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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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집니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합니다. 거북해진 주신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합니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습니다.

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을 편성합니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 -은 이제 유괴당한 헬레네를 찾아오기 위해 각기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참가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 휘하의 10만 대군이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했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아가멤논 왕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신의 사슴을 죽인 탓으로 갑자기 바람이 자버려 그리스 함대는 출항할 수 없게 됩니다. 예언자의 말에 의하면 아가멤논 왕의 맏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가멤논은 오딧세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구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합니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p249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오

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 트로이 성주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합니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합니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p354 우리 중에 가장 용감한 자들이 모두 복병으로 뽑혔다고 한다면-그럴 때 전사들의 용기가 가장 잘 구별되지요. 누가 겁쟁이고 누가 용감한지 금세 드러나니까요. 비겁한 자는 수시로 안색이 변하고, 그의 기개도 마음속에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지 못하오. 그래서 그는 자꾸만 옮겨 앉고 앉은 채 발을 바꾸며, 또 죽음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마구 뛰고 이빨이 덜덜 떨리니까 말이오. 하나 용감한 자는 일단 전사들의 복병에 참가하고 나면 안색이 변하지 않을뿐더러 그리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한시라도 빨리 참혹한 전투에 뛰어들기를 원하지요

이 책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10년과 마지막 해에 약 51일만을 다룹니다. 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합니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됩니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 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릅니다. 이 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도록 권해보는 데서부터 중편 부분이 시작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빌려 입고 나가 싸웁니다. 그는 적병을 무찌르며 전진하다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처음에는 그를 아킬레우스인 줄 알고 두려워했던 트로이군의 반격을 받아 헥토르는 그를 죽이고 갑옷을 벗깁니다.

p528 이건 헥토르의 말이다. 이런 헥토르도 동생 파리스에게는 엄청나게 비난을 퍼붓는다. 하기야 파리스가 데려온 여자 하나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고 망한 나라의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 있소이다.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 속에 사나운 광기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분개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종말되기 시작하는 후편 부분입니다. 복수하기로 결심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릅니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갑니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합니다. 이때 트로이의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집니다.

p503 불화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지기를! 그리고 현명한 사람도 화나게 하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 꼭 그처럼 저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책의 주요 내용은 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오히려 ‘아킬레스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미케네의 왕이자 그리스 군대의 지도자 인 아가멤논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납치 한 아폴로 사제의 딸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 군대가 아폴로가 보낸 전염병에 휩싸이면서 일리아드가 열립니다. 결국 아가멤논은 항복하지만 테살리아의 동맹군 인 미르 미돈의 왕 아킬레스에 속한 여성을 대신합니다. 이것은 그의 분노로 싸움에서 철수하는 위대한 영웅인 아킬레스의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아킬레스는 야만적이고, 복수하며, 무자비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아름답고, 매우 용감하고 맹렬하게 충성하며, 억누를 수 없는 사랑과 은혜, 친절과 공감 능력이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지만,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허구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군사 서사시 중 하나 일지 모르지만, 실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는 두 발의 뒤쪽 힘줄을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 뚫고 그 사이로 소가죽 끈을 꿰어서 헥토르를 전차에 매달아 머리가 뒤에서 끌려오도록 해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이름난 무구들을 전차에 올려놓고 자신도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모니 말들도 마다않고 나는 듯이 달렸다. 헥토르가 끌려가자 그 주위에서는 먼지가 일고, 그의 검푸른 머리털은 양쪽으로 흘러내려 전에는 그토록 곱던 그의 머리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으니, 제우스가 이제 그를 적군에게 내주어 그 자신의 고향 땅에서 그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 P559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슬픔은 마음 속에 누워있게 내버려 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하나 그 분들은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 제우스의 궁전 마룻바닥에는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있는데 하나는 나쁜 선물이, 다른 하나는 좋은 선물이 가득 들었지요. 천둥을 좋아하시는 제우스께서 이 두 가지를 섞어 주시는 사람은 때로는 궂은 일을, 때로는 좋은 일을 만나지요. 하나 그분께서 나쁜 것만 주시는 자는 멸시의 대상이 되지요

- P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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