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알을 품고 언젠가 부화하는 날을 기다리는 인생도 괜찮지 않습니까.
꿈을 포기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19로 몇 년 간 하늘길이 막혔다. 물론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긴 했지만, 안된다고 하니 더 비행기가 타고 싶어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주된 배경은 공항이다. 공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여행의 설렘의 감정이 떠오른다. 물론 기내식을 먹고 체해서 정말 고생한 적도 한번 있지만, 대부분의 공항에서의 기억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설렘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는 4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마다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공항이라는 장소를 통해 그들은 서로 같은 공간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공항 안에 있는 서점이다. 공항이 직장인 사람도 있지만,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의기소침해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설렘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시상식을 앞두고 긴장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각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그들의 인연이 참 기묘하고 또 흥미롭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두 번째 등장한 서점 직원이 사토 유메코와 그녀의 어릴 적 기억에 관한 내용이었다. 늘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2살 터울의 언니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았던 유메코는 어린 시절 서점을 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덕분에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서점에 가면 어린 시절 느꼈던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직원이 되면서 지금의 공항 안에 서점으로 발령을 받은 유메코는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는 언니와 함께 근무 중이다. 어린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할머니 댁에 가려면 공항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공항은 할머니를 만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할머니 집을 떠날 때면, 늘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 할머니에게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건넸던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킬 수 없었던 유메코. 다음 해에 할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제사 3주기 때 가족과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된 유메코는 공항에서 길을 잃는다. 그런 유메코는 공항 서점 직원의 도움으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떠오른 기억은 예쁘고 친절한 공항 서점 언니에게 받은 손수건과 서점 주변의 벚꽃 장식이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서점이 있는 국내선 주변에는 벚꽃 장식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과연 유메코가 만난 아이는 누구였을까?
의기소침해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공항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저마다 자신의 상황을 새롭게 마주할 기억을 얻게 된다. 앞 이야기의 누군가가 뒷이야기의 누군가에게 주는 영향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SF 소설 같은 느낌도 들고, 등장인물들의 분위기가 신비롭기도 했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 따스한 힐링 소설을 만났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