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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as Grace (Paperback) - 마거릿 애트우드 『그레이스』원서
마거릿 애트우드 / Little, Brown Book Group / 2019년 8월
평점 :
열여섯 살 소녀가 두 사람을 죽인 죄로 갇혔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날의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말을 믿으시겠어요?
오늘 소개할 책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Alias Grace》입니다. 한국에는 《그레이스》로 소개되었습니다.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 역사 심리 소설이고, 영어 원서로는 중상급 이상의 난이도입니다.
기억이 없는 살인범
주인공 그레이스 마크스는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하녀입니다. 어머니는 이민선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일찍부터 남의 집에서 일하던 그레이스는 같은 하녀 메리 휘트니와 가까워지지만, 메리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그레이스는 토머스 키니어의 저택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843년, 키니어와 그의 가정부 낸시가 잔혹하게 살해됩니다. 함께 일하던 하인 제임스 맥더모트와 그레이스가 체포됩니다. 맥더모트는 교수형을 받았고, 그레이스는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소설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1859년에 시작됩니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수감 중이고, 사건 당일의 기억만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레이스를 사면하려는 사람들은 젊은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조던은 그레이스와 마주 앉아 그의 삶을 이야기하게 합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소설의 긴장이 생깁니다. 그레이스가 이야기를 풀수록 독자는 오히려 더 헷갈립니다. 그는 순진한 피해자일까요, 영리한 거짓말쟁이일까요? 결말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책을 덮을 때까지 확실한 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는 점만 알려 드립니다.
비슷한 스릴러와 무엇이 다를까
이 소설은 범인을 맞히는 추리물이 아닙니다. 사건의 진상보다 '누가 이야기를 쥐고 있는가'가 중심에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던에게 들려줍니다. 조던은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 하고, 신문과 재판 기록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듭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여러 개의 서사가 부딪힙니다.
또, 반전의 짜릿함보다 의심이 오래 남는 쪽에 가깝습니다. 당시 하녀의 삶, 계급, 여성에게 씌워진 편견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시대 소설로서의 깊이도 있습니다.
영어 원서로서의 가치와 난이도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보통 판본으로 450쪽 안팎이라 끝까지 읽으려면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체감 난이도는 중상급 이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문장 구조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복잡한 문장 때문에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다만 시대적 표현과 생활 어휘가 등장하고, 1인칭 서술과 편지, 신문 기사 등 여러 형식이 교차해 읽는 데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감춰진 정보와 모호한 서술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체감 난이도가 높습니다.
첫째는 시대 어휘입니다. 19세기 캐나다가 배경이라 바느질, 살림, 옷감, 집안일과 관련된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일상 영어 학습용 어휘와는 결이 다릅니다. 둘째는 형식입니다. 그레이스의 1인칭 독백, 조던의 시점, 편지, 신문 기사, 시가 번갈아 나옵니다. 장마다 말투와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의도적인 모호함입니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문장을 이해해도 '그래서 무슨 뜻이지?' 하고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장점도 분명합니다. 대화가 자연스럽고, 인물의 목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이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에, 천천히 읽을수록 얻는 것이 많은 책입니다.
솔직한 평가와 추천 독자
빠른 전개와 확실한 반전을 기대하는 분께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중반까지 이야기가 느리게 흐르고, 결말에서도 모든 것이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문학성이 있는 영어 원서에 도전하고 싶은 분께는 추천드립니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타인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묻는 소설입니다. 그레이스의 기억과 진술을 따라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오히려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늘어납니다. 사건의 결말보다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심리 묘사와 모호한 진실을 탐색하는 문학소설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합니다. 영어 원서로는 분량과 시대적 어휘가 부담스럽지만, 다양한 서술 방식과 인물의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