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 모네와 고흐를 사로잡은 일본의 판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쿠보 준이치 지음, 이연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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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를 아시나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의 공예품을 포장할 때 완충제 역할을 위해 종이를 넣었는데 거기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우키요에’였습니다. 포장지로 쓰인 우키요에였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동양에서 온 신기한 물건으로 여겨져서 수집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미술가와 수집가들이 앞다투어 일본 미술품과 공예품을 수입해 먼저 넣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또한 너무나 일본다운 미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19세기 후반 서구의 인상파 발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우키요에의 역사

초기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에 성립한 미술장르로서 종합적 회화양식으로서의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한편,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풍물 등을 그렸습니다.

초기의 우키요에는 육필화(친필)와 목판의 단색인쇄(묵절화)가 주류였습니다

p13 우키요에가 에도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메이지시대까지 서민을 비롯한 폭넓은 계층의 지지를 얻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목판화라는 복제 수단을 사용해 유행하는 풍속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p15

히시카와 모로노부야말로 목판화를 맨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한 화가입니다.

도리이키요만부의 시대가 되면 물질화에 붓으로 착생한 것도 나타납니다. 이것들은 주로 붉은 안료를 사용해서 착색되었고, 붉은 색을 사용한 것을 단화, 진홍색을 사용한 것을 홍화라고 불렀고, 홍화에 색을 2-3가지 더 첨가한 것을 홍절화라고 불렀다.

중기

금화가 탄생한 1765년부터 1806년경을 뜻합니다. 1765년에 그림달력이 유행하고 그 수요에 따라 다색 인쇄에 의한 동금화를 발명한 것으로 우키요에 문화는 본격적으로 개화기를 맞습니다. 스즈키 하루노부가 죽은 뒤, 인형적인 스타일에서 사실적인 것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키타오 시가마사는 사실적인 미인화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후기

1807년부터 1858년까지로 키타가와 우타마로 사후에 미인화의 주류는 관능미가 넘치는 미인으로 옮겨집니다

p37 우타마로는 인물의 상반신을 클로즈업한 오쿠비에에 미인의 개성적인 용모를 묘사하고 여성이 놓인 상황까지도 그리고자 하였으며, 야쿠샤에에서는 도슈사이 샤라쿠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렸다’라고 평가될 정도로 개성을 추구하였다.

2. 작품세계

미인화-기타가와 우마타로

p60

기타가와 우마타로는 신체를 생략하고 한층 클로즈업시켜 얼굴 중심의 기타가와 화풍을 고안하여, 인물의 표정이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는 미인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p52 회화에서 여성을 묘사할 때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각각의 시대에 존재했던 여성미의 이상형을 그려내기보다 각각의 시대에 존재했던 여성미의 이상형을 그려내려는 의식이 강했다

풍경화-호쿠사이와 히로시게

풍경이라는 자연의 공간표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투시원근법의 성숙, 명암범의 발달, 번짐 기법에 의한 공간표현 등 고차적인 판각법 해결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습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개척한 풍경화라는 새로운 장르는 정감있고 대상 포착에 기발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p79

우키요에 하면 ‘호쿠사이’로 상징될 만큼 우키요에를 혁신시킨 그의 힘은 천재적인 데에다 치밀하면서도 명쾌한 역학적 구성 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면, 우타가와 히로시에는 서민의 일상감각에 밀착하여 내면에 호소하는 순화된 서정성이 농후하며, 4계절이나 아침저녁으로 빚어지는 자연변화의 여러 가지 표정을 아름답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호쿠사이가 서양화기법을 극단적인 대비효과에 주로 이용하여 기법을 주제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면, 히로시게는 서양화처럼 3차원의 자연공간을 살리는데 서양화법을 활용하였습니다

3. 제작과정

p173 우키요에 판화는 밑그림부터 판목에 새기고 찍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작업한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는 색을 지정하고, 나중에 찍혀 나온 판화를 점검하기는 하지만, 판목을 새기는 작업은 호리시가 하고, 그렇게 새긴 환목을 종이에 찍어내는 일은 스리시가 하는 분업 체제였다

제작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가에게 작품의뢰→화가가 밑그림(한시타)를 그림→작품을 아라타메에게 제출→밑그림을 바탕으로 판목제작→화가가 색상을 지정하면 종이에 찍는다→완성 및 판매

4. 제작기법

제작기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p214

아이즈리: 푸른색을 주도로 삼아 농담의 단계를 활용하여 찍어내는 판화

p222

쇼멘즈리: 짙은 먹으로 찍은 위에 광택을 만들어 등장인물이 입은 의복의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

p230

누키보카시: 판면에 물감을 바르면서 농담을 조절하는 방식

 

분명히 우키요에는 미술작품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가장 신선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대의 ‘매스미디어’와 같은 정보 제공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봉건적 제도의 강력한 구조적 틀에 의해 규제당하고 비인간적인 도덕률에 속박당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정념이나 미의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유흥가, 유곽극장거리였습니다. 이러한 유흥가 풍속을 바탕으로 미술과 문학, 예능 분야까지 풍요로운 경실이 맺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대단하게 여기던 인상파 그림이 실상은 일본 화풍을 모방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세계 문화구도를 서양 중심주의 시각으로 보아왔고, 서양문화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우키요에는 일본적 특성을 표현하면서도 다른 어떤 분야의 일본 문화도 줄 수 없는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일본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우키요에의 깊은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미술, 특히 일본미술에 관심있는 분들게 추천합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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