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용이 울 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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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의 두 번째 권은 땅속의 용이 울 때다. 첫 번째 권인 별의 지도는 얼핏 유추가 가능했지만, 땅속의 용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내심 난해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 아닐까 우려했는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싶다. 땅속의 용을 한자로 하면 지룡(地龍)이다. 지룡이 과연 누구일까? 사실 이 생물이 이렇게 불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른 이름으로는 토룡(土龍), 구인(蚯蚓)이라고도 부른단다. 힌트는 지룡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환형동물이다. 혹시 눈치챘는가? 지룡은 바로 지렁이를 의미한다. 혹시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지렁이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이 첫 장부터 빵빵 터진다.

도대체 지렁이가 뭐길래 찰스 다윈도, 이어령 교수도 지렁이를 생각하며 연구하고 책을 쓴 것일까? 나 역시 비 오는 날 길을 따라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참 많이도 봤다. 어찌 보면 생태계의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지렁이 때문에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지렁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약해 보이고, 가장 약하기만 한 지렁이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간다. 흙을 먹고 분해하고 배변하고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흙 속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때론 흙 밖으로 나와서 나뭇잎을 먹고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서 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그 식물을 먹고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간다. 지렁이가 묵묵히 살아낸 그 시간이 지금의 우리까지 살게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렁이는 약하지만 강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담긴 이야기가 펼쳐지며 또 다른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대 당시 마주한 노부부와 자동차 이야기를 비롯하여 아리랑과 한자세대 그리고 한글세대의 이야기, 일본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20대부터 작년에 별세하기 전인 88세까지 60여 년간 글을 쓴 이어령 교수는 자신을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10년을 단위로 늘 새로운 글과 생각들을 펼쳐놓은 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놀랐고, 조금만 나이 들어도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소위 꼰대가 되는 사람이 많은 시대 속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이의 마인드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밖에도 채집을 해서 먹고사는 수렵인들과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의 우리들에 대한 비교 글도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당연히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수렵인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보다 더 고달프고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왠지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저자의 견해는 달랐다. 물론 저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타인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간다.

수렵 채집인은 인근의 식량 자원이 고갈되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납니다.

우리에게는 고되게 보이는 이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소풍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이 '게으른 여행자'가 도착한 새로운 지역은 식량을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제공해 주었겠죠.

게다가 이들의 인구는 자연이 마련해놓은 훌륭한 창고의 혜택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적절했어요.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사느냐에 따라 삶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글쎄... 덮어놓고 그들이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만난 저자 이어령 교수의 글에는 다양한 감정선이 담겨있다. 유머도, 채찍도, 감동도, 그리고 묵직한 눈물도 담겨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 한국인 시리즈는 총 6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은 4권의 책 또한 이어령 교수만의 한국 문화 이야기가 어떻게 꼬불꼬불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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