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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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을 때 그(그녀)의 전화가 올까 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하지 않은 적이 있으신가요? 행여 전화 벨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진공 청소기나 헤어 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하지 않은 적이 있나요?


p11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은 한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1980년대 후반 매력적인 기혼 남성과의 2년 간의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1인칭 서술자인 여자 주인공은 그를 사랑합니다. 언제나 그를 생각하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무슨 일을 하건 그 남자만을 생각하고 대화에서도 그와 관계된 화제에만 흥미를 보일 정도입니다. 그는 유부남이어서 어쩌다가만 만날 수 있었고 그나마 몇 시간만 같이 있었지만 주인공은 세심하게 준비하며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p33 때로, 그 사람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태연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의 차이 때문에 너무나 불안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행복했지만 떠나고 나면 다시 불안해졌고 그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만 불안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일상적인 일들은 모두 무의미해졌고 아들들도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그와 만나면서 예술 취향도 달라지고 만남을 기원하며 선행을 하는 등 그는 주인공의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의 실수나 그와 함께 있다 타버린 카펫 같은 것까지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p47 내가 그 사람을 떠올리는 행위와 환각 사이에,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광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전혀 없는 듯했다

주인공 여자는 그 남자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든 그녀에게 그를 상기시키거나 그와 공통점이 있지 않는 한 다른 어떤 것 또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온종일 전화기 옆에 앉아 그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으며 다른 것들은 그들의 만남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약점, 그녀의 의존, 그녀의 욕망, 그녀의 집착. 마약 중독자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그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하지만 그녀는 전혀 모릅니다.


p31 그 사람의 질투는 나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증거라는 생각에,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 질투의 증거로 생각되는 것은 탐욕스럽게 기억해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크리스마스 휴가에 여행 떠날 거야?"라는 그 사람의 물음이 그저 흔한 일상적인 물음일 뿐이지 내가 누구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회적으로 하는 질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서 전화를 기다리는 불안함을 포착합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그녀가 경험하는 압도적인 피로감, 곧 부재의 고통이 뒤따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기분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즉 연인의 부재와 존재의 구분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p59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6개월 정도 지난 후, 주인공은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사귐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사실, 그녀는 그가 결국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순간의 쾌락은 미래의 고통으로 물들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프랑스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p74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이 책은 삶, 사랑, 그리움, 기다림, 이별의 고뇌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불륜을 해본 사람이나 심지어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깊이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모든 페이지에 아름다운 문장이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읽었지만 아주 천천히 읽었고 아름다운 문장들에 여운이 남았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단순한 열정’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솔직하게 내면의 심리와 감정, 생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남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진 상태에 대해서는 아주 사실적으로 나열해 놓았습니다.

사실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불륜을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소설의 끝 부분 역자 후기에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었고,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상당히 논란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저자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왜 썼을까요?

육체적인 쾌락만을 위한 만남에 느껴지는 것이 논란거리가 된 것일 뿐이지, 그녀가 느낀 감정은 지극히 평범하고 아주 ‘단순한 열정’ 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가끔은 기다림이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이 상처가 되는 관계를 보게 됩니다. 정말 사랑하는 관계라면 상처가 없는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정말 사랑한 것일까요? 정말 사랑했다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아름답고 지나간 순간만으로도 가슴 벅찬 따뜻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속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
- P13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 P23

어느덧 4월이다. 이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A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외식을 하는 등 ‘일상의 작은 기쁨‘을 누려보겠다는 생각에도 거부감을 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열정의 시간을 살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도 더이상 A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게 될 언젠가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전처럼 그렇게 내 일상을 집요하게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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