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일반적인 개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와 같이)은 아마도 이 이야기보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정신 분석과 더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쓴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3대 비극작가로 꼽힙니다. 괴테는 “소포클래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래스의 작품이 몇편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이다”라고 그를 극찬했습니다.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가리켜 테베 3극이라고 하며 오이디푸스를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붙잡고 있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p49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가 진작부터 라이오스의 살해자라 선언하고 위협하며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소. 그는 명목상으로는 이방 출신의 거주자이지만, 나중에는 태생부터 테바이 사람임이 드러날 테고, 그 행운에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 뜬 자에서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이국 땅을 향해 지팡이로 앞으로 더듬으며 가게 될 것이오. 또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로서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자 그의 살해자임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니 들어가서 이것을 따져 보시오. 그대가 만일 내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 예언술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시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인 아버지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왕은 이미 ‘아들에게 살해당한다’라는 신탁을 받고 있었으므로 아들이 태어나자 왕비에게 죽이라고 명령했고 왕비는 시종에게 그 일을 시킵니다.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었던 시종은 아이를 산속의 한 나무에 매달아 놓습니다. 아이가 발견되었을 때 그의 발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그 부은 발을 보고 아이의 이름을 오이디푸스라 했습니다. 아이는 마침 자식이 없던 고린도의 왕에게 바쳐집니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런 기괴한 일을 피하기 위해 고린도를 떠납니다. 테베를 여행하던 중 좁은 길을 서로 먼저 가려다 시비가 붙은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죽입니다.

아울러 테베의 골칫거리였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구합니다. 테베의 왕으로 추대 받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합니다. 그 사이에서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습니다. 그가 살해한 왕은 아버지였고 그가 결혼한 여인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신탁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테베는 그의 선정 아래 평화와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범죄를 알고 있던 신들은 심판을 시작합니다. 테베에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는 델포이로 사람을 보내 신탁을 구합니다. 신탁은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면 역병이 물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 티레시아스는 살해자가 바로 오이디푸스임을 알려 줍니다.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몸서리치던 오이디푸스는 아내마저 자살하자 아내의 옷에 달려 있던 황금브로치로 자기 두 눈을 찌릅니다. 그리고 나라를 크레온에게 맡기고 유랑에 나섭니다. 딸들과 함께 오랜 세월 갖은 수난과 고초를 겪으며 세상을 떠돌다 마침내 클로노스에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현명한 클로노스의 지배자 테세우스의 도움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운명은 신들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운명은 한 마디로 거역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을 오이디푸스라는 개인이 거역하려고 합니다.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 앞의 단순한 제물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포기하면서 파멸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독자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이디푸스는 진정한 의미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계획과 자신의 행동 사이에서 생겨난 괴리를 무한한 고통 속에서 극복해낸 영웅이었습니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한 인간의 삶이, 운명이라는 덫에 빠져 불행한 암흑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들이 나누는 대사를 통하여 그 내면까지 통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파멸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진실을 추구하였으며, 그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을 숨긴 굴욕적인 삶 대신,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파멸적인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직접적인 행동이나 대사로서만 줄거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글의 흐름이나, 혹은 각주 없이는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삶과 내 존재에 대한 가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자아상을 되새겨 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