책을 기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정치적 이슈를 제하고 본다고 해도, 1984 속 장면은 요즘 특히 더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과도 닮아있다. 상대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여 실제를 왜곡시키는 것 역시 그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윈스턴이 하는 업무 역시 놀라웠다.

매일 매 순간 과거는 현재의 최신 정보로 탈바꿈되었다.

이런 식으로 당이 한 예측은 전부 들어맞았고 문서로 입증되었다.

그때그때 당의 요구와 상충되는 뉴스 기사나 의견은 모두 폐기되었다.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한 장의 양피지와 같았다.

아무런 비판이나 토론 없이 무방비로 이루어지는 일상이 얼마나 큰 오류가 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라 하겠다. 다행이라면, 주인공이 이 모든 오류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오세아니아의 모든 가정에서 늘 볼 수 있는 "빅브라더가 보고 있다"라는 문구는 모두의 생활을 통제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묘한 이질감과 두려움을 담는 문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보면, 현재 우리의 삶 또한 지켜보는 많은 눈(CCTV)과 다를까? 물론 소설 속 극단적인 상황과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CCTV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니 말이다- 범죄 예방이나 증거 등) 말이다.

한편으로 내가 윈스턴이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모든 왜곡과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누리던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물론 윈스턴은 누린다기보다는 목숨의 위협을 겪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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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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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알을 품고 언젠가 부화하는 날을 기다리는 인생도 괜찮지 않습니까.

꿈을 포기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19로 몇 년 간 하늘길이 막혔다. 물론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긴 했지만, 안된다고 하니 더 비행기가 타고 싶어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주된 배경은 공항이다. 공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여행의 설렘의 감정이 떠오른다. 물론 기내식을 먹고 체해서 정말 고생한 적도 한번 있지만, 대부분의 공항에서의 기억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설렘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는 4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마다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공항이라는 장소를 통해 그들은 서로 같은 공간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공항 안에 있는 서점이다. 공항이 직장인 사람도 있지만,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의기소침해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설렘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시상식을 앞두고 긴장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각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그들의 인연이 참 기묘하고 또 흥미롭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두 번째 등장한 서점 직원이 사토 유메코와 그녀의 어릴 적 기억에 관한 내용이었다. 늘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2살 터울의 언니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았던 유메코는 어린 시절 서점을 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덕분에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서점에 가면 어린 시절 느꼈던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직원이 되면서 지금의 공항 안에 서점으로 발령을 받은 유메코는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는 언니와 함께 근무 중이다. 어린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할머니 댁에 가려면 공항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공항은 할머니를 만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할머니 집을 떠날 때면, 늘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 할머니에게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건넸던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킬 수 없었던 유메코. 다음 해에 할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제사 3주기 때 가족과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된 유메코는 공항에서 길을 잃는다. 그런 유메코는 공항 서점 직원의 도움으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떠오른 기억은 예쁘고 친절한 공항 서점 언니에게 받은 손수건과 서점 주변의 벚꽃 장식이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서점이 있는 국내선 주변에는 벚꽃 장식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과연 유메코가 만난 아이는 누구였을까?

의기소침해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공항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저마다 자신의 상황을 새롭게 마주할 기억을 얻게 된다. 앞 이야기의 누군가가 뒷이야기의 누군가에게 주는 영향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SF 소설 같은 느낌도 들고, 등장인물들의 분위기가 신비롭기도 했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 따스한 힐링 소설을 만났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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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클래식 라이브러리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목승숙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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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그레고르가 시달린 심각한 상처는 - 아무도 빼 줄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사과가 눈에 띄는 기념품처럼 살 속에 박혀있었다- 서글프고 역겨운 그레고르의 현재 몰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조차 그가 적대시하면 안 되는 가족의 일원이며 혐오감을 억누르고 참는 것,

오직 참는 것만이 가족의 의무라는 계명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드디어 변신을 마주했다. 제목은 익히 들어왔지만,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말이다.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두 권(평온한 삶, 워더링 하이츠)를 만난 후 세 번째 만나는 시리즈다. 앞의 책 보다 훨씬 얇은 책이어서, 당연히 변신 한 작품만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총 4개의 단편(굴, 변신, 학술원 보고, 단식 예술가)이 담겨있다. 네 편 중 제일 길었던, 변신이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것 같다. "변신"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런지, 먼저 등장한 굴은 좀 지루한 맛이 있었고, 변신을 만나고 난 후 읽었던 학술원 보고와 단식 예술가는 감흥이 좀 적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성실하게 일하는 영업사원이었다. 전날부터 몸이 썩 좋지 않았는데, 아침 출장이 잡혀있던 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몸을 돌리는 것도, 다리를 펴는 것도 평소와 많이 달랐으니 말이다. 겨우 몸을 일으키지만, 몸을 뒤척일 때마다 등의 통증이 느껴졌던 그레고르의 집으로 지배인이 찾아온다. 새벽의 출장을 가야 하는데, 출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레고르를 만나러 온 것이다. 부모가 나서서 그레고르가 아프다는 이유를 들며 변호를 하지만, 지배인은 직접 그레고르를 만나고 싶어 한다.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서는 그레고르는 평소 잠그던 문의 열쇠를 겨우 돌리고 문을 연다. 그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가족들과 지배인. 급기야 어머니는 실신할 지경이 된다. 그레고르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갑충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름 논리적으로 자신이 출장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짐승의 울부짖음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그레고르는 방에 갇힌다. 여동생 그레테가 그레고르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주는데,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그레고르는 그레테의 소리가 들리면 깊숙한 어딘가로 몸을 숨긴다. 사실 그레고르는 그레테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주려고 했다. 갑충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실행을 했을 텐데,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녀가 자신을 돕기 위한 행동에 뭔가 보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미안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그레테와 자신의 뭔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여동생과 달리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반면, 어머니는 아들의 변신에 큰 상실을 느껴서 몸이 아프다.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은 여동생일 뿐이다. 주 수입원인 그레고르가 변신한 후,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진다.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그레고르 때문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하숙생을 들이는데, 오랜만에 연주를 하는 동생의 바이올린 선율에 취한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동생과 무엇인가 통한다 생각했던 것이 모두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레고르의 모습이 참 애처로웠다. 자신의 가족이 벌레로 변한 것에 대해 어느 누가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의 행동과 말에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그레고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변신하였지만, 설령 같은 모습을 가졌다 해도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비난하고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레고르와 가족들이 가지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레고르는 여전히 가족을 향해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변신한 순간부터 자신의 아들, 오빠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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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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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은 시가 얼음이라고 했다.

백오십 년 후 레너드 코헨은 시는 재라고 했다.

얼음이든 재든, 시는 불과 반대다.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는 한 인물에 대한 전기지만, 위인전 같은 느낌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된 책이다. 위인전처럼 특정 인물에 대한 찬양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혹은 그 인물이 다녔던 곳을 다니며 당시 느끼고 봤던 것을 조망하는 형태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 책 종이로 만든 마을 역시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전기지만,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대신 에밀리 디킨슨과 이 책의 저자인 도미니크 포르티에의 삶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면서 두 여인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무슨 이야긴가 싶었다. 그중 하나가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세기 미국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은 부유한 디킨슨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이 책 한 권 안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지냈던 때를 보면 겨울 눈이 가득 쌓인 마당에 누워서 천사 날개를 만들며 즐겁게 지냈던 시간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몇 년 새 에밀리는 사랑하는 형제들을 잃는다. 동생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속 인물들은 많이 닮았는데, 살아있는 형제들을 참고해서 그려져서 그런 것이었을까?

에밀리가 태어나고 살았던 애머스트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녀가 만들었던 식물표본 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지금도 하버드 대학교 휴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424개의 꽃과 식물 표본 중 시작은 재스민이다. 첫 번째 등장하는 식물이 재스민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재스민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박한 식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풀어놓았다.

생전 10편의 시만을 발표했고, 사후에 드러난 많은 시까지 무려 1,755편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시를 논하려면 당연히 에밀리 디킨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에밀리 디킨슨의 영향은 참 크다. 그녀의 시는 참 다양한 곳에서 등장한다. 가령 설탕 봉지나 초콜릿 봉지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는 늘 자연에서 머물며, 은둔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에밀리가 사랑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단지,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녀가 남긴 시와 편지들을 통해 에밀리 디킨슨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그녀의 모습을 그려낸 도미니크 포르티에의 전기 겸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 전반을 입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종이로 만든 마을이라는 뜻이 궁금했는데, 책 중반부의 지도 이야기를 통해 책의 의미를 마주할 수 있었다. 표절을 막기 위해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낸 지도. 책 속에 담긴 에밀리 디킨슨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구도 본 사람이 없지만, 도미니크 포르티에에 의해 세상에 나온 에밀리 디킨슨의 모습은 그래서 더 색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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