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oklyn (Paperback)
콜럼 토빈 / Penguin Books Ltd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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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오랜 그리움 끝에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이미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 그 씁쓸하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이 있을까요? 아일랜드 작가 콜럼 토빈의 소설 『Brooklyn』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에니스코시에서 변변한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던 스물 남짓의 젊은 여성 에일리스 레이시. 그녀는 언니의 주선으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건너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떠나고 싶지만 두려움에 망설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유독 가슴에 와닿을 것입니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에일리스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볼까요?


소설의 전반부는 에일리스의 이민 초기 생활을 촘촘하게 그려냅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뱃멀미와 낯선 승객들의 냉담함, 브루클린 하숙집에서의 어색한 공동생활까지 — 이민자의 삶은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처음에는 극심한 향수병으로 직장에서도 문제가 생길 지경이지만, 그녀를 도운 신부님의 따뜻한 조언과 부기 학원 등록 덕분에 에일리스는 조금씩 브루클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이 슬쩍 던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과 '정체성'의 충돌입니다. 에일리스가 일하는 백화점에서 흑인 여성용 스타킹 판매 코너를 맡게 되면서 동료들의 편견과 맞닥뜨리는 장면, 그리고 유대인 강사의 가족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장면은, 균일한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자란 그녀가 세상의 넓이를 서서히 배워가는 성장의 순간들입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구 댄스 파티에서 만난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와의 연애는 처음에는 가볍고 설레는 감정으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일리스에게 안정과 소속감을 선물합니다. 토니는 거짓이 없고 솔직하며, 에일리스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함께 그려나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롱아일랜드에 집을 짓고 둘만의 삶을 꾸리겠다는 그의 다짐은 어딘가 촌스럽고 순박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소설은 달콤한 로맨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언니 로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에일리스를 다시 아일랜드로 불러들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갈림길에 접어듭니다. 고향에 돌아온 에일리스는 예전에 무시당했던 남자 짐 패럴이 자신에게 구애하는 상황, 어머니의 암묵적인 기대, 친구들과의 재회 속에서 자신이 이미 비밀리에 토니와 결혼한 사실을 숨긴 채 조금씩 옛 삶 속으로 흡수되어 갑니다. 마치 브루클린에서의 삶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에이니스코시의 일상이 그녀를 다시 감싸 안는 것입니다.

결국 에일리스를 현실로 끌어당긴 것은 낭만도, 이성도 아닌 지역 유지의 협박이었습니다. 자신의 결혼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위협 앞에서 그녀는 마침내 스스로 선택을 내립니다.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는 배표를 끊고, 어머니에게 진실을 고하며, 짐에게는 편지 한 통을 우편함에 남기고 떠나는 장면 — 그 마지막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에일리스는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비겁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삶이란 언제나 깔끔한 선택보다 어중간한 감정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단순한 이민 소설도, 순수한 연애 소설도 아닙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심리, 그리고 그 불완전한 자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 소설입니다. 고향과 새 삶,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리는 에일리스의 이야기는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려 본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조용하지만 깊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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