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저녁식사에 오를 음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제빵사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해야 한다."
대학 재학 시절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였다. 우리 학교는 경영학 안에 전공필수과목으로 경제학이나 회계학 등이 들어있었는데, 1학년 1학기 경제학개론 첫 수업에 마주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다. 위에 줄친 문장은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에 나온 유명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마주한 글에서 그가 도덕 철학자로 도덕 감정론을 강의한 교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연히 경제학자이자, 경제학 교수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경제학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한 거두이니 말이다. 물론 그가 강의했던 도덕감정론에는 정치경제학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어감이 주는 느낌이 경제학이 아닌 "도덕"에 방점이 있기 때문에 의아하긴 했다.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의 저 한 줄 외에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나 그의 삶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올해가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이기에 그를 기념해서 나온 평전을 통해 애덤 스미스에 대해 깊이 있게 목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제학의 거두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긴 했지만,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터라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성장했다. 또한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하며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삶에 키워드 중에는 어머니 말고도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있다. 자신의 저작에 대한 사후 정리를 부탁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둘의 관계를 책 속에서 더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래서 두 명을 지정해 자신의 글에 대한 사후정리를 맡기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생각보다 애덤 스미스의 글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데이비드 흄과 주고받은 편지와 저서뿐이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애덤 스미스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꼼꼼히 필기한 내용이 남아있던 터라 그의 도덕감정론 수업에 대한 강의 내용이 전해졌다고 하니, 얼마나 그가 정제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애덤 스미스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국부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지냈던 커콜디에서의 경험을 비롯하여 종교적 마찰을 지켜보며 마주한 경험들 그리고 데이비드 흄, 허치슨 등과의 만남을 통한 이론의 정립 등은 그가 집필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의 토대가 된다.
필요한 것은 시장의 작용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길 준비가 된 군주였다.
완전하게 자유로운 국가에 사는 사람은 자기 역량을 국제적인 사업보다는 자국 내에서,
즉 법률과 관습과 사람들을 잘 아는 곳에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대외 소비 무역에 동등한 자본'을 사용할 때 보다 지역 산업을 자극할 수 있어
부를 순환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부분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애덤 스미스의 이미지와 책 속의 애덤 스미스의 이미지 사이의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들은 지극히 계산적이고, 냉철해 보였고 그를 주장했던 애덤 스미스 역시 그런 이미지 속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새롭게 마주하는 것을 비롯하여 애덤 스미스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부의 힘보다 개개인의 힘을 더 신뢰했던 그의 자유방임주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경제학을 넘어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애덤 스미스와 그의 이론에 대해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국부론》은 《도덕감정론》 및 관련 강의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인들에게 그들과 그들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지적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역사가들이 《국부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P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