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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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지 오웰은 "뚱뚱한 사람은 자신을 건장하다고 표현하지만 행복하지 못하다"며 비만에 대한 염려, 두려움과 편견 등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부유해지던 이 시절의 ‘뚱뚱함’이 아닌 현대사회의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에 대한 욕구가 폭식증을 비롯해 각종 식이장애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광고와 미디어는 이상적 몸매와 외모를 제시해 수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충족할 수 없는 사이비 욕망을 촉발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합니다. 왜냐하면 마른 체형 선호와 잘못된 체형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래야 미디어, 뷰티 기업, 성형 전문병원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거식증에 걸려 생리까지 멈추고 열 두살짜리 아이의 청바지를 입어야 했던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p33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치우쳐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 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 무대에 반드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저자는 거식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감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으로 봅니다. 이것은 많은 여성들에게 비극적이고 무감각한 극도의 신체 혐오, 즉 자기 기아, 병적 비만, 과도한 미용 변형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p71 날씬함을 위한 선결 조건인 통제된 식욕은 아름다움, 욕망의 대상이 될 자격, 가치있음을 함축한다. 통제되지 않은 식욕-뚱뚱한 여성-이 함축하는 바는 그 반대여서, 뚱뚱한 여자는 추하고 역겨우며 근본적으로 무가치하게 취급된다.


또한, 거식증은 무한한 선택의 자유, 그러나 아무 것도 충족할 수 없는 이 부조리함 속에 나타난 것라고 말합니다. 여성의 욕망을 허용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이상적인 여성의 몸을 거부함으로써 보여주는 조롱이자 복수인 셈입니다.

여성의 식욕이 모녀 관계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무자비한 이미지 광고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정신에 의해 여성의 식욕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설명하며 여성 기아의 복잡한 생리학을 추적합니다.

p109 더 날씬하고, 더 예뻐지고, 옷을 더 잘 입고자 하는, 그러니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이 충동은 무엇일까? 이 다른 존재는, 그가 입고 있는 재킷 혹은 그가 먹지 않는 음식을 제쳐둔다면, 정확히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보이는 사람인가? 우리가 육체의 이미지에 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살은 많은 이들의 고민입니다. 특히 여성이라면, 애초부터 마른 게 고민인 몸으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한번쯤은 살을 붙잡고 ‘이것만 없었으면’ 하는 생각, 한번쯤 다 해봤을 것입니다.

제 키의 표준체중은 60Kg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무게는 표준체중에 훨씬 미달한다. 하지만 표준체중은 어디까지나 표준체중일 뿐입니다. 사실 표준체중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뚱뚱’한 체중입니다. 분명 체중은 비만, 약간 비만, 표준 체중, 약간 미달, 미달, 이런 식으로 분류되는 것이 보통이라 ‘표준’안에만 든다면 ‘비만’이 아니어야 말이 되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간 비만이든 진짜 비만이든 ‘비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건 ‘그냥 뚱뚱’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치부합니다. 즉, 약간 비만의 타이틀을 달기도 전에 ‘그냥 뚱뚱’쯤은 표중 체중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p183 여성 혐오-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여자들에 대한 미움-는 이 문화의 정신에 깊이 박혀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언제나 그래왔다. 그것은 모든 시대, 서구와 동구,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회에 두루 걸쳐 있다


뚱뚱하다는 말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상태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뚱뚱하다는 말이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들은 냉전시대 간첩 표어마냥 쥐도 새도 모르게 무의식에 녹아들어 사람들을 비만혐오자로 만듭니다. 게으르다, 자기관리에 실패했다, 직업을 갖기 어렵다, 건강하지 않다, 사회성이 없다, 많이 먹는다, 게걸스럽다, 지저분하다, 옷을 못 입는다(정확히는 맞는 옷이 없다지만),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굼뜨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 못생겼다, 성적 매력이 없다,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다 등등. 뚱뚱하다와 뚱뚱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사회 속 부정적 인식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여성이 강박적으로 외모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한 결과입니다. 저 역시 오랫 동안 멀쩡한 식욕과 몸을 미워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혹한 사회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었을 뿐, 내 몸은 내가 입고 다니기 편안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대부분 가능하게 해주는 사실 꽤나 멋진 내 일부였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늘씬한 몸매의 선남선녀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21세기, '뚱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든 별난 세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황금의 다이어트산업이 쇠락의 길로 빠지는 것은 물론 평범한 '날씬함'보다는 희귀한 '뚱뚱함'이 오히려 돋보이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p251 섹슈얼리티는 자기 내부에-자신의 육체와 육체의 각각들 안에-위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내부에 있는 것이며, 열쇠를 돌려 점화해야 하는 것이다. 섹시하기 위해서는 섹시하다고 여겨져야 하고, 원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남이 원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거식증을 앓고 있지 않아도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고통스러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이야기함으로써 더욱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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