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벌어지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내가 있을 때 이룩해야 하고 내가 있을 때 끝장을 봐야만 한다.
다음 세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급하고, 해야 할 일만 많다.
하지만 정작 비중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은 몇 가지나 해결하는가.
야단법석과 부화뇌동, 우왕좌왕과 조변석개로 끝난다. 더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삼국지 기행의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조조의 이야기다. 유비에 비해 악역을 도맡아 하는 조조는 정말 삼국지연의에 이야기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을까? 조조의 마지막을 기록한 삼국지연의의 부분을 보자면 정말 마지막까지 교만이 철철 흐른다. 죽어가는 마당에도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과 노래와 춤까지 곁들이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의 유언을 다르게 적고 있다. 장례가 끝나면 상복을 벗고, 병사를 통솔하는 자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고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행하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의 시신에 평상복을 입히고 다른 것은 묘에 넣지 말기를 당부한다. 삼국지 기행의 저자는 실제 역사와 삼국지연의 속 역사를 비교하며 실제 인물의 인물됨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조조라고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유비라고 실책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조조가 아꼈던 동작대와 업성의 이야기로 책의 포문을 여는 2권에는 삼국지의 중반을 넘어 위. 촉. 오 세 나라의 성립과 패망이 담겨있다. 특히 이 세 나라가 서로 견제와 동맹을 적절히 사용하며 서로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구축하는 장면들 속에 등장하는 지역들을 돌아보는데, 초판을 쓰며 저자가 다녔던 지역을 새롭게 소개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 없던 건물이나 새롭게 개장한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삼국지의 인기에 편승하여, 좀 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성곽이나 성벽을 복원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히려 보존되어야 할 문화재는 한쪽에 방치되어 있고, 다른 것만 크고 웅장하게 증축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 내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고 웅장한 부분만 보고 지나쳤겠지만, 삼국지 관련 책을 내고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꼼꼼히 비교하며 팩트를 판단할 줄 아는 저자의 눈에는 그런 부분들이 더 확연히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저자가 언급해 주었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적지 뿐 아니라 각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각 진영의 인물들의 됨됨이나 상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삼국지를 마주했을 때 알았으면 하는 인문학적 소양도 함께 다룬다. 덕분에 여행서를 넘어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권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나 역시 삼국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큰 부상을 입은 관우가 의사 화타의 치료를 받으며 바둑을 두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있던 지역인 형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뼈의 독을 긁어내는 수술(괄골요독)을 받은 관우는 신의라 불리는 화타의 집도를 받았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마량과 바둑을 두었다는 데 있다. 이 지역에는 현재 형주 병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정사에 의하면 관우는 화타의 치료를 받기 몇 년 전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것은 소설 속 관우에 대한 인내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듯싶다.)
과거 장비와 관련된 유적지인 장강 삼협은 댐 공사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장비 사당 또한 그 지역에 있어서 소실될 뻔했지만 댐 완공 전 상류 쪽으로 옮겨서 복원해두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조조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는지라, 조조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하나 둘 발굴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보도된 지 10년째지만 여전히 발굴 중이라는 조조의 고릉은 과연 언제쯤이면 마주할 수 있을까? 저자의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내게도 느껴져서 안타깝기만 했다.
식견 있는 저자 덕분에 더 풍부하고 정확한 삼국지 기행을 했던 시간이었다.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완독한 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