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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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라는 말이 떠올랐다.

연극 무대나 영상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로 페퍼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을 텐데,

아무튼 조명과 유리를 사용해 다른 곳에 있는 물체를 관객 앞에 보여주는 기술이다.

원래 거기 말고 다른 곳에 숨겨진 물체가 마치 거기 있는 것처럼 등장한다.

다작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만났다. 페퍼스 고스트. 제목을 읽어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고스트는 귀신인데... 그럼 귀신이 등장하나? 책 중반부를 넘어갔을 때 제목의 뜻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뜻이 그때 등장하는 이유 또한 이해가 간다. 그 장면에서야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알았다.

책 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현실 속과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중학교 국어교사 단 지사토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능력인데(아버지 역시 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은 능력이다.), 일명 선공개 영상이라는 이름의 능력이다. 어떤 상황이던지, 비말이 튄 상대방의 다음날 일어날 하이라이트 상황이 단에게 보인다. 10초일 수도, 3분일 수도, 10분일 수도 있다. 이 능력에 대해 들은 것은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날이었다. 자신이 겪었기에 조언해 줄 수 있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무엇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을 유언과 같이 남긴다. (아버지는 자신이 다음 날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선공개 영상을 통해서 말이다.) 두 명의 학생과 대화를 나눴던 단은 그중 한 학생의 선공개 영상을 보게 된다. 신칸센 열차 탈선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면이었다. 고민을 하던 단은 사토미 다이치에게 연락을 한다. 자신의 친구인 점술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는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 정말 신칸센 열차 탈선사고가 일어나고, 학생과 외할머니는 무사히 사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학생의 사토미의 아버지인 사토미 핫켄이 단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우연히 사토미 핫켄을 마주한 단은 그가 신칸센 사건의 배후로 단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털어놓는다. 얼마 후, 단은 사토미 다이치로부터 아빠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사토미 핫켄과 같은 동우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노구치 하야토와 나루미 효코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한편, 단 지사토의 반 학생 중 후토 마리코는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국어 교사이자 담임인 단에게 자신의 소설을 건넨다. 소설 속에는 고양이를 잡아 잔인하게 괴롭히고 죽이는 화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고지모(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를 보고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대신해 복수를 하는 2인조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가 등장한다. 2인조라 하지만, 성격은 판이하게 다른 둘은 10억 엔의 돈을 받고 과거의 고지모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이 고양이에게 한 짓을 똑같이 해주는 복수를 대행하고 있다. 과거 고지모 후원자이자, 추잡한 인터넷 방송과 가상화폐로 큰돈을 번 바쓰모리 바쓰타로에게 복수를 하러 가던 날, 그들보다 앞서 바쓰타로가 납치된다. 가까스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바쓰타로를 다시 덮치는 2인조는 바쓰타로에게 복수를 가하던 중, 자신을 납치한 사람 중 한 명이 고지모 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접점을 통해 얽히게 된다. 사실 중반부를 지날 때까지 왜 작가가 이 두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놨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대단한 반전! 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자신의 능력을 그냥 넘기지 않고 타인을 돕는 데 사용하는 단.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는 단의 모습과 고지모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 스스로 똑같은 방법으로 당함으로 인해 복수를 가하는 2인조 그리고 인질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방송에서 입을 잘못 놀려서 인질 전부를 죽게 만든 방송인과 그 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동우회 인물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아냈다. 누군가는 더 많이 구하지 못함에 안타까움을 가진 반면, 누군가는 자신이 지은 잘못에 대해 뉘우치기는커녕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대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이한 설정 중 또 하는 사토미 핫켄과 단 지사토의 첫 만남에서부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등장하는데, 그 또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힌트를 주자면 영원회귀설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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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클래식 라이브러리 7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현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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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유명한 고전 중 하나다. 이해하기 어렵고, 얇은 분량에 비해 진도가 술술 안 나가는 다른 고전소설에 비해 꽤 흥미롭게 읽히기도 했다. 클래식 라이브러리 7번째 책으로 만난 인간 실격 안에는 두 작품이 들어있는데, 표제작인 인간실격과 유고집이자 미완성 작품인 굿바이 이렇게 두 편이 담겨있다. 2년 전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지라 인간 실격의 내용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부분이 자신의 삶을 옮긴 것일까 궁금했었다. 책 말미의 해설을 읽다 보니, 마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가령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비롯하여 좌익이라 부르는 마르크스 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알고 지냈던 여성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남고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 등이 실제 작가의 삶과 닮아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자신의 집안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 등의 감정이 인간 실격을 비롯한 여러 작품으로 담겨있는 것 같다.

다시 마주한 인간 실격을 읽으며 주인공 요조는 참 여린 심성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 대한 공포증이라 보였던 감정들이 실제로는 자신과 다름을 대놓고 인정하기 힘들었기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이나 아버지의 지인들이 오바 요조 앞에서 해낸 불평과 달리 아버지 앞에서는 칭찬 일색인 모습들을 보며 낯설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나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오히려 타인을 웃기기 위해 어릿광대 역할을 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기자인 시즈코의 도움을 받아 그와 동거하며 딸인 시게코를 돌볼 때의 이야기였다. 시게코를 진짜 딸처럼 생각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시게코로 부터 진짜 아빠를 갖고 싶다는 말을 들은 요조는 큰 상처를 받는다. 나라면 그동안 내가 너에게 그런 아빠가 아니었냐고 물을 만도 한데 요조는 집을 떠나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집 앞에서 시게코와 시즈코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그 길로 아예 집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그들의 행복을 빼앗을까 봐, 그들의 행복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때론 타인과 나를 속이며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갈 배짱이 없던 요조의 삶을 마주하며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사실 누구나 그런 거짓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누구나 스스로를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요조는 타인 앞에서의 가면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가졌지만, 누구도 요조에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 오히려 요조는 어떤 면에서는 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생활을 20년 가까이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아마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고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만든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주인공 요조와 겹쳐져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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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인 군주론 - 나를 지키는 마키아벨리 500년의 지혜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5
이시한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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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모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군주론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슨 반전 소설인 양, 허를 찌르는 내용들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문화충격이다. 지식 편의점으로 유명한 이시한 교수의 아주 개인적인 군주론을 읽으며, 조금 더 쉽지만 와닿는 군주론을 맛본 시간이었다.

군주론을 집필한 사람은 알다시피 마키아벨리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는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그때도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바로 이 군주론이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군주론의 저자이기에, 당연히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하급 공무원 출신에 유력한 집안이거나 귀족 출신도 아니었다. 과거에는 영예가 있었지만, 마키아벨리가 출생할 즈음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 책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그는 하급 공무원 출신이었기에 권력의 정점에서 책을 기록할 수 없었다. 단, 자신의 위치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군주론이 메디치에게 헌정되긴 했지만, 메디치의 군주로서의 자질을 돕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헌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키아벨리도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헌정 이후 메디치가는 조금씩 몰락하기 시작했고, 메디치가와 척을 진 인물이 정권을 잡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마키아벨리는 불평하고 포기했을까?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꾸준히 고전을 읽고(그것도 목욕재계를 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고 한다.

저자는 4장으로 나누어 군주론을 설명하고 분석한다. 1.2부는 거시적인 개념으로 바라본 군주론을 논했다면, 3,4부는 좀 더 지엽적이고 미시적으로 군주론을 바라봤다. 또한 앞으로 군주론을 읽을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군주론을 읽을 팁을 알려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군주론의 내용을 밸런스 게임 형태로 설명한 부분이었는데, 5가지의 내용 중 단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아니 500년 전에 쓴 책이 왜 현대인 보다 더 현대인 같은 것인가?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배여있는 동양 사상 때문에 좀 더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예로 저자는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을 이야기한다. 과거 빌 클린턴은 비서인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이 사실로 밝혀져서 곤혹을 치렀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바로 탄핵당했을 것이다. 서양은 정치와 윤리를 별개로 본다고 한다. 윤리적이지 못해도 정치적 능력이 있다면, 굳이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은 마키아벨리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군주론 안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조언들이 담겨있었다.

미래에 대한 큰 계획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삶에 충실하는 것. 그 매일매일을 꾸준히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상적인 판단만을 강조하다가 현실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저자의 팁과 함께 군주론을 마주해야겠다. 우리보다 더 현대인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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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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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녁식사에 오를 음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제빵사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해야 한다."

대학 재학 시절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였다. 우리 학교는 경영학 안에 전공필수과목으로 경제학이나 회계학 등이 들어있었는데, 1학년 1학기 경제학개론 첫 수업에 마주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다. 위에 줄친 문장은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에 나온 유명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마주한 글에서 그가 도덕 철학자로 도덕 감정론을 강의한 교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연히 경제학자이자, 경제학 교수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경제학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한 거두이니 말이다. 물론 그가 강의했던 도덕감정론에는 정치경제학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어감이 주는 느낌이 경제학이 아닌 "도덕"에 방점이 있기 때문에 의아하긴 했다.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의 저 한 줄 외에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나 그의 삶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올해가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이기에 그를 기념해서 나온 평전을 통해 애덤 스미스에 대해 깊이 있게 목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제학의 거두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긴 했지만,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터라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성장했다. 또한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하며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삶에 키워드 중에는 어머니 말고도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있다. 자신의 저작에 대한 사후 정리를 부탁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둘의 관계를 책 속에서 더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래서 두 명을 지정해 자신의 글에 대한 사후정리를 맡기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생각보다 애덤 스미스의 글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데이비드 흄과 주고받은 편지와 저서뿐이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애덤 스미스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꼼꼼히 필기한 내용이 남아있던 터라 그의 도덕감정론 수업에 대한 강의 내용이 전해졌다고 하니, 얼마나 그가 정제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애덤 스미스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국부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지냈던 커콜디에서의 경험을 비롯하여 종교적 마찰을 지켜보며 마주한 경험들 그리고 데이비드 흄, 허치슨 등과의 만남을 통한 이론의 정립 등은 그가 집필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의 토대가 된다.

필요한 것은 시장의 작용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길 준비가 된 군주였다.

완전하게 자유로운 국가에 사는 사람은 자기 역량을 국제적인 사업보다는 자국 내에서,

즉 법률과 관습과 사람들을 잘 아는 곳에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대외 소비 무역에 동등한 자본'을 사용할 때 보다 지역 산업을 자극할 수 있어

부를 순환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부분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애덤 스미스의 이미지와 책 속의 애덤 스미스의 이미지 사이의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들은 지극히 계산적이고, 냉철해 보였고 그를 주장했던 애덤 스미스 역시 그런 이미지 속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새롭게 마주하는 것을 비롯하여 애덤 스미스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부의 힘보다 개개인의 힘을 더 신뢰했던 그의 자유방임주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경제학을 넘어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애덤 스미스와 그의 이론에 대해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국부론》은 《도덕감정론》 및 관련 강의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인들에게 그들과 그들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지적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역사가들이 《국부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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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퉁이 집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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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와 역사와 로맨스가 이 한 권에 다 담겨있다. 오색의 다양한 물감의 결이 느껴지는 표지 속에 한 여인의 옆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오색의 빛깔은 꽃이 되고 나뭇잎이 된다. 그 모퉁이 집에서 일어난 80년의 이야기가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의 시선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와 현재 그리고 15년 전을 오고 간다. 시간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그들은 또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들 사이에는 꽃이 있다. 그리고 꽃을 통해 서로를 주고받는다.

진주 현지 마을에서 하나 꽃집을 경영하는 동우. 용남 부부는 세 자녀가 있다. 큰 딸인 마디와 쌍둥이 마린과 마룬. 마디는 아쟁 연주가다. 얼마 전 큰 사고로 손을 다쳐서 한동안 아쟁을 잡지 못했다. 지금은 회복하는 중이다. 마을의 모퉁이 집이 한 채 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저주받은 집이라 불리던 집에 두 남자가 이사를 온다. 마디네 하나 꽃집에서 매일같이 절화 꽃다발을 주문하는 터라, 알바로 바쁜 마린을 대신해 집으로 돌아온 마디가 모퉁이 집 배달을 맡았다. 사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마디는 그 집을 이끌렸다. 집 안에 커다란 정원이 있는 것일까? 가득 꽃내음이 뿜어져 나온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보던 중, 주인을 마주한다. 첫인상부터 날카롭기만 한 그 남자 모도유. 처음 보는 마디에게 생채기 나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왠지 마디는 도유가 무섭거나 어렵지 않다. 그가 차갑게 대해도 말이다. 모퉁이 집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성서휘는 도유와 반대로 무척 자상하다. 덕분에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친해진다.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진주 경찰서 정보관인 정아서. 왕 할머니라 부르는 증조할머니와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은 후부터 집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도 얼굴의 상처만큼 진하게 남은 상처 때문에, 옆집인 마디의 집은 오고 가지만 본가에는 가지 않는다.

시간은 다시 80년 전으로 건너간다. 동아염직소 사장인 고윤송은 경무부 부국장 등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차에 뛰어든 한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강은조였다. 도와달라는 그녀의 말에 은조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윤송. 은조는 그날 술자리에서 아쟁을 연주한 예인이었다. 은조에게서 나는 창포향 때문일까? 그날 이후 은조는 윤송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은조에게 마음이 있는 윤송은 어떻게든 은조와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하지만, 은조는 이미 뱃속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윤송은 은조의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양 소문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윤송의 집에서 일하는 여자아이인 옥이의 도움을 받는 은조. 윤송이 집을 비운 사이, 은조는 몰래 집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곳에는 일본 경찰 다카키가 있었다. 과연 은조와 다카키는 무슨 사이일까? 이 둘은 왜 몰래 만난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비밀 얘기를 옥이 듣게 되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해눈이라는 존재와 천년도 그리고 꽃과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 등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식물의 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은 책 속 인물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은 대를 이어가며 등장한다. 잠깐의 기다림도 지루한데, 15년을 기다리고, 100년을 기다릴 수 있다며 마음을 쓴 이야기가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설렘을 만들어 낸다. 책의 초반에 **으로 처리된 그 이름을 마주하게 되자, 퍼즐이 하나 둘 맞추어진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까?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끔찍한 시기를 지나며 스러져 간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은조와 구헌의 사랑 마디풀과 도유의 우정, 그리고 은조와 마디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가진 해눈의 이야기는 물이 땅에 스미듯 조금씩 풀어져 가며 또 다른 여운을 남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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