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썰의 전당 : 서양미술 편 - 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
KBS <예썰의 전당> 제작팀 지음, 양정무.이차희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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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 중 제일 흥미로운 것은 일명 비하인드 스토리라 불리는 뒷이야기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어려웠던 이유가 늘 딱딱하고 훌륭하기만 한 위인들의 성장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은 위인들의 실수담이나 뒷이야기를 곁들여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만난 후 한결 편안하게 위인전과 교과서를 마주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 아닐까? 음악이나 미술 등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 분야들의 뒷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결 거리감이 덜어지는 것 같다. 특히 내게 미술이 그런 분야였다. 미술작품에 관심을 가진 큰 아이에게 나와 같은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시작한 매년 미술서적 읽기는 처음에 비해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긴 했지만, 미술관에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는 여전히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꾸준히 읽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각 시리즈의 저자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관련된 지역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와 녹여서 풀어낸다. 갑자기 이 시리즈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예썰의 전당 속에서 마주한 작가들 중 여러 명이 그 책의 단독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을 통해 만났지만, 잊힌 이야기뿐 아니라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예술과 인물의 삶을 조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를 예를 들자면, 가령 첫 번째 등장한 만능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서자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눈썹 없는 그림으로 유명한 모나리자의 작가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근데 작디작은(가로 53cm, 세로 79cm) 한 장의 그림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되었을까? 현재 이 그림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데, 과거 첫 순회 전시가 열렸을 때 워낙 많은 관람인원(170만 명)이 몰려서 관람시간을 20초로 제한했다고 한다. 왜 모나리자는 유명해진 것일까? 과거 모나리자가 도난 된 적이 있었는데, 도둑은 이탈리아인이었다. 문제는 그림이 잃어버린 지 24시간이 지나도록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데 있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고, 특히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던 루브르에서 도난되었기에 더 논란이 되었다. 2년 후 그림을 되찾긴 했지만, 워낙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지라 그 이후 모나리자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나리자가 과연 진품인 걸까? 모나리자라고 이름 붙여진 그림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작품 말고 또 있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다. 그에 대한 진실을 책을 통해 만나보도록 하자.

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림이 익숙한 경우도 있다. 그중 한 명이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화가였다. 그는 특히 궁중 초상화를 많이 그린 화가인데, 피카소를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화가였다고 한다. 가톨릭의 3대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근방에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어서 성지를 순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산티아고 기사단이 조직되었는데, 당시 기사단이 되는 것은 상당히 영예로운 일이자 신분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유대인으로, 낮은 계급의 귀족 집안이었기에 기사단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꾸준히 궁정 초상화를 그렸기에 그 공으로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분 상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의 그림을 마치 재력가와 비등하게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궁중 난쟁이 곡예단 뿐 아니라 자신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를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파레하의 재능을 높이 산 벨라스케스는 파레하를 자유인으로 놓아주고 그가 화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이름 혹은 그림만 봐도 아! 하고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화가들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당대에도 성공 가도만을 달렸을 거란 착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기에 절망을 하기도 하고, 슬픔과 고통을 겪기도 했다. 상황이 어떻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기에 설령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어도, 현대에는 불세출의 화가로 인정받은 게 아닐까?

예썰의 전당을 통해 서양 예술 화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보니, 한결 그 인물을 이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너무 기대된다. 좀 더 가까이 예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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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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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벌어지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내가 있을 때 이룩해야 하고 내가 있을 때 끝장을 봐야만 한다.

다음 세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급하고, 해야 할 일만 많다.

하지만 정작 비중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은 몇 가지나 해결하는가.

야단법석과 부화뇌동, 우왕좌왕과 조변석개로 끝난다. 더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삼국지 기행의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조조의 이야기다. 유비에 비해 악역을 도맡아 하는 조조는 정말 삼국지연의에 이야기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을까? 조조의 마지막을 기록한 삼국지연의의 부분을 보자면 정말 마지막까지 교만이 철철 흐른다. 죽어가는 마당에도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과 노래와 춤까지 곁들이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의 유언을 다르게 적고 있다. 장례가 끝나면 상복을 벗고, 병사를 통솔하는 자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고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행하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의 시신에 평상복을 입히고 다른 것은 묘에 넣지 말기를 당부한다. 삼국지 기행의 저자는 실제 역사와 삼국지연의 속 역사를 비교하며 실제 인물의 인물됨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조조라고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유비라고 실책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조조가 아꼈던 동작대와 업성의 이야기로 책의 포문을 여는 2권에는 삼국지의 중반을 넘어 위. 촉. 오 세 나라의 성립과 패망이 담겨있다. 특히 이 세 나라가 서로 견제와 동맹을 적절히 사용하며 서로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구축하는 장면들 속에 등장하는 지역들을 돌아보는데, 초판을 쓰며 저자가 다녔던 지역을 새롭게 소개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 없던 건물이나 새롭게 개장한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삼국지의 인기에 편승하여, 좀 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성곽이나 성벽을 복원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히려 보존되어야 할 문화재는 한쪽에 방치되어 있고, 다른 것만 크고 웅장하게 증축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 내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고 웅장한 부분만 보고 지나쳤겠지만, 삼국지 관련 책을 내고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꼼꼼히 비교하며 팩트를 판단할 줄 아는 저자의 눈에는 그런 부분들이 더 확연히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저자가 언급해 주었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적지 뿐 아니라 각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각 진영의 인물들의 됨됨이나 상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삼국지를 마주했을 때 알았으면 하는 인문학적 소양도 함께 다룬다. 덕분에 여행서를 넘어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권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나 역시 삼국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큰 부상을 입은 관우가 의사 화타의 치료를 받으며 바둑을 두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있던 지역인 형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뼈의 독을 긁어내는 수술(괄골요독)을 받은 관우는 신의라 불리는 화타의 집도를 받았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마량과 바둑을 두었다는 데 있다. 이 지역에는 현재 형주 병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정사에 의하면 관우는 화타의 치료를 받기 몇 년 전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것은 소설 속 관우에 대한 인내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듯싶다.)

과거 장비와 관련된 유적지인 장강 삼협은 댐 공사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장비 사당 또한 그 지역에 있어서 소실될 뻔했지만 댐 완공 전 상류 쪽으로 옮겨서 복원해두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조조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는지라, 조조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하나 둘 발굴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보도된 지 10년째지만 여전히 발굴 중이라는 조조의 고릉은 과연 언제쯤이면 마주할 수 있을까? 저자의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내게도 느껴져서 안타깝기만 했다.

식견 있는 저자 덕분에 더 풍부하고 정확한 삼국지 기행을 했던 시간이었다.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완독한 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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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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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의 두 번째 권은 땅속의 용이 울 때다. 첫 번째 권인 별의 지도는 얼핏 유추가 가능했지만, 땅속의 용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내심 난해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 아닐까 우려했는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싶다. 땅속의 용을 한자로 하면 지룡(地龍)이다. 지룡이 과연 누구일까? 사실 이 생물이 이렇게 불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른 이름으로는 토룡(土龍), 구인(蚯蚓)이라고도 부른단다. 힌트는 지룡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환형동물이다. 혹시 눈치챘는가? 지룡은 바로 지렁이를 의미한다. 혹시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지렁이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이 첫 장부터 빵빵 터진다.

도대체 지렁이가 뭐길래 찰스 다윈도, 이어령 교수도 지렁이를 생각하며 연구하고 책을 쓴 것일까? 나 역시 비 오는 날 길을 따라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참 많이도 봤다. 어찌 보면 생태계의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지렁이 때문에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지렁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약해 보이고, 가장 약하기만 한 지렁이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간다. 흙을 먹고 분해하고 배변하고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흙 속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때론 흙 밖으로 나와서 나뭇잎을 먹고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서 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그 식물을 먹고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간다. 지렁이가 묵묵히 살아낸 그 시간이 지금의 우리까지 살게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렁이는 약하지만 강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담긴 이야기가 펼쳐지며 또 다른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대 당시 마주한 노부부와 자동차 이야기를 비롯하여 아리랑과 한자세대 그리고 한글세대의 이야기, 일본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20대부터 작년에 별세하기 전인 88세까지 60여 년간 글을 쓴 이어령 교수는 자신을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10년을 단위로 늘 새로운 글과 생각들을 펼쳐놓은 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놀랐고, 조금만 나이 들어도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소위 꼰대가 되는 사람이 많은 시대 속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이의 마인드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밖에도 채집을 해서 먹고사는 수렵인들과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의 우리들에 대한 비교 글도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당연히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수렵인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보다 더 고달프고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왠지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저자의 견해는 달랐다. 물론 저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타인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간다.

수렵 채집인은 인근의 식량 자원이 고갈되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납니다.

우리에게는 고되게 보이는 이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소풍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이 '게으른 여행자'가 도착한 새로운 지역은 식량을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제공해 주었겠죠.

게다가 이들의 인구는 자연이 마련해놓은 훌륭한 창고의 혜택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적절했어요.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사느냐에 따라 삶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글쎄... 덮어놓고 그들이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만난 저자 이어령 교수의 글에는 다양한 감정선이 담겨있다. 유머도, 채찍도, 감동도, 그리고 묵직한 눈물도 담겨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 한국인 시리즈는 총 6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은 4권의 책 또한 이어령 교수만의 한국 문화 이야기가 어떻게 꼬불꼬불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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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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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이름이 주는 묵직한 맛이 있다. 집에 정사 삼국지(진수)도, 황석영 작가 번역의 소설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설)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표지 말고는 펼쳐보지 않았지만 말이다.(이게 바로 내 책이 되는 순간 언젠가 읽겠지...의 폐해다.) 그렇다고 삼국지의 내용을 1도 모르는 건 아니다. 10권짜리 전집은 아니어도, 두 권으로 축약한 책은 읽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삼국지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이문열 번역의 삼국지를 읽다가 2권 초반에 접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전집을 들일 때도 그래서 나름 고민하고 자문을 구한 다음에 구입했지만 읽지 않을 바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삼국지 기행이라는 제목을 마주한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3세기(정사 삼국지 기준)부터 이어져 온 위. 촉. 오 3국의 배경이 되는(또는 15세기- 삼국지연의 기준) 곳이 과연 현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또 하나는 삼국지 기행이 흥미롭다면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읽는 데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행이라면 두 권의 삼국지가 궁금해졌다. 내용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장소 속에서 벌어졌던 일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은 2009년 동일 저자가 쓴 책의 증보판으로, 저자가 약속했던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 과거의 다녔던 지역 중 일부를 다시 다녀보고 책을 손봐서 다시 내놓았다고 한다.

사실 삼국지의 내용을 정확히 꿰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1.2권으로 나뉘어서 담긴 이야기가 각 권의 어떤 부분을 놓고 답사했는지를 쓸 수 없는 게 아쉽다. (제목과 내용을 보자면 유비와 관우, 장비의 만남부터 동탁의 정권을 잡고 적벽대전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다행이라면 저자가 각 장소를 다녀오면서 삼국지 속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내기 때문에 삼국지를 읽지 않았어도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두 책(정사 삼국지, 삼국지연의)을 대비하며 실제 역사와 다른 소설만의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코멘트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진짜 역사와 창작된 역사를 구별하며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직접 다녀온 삼국지 속의 배경지를 언급하기에 앞서서 앞으로 갈 곳의 지도를 먼저 보여준다. 삼국지 속 어떤 부분의 내용인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실제 사진이 함께 담겨 있기에 읽는 맛보는 맛이 쏠쏠하다. 사실 상당히 오래된 역사인지라 과연 오랜 세월 동안 그 장소가 잘 보존되어 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책 속 내용을 마주하니 극과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 중 상당수는 파헤쳐 지고, 그냥 터만 남아 있거나 터 조차 없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오히려 찾아간 저자나 글로 마주한 내가 민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다른 장소는 관광객을 위해 과할 정도로 꾸며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삼국지가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차라리 후자처럼 보존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1권에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조조와 관련된 장소와 함께 삼국지연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서에 따라 황건적, 동탁, 여포, 원소 등과 관련이 깊은 장소가 등장했다. 우리도 유비와 조조에 대한 온도차가 상당한 것처럼, 중국인들 역시 그런가 보다. 상대적으로 조조와 관련된 장소(고향을 비롯하여)들의 경우 마을 사람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보존 상태도 아쉬움이 남으니 말이다. 또한 누구나 삼국지 하면 떠오르는 삼 형제의 도원결의가 실제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도원결의 장소는 관광객을 위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놓긴 했지만 말이다.

이어지는 2권에서는 삼국지의 어떤 장소가 등장할지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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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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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다 괴롭힘에도 '무시'라는 음습한 방법이 있다는데,

거기에는 상대를 배려하거나 동정하는 마음은 없다. 그저 괴롭힐 뿐이다.

아버지의 무시는 다르다. 아들을 근본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아들의 가장 약한 곳, 가장 몹쓸 곳, 장차 아들을 비뚤어지게 할 요인을 몰아내기 위해서다.

지난달 읽었던 책 중 한 권이 등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공포물이었는데, 이번에 마주한 등대는 같은 소재를 사용했지만 많이 달랐다. 둘 다 소설이고, 등대가 중요한 매개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느낌은 극과 극이니 말이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배들의 길잡이가 돼주는 등대. 세상을 떠난 주인공 마키노 고헤의 아내 마키노 란코 역시 누군가의 등대였다는 사실을 책을 덮으며 떠올리게 되었다.

마키노 중화 소바 집 주인인 마키노 고헤는 아버지로부터 중화 소바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가 중화 소바 주인이 된 데는 적잖은 사연이 있다. 천성이 소심하고,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 인터라 매일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등교했던 고헤에게 한 여학생으로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유를 설명했겠지만, 깨끗하게 씻고 등교한 날도 그 소리는 계속 고헤의 귓가에 남겨졌다. 결국 그 일을 이유로 고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몇 년 후, 가게에 들렀던 손님 란코를 만나 결혼을 하고 3남매를 둔다. 요령 부리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의 방식으로 중화 소바를 만들던 어느 날, 아내 란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일까? 그날 이후로 고헤는 가게를 접는다. 란코 없이 중화 소바를 만들어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이자 상점가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야마시타 도시오와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건물을 올려서 먹고사는 구라키 간지와 가깝게 지내며 살고 있던 중, 낮까지만 해도 자신의 장미를 자랑하던 간지(간짱)이 갑자기 사망하자 패닉에 빠진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란코와 절친 간짱의 죽음은 고헤에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다. 우연히 도시오의 가게를 들렀다가 보게 된 달력 속 등대 사진은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과거 란코 앞으로 왔던 등대가 그려진 작은 엽서가 있었다. 보낸 사람은 고사카 마사오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란코는 고사카 마사오가 누군지 모른다는 답장을 써서 보낸다. 그때의 그 엽서가 고헤가 유일하게 읽지 않았던 책 신의 역사 사이에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고헤는 가까운 등대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아내가 털어놓지 않았던 과거 이즈모에서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데...

친구이자 급사한 간짱에게는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 대기업 재직 중 바람을 피웠던 것이다. 가정이 있는 간짱은 상대에게 아이를 지웠다는 말을 듣고 관계를 정리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갑작스럽게 간짱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자신의 아들 다키가와 신노스케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털어놓는다. 또 다른 친구 도시오에게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얼마 후, 골목을 배회하는 한 부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간짱의 아들 신노스케라는 사시를 알게 되고, 신노스케에게 도움을 줬던 고헤는 신노스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짐작건대 그런 사람들은, 놀랄 만큼의 행복은 평생 만나지 못한다.

말라죽은 줄 알았던 작은 화분의 꽃씨가 연둣빛 새싹을 틔웠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삐딱하게만 굴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어느 날 대문 앞에 서 있다가 "죄송해요"라며 울먹인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의 인생에나 넉넉한 행복이 마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소설의 분위기는 잔잔하다. 고헤의 성격을 닮은 듯하다. 아내의 죽음 이후, 바깥출입을 줄여온 고헤가 우연한 계기로 등대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어간다. 자녀들과의 교류뿐 아니라, 다시 가게를 열고자 마음을 먹기도 한다. 친구의 숨겨진 아들인 신노스케와의 관계나 숨겨진 엽서의 주인공 고사카 마사오를 만나며 고헤는 란코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당연히 이야기해야 할 이유조차 말하지 못해서 학교를 그만두었던 고헤는 타인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된다. 물론 그 변화가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등대는 단순히 소재가 아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돼주는 등대의 역할을 이 책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고헤 그리고 란코의 이야기가 묵직한 여운을 주는 것 또한 그래서 일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내 일상에도 참 많은 행복이 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다 괴롭힘에도 ‘무시‘라는 음습한 방법이 있다는데,

거기에는 상대를 배려하거나 동정하는 마음은 없다. 그저 괴롭힐 뿐이다.

아버지의 무시는 다르다. 아들을 근본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아들의 가장 약한 곳, 가장 몹쓸 곳, 장차 아들을 비뚤어지게 할 요인을 몰아내기 위해서다.

짐작건대 그런 사람들은, 놀랄 만큼의 행복은 평생 만나지 못한다.

말라죽은 줄 알았던 작은 화분의 꽃씨가 연둣빛 새싹을 틔웠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삐딱하게만 굴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어느 날 대문 앞에 서 있다가 "죄송해요"라며 울먹인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의 인생에나 넉넉한 행복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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