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고전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1984는 처음에 마주했을 때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주된 내용은 같지만, 책 속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행태와 그 안에 소속된 국민들의 모습이 씁쓸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나름 국가의 충성된 국민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충성된 것은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불려나가는 각종 행사(라기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가깝다)들로부터 세뇌되었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명 반동분자로 누군가에 의해 신고라도 당하게 되면 총살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윈스턴이 노트를 하나 가지게 된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할 무언가를 위해 잉크와 펜을 구한다. 자신만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오세아니아에서는 기록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반역 행동으로 간주될 정도로 큰 죄다. 그 이유는 윈스턴의 생각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오세아니아의 상황을 마주하자 생각나는 몇 장면이 있었다. 북한, 가스라이팅, 그리고 CCTV였다. 어린 시절부터 강제로 주입되다시피한 김씨 부자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그들의 안 좋은 소식 앞에서 오열을 하며 울부짖는 모습들이 겹쳐졌다. 책에 등장한 2분 증오의 시간을 통해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을 향한 분노에 가까운 반감과 빅브라더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은 사람만 달라졌을 뿐 맥락은 같기 때문이다.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이 책을 기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정치적 이슈를 제하고 본다고 해도, 1984 속 장면은 요즘 특히 더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과도 닮아있다. 상대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여 실제를 왜곡시키는 것 역시 그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윈스턴이 하는 업무 역시 놀라웠다.
매일 매 순간 과거는 현재의 최신 정보로 탈바꿈되었다.
이런 식으로 당이 한 예측은 전부 들어맞았고 문서로 입증되었다.
그때그때 당의 요구와 상충되는 뉴스 기사나 의견은 모두 폐기되었다.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한 장의 양피지와 같았다.
아무런 비판이나 토론 없이 무방비로 이루어지는 일상이 얼마나 큰 오류가 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라 하겠다. 다행이라면, 주인공이 이 모든 오류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오세아니아의 모든 가정에서 늘 볼 수 있는 "빅브라더가 보고 있다"라는 문구는 모두의 생활을 통제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묘한 이질감과 두려움을 담는 문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보면, 현재 우리의 삶 또한 지켜보는 많은 눈(CCTV)과 다를까? 물론 소설 속 극단적인 상황과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CCTV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니 말이다- 범죄 예방이나 증거 등) 말이다.
한편으로 내가 윈스턴이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모든 왜곡과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누리던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물론 윈스턴은 누린다기보다는 목숨의 위협을 겪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