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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4대 비극(리어왕,오델로,맥베스,햄릿) 외에도 생전에 37편의 희곡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4대 비극이 무겁고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그의 희극들은 삶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희극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가지고 있는 배를 담보로 하여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립니다. 그리고 돈을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자기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 줍니다.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금ㆍ은ㆍ납의 세 가지 상자를 내놓고 자기의 초상이 들어 있는 것을 선택하게 합니다.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잡아 구혼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남장을 한 포샤가 베니스 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습니다. 그 후 안토니오의 배는 돌아오고 샤일록의 딸 젠카도 애인 로렌조와 결혼합니다.
긴장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눈길을 끄는 읽기입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및 인종 차별적 발언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하나이기도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진실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당시 런던 시민이 가지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반유대 감정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작품에서 샤일록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 인물로서 묘사되고 있는 점이 이목을 끕니다.
샤일록의 몰인정, 잔인성, 돈에 대한 탐욕을 풍자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 사회에 대한 야유를 담고 있습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기독교인이며, 그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고, 지나치게 자신을 박해하기 때문에 안토니오를 미워합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런 샤일록의 심리 상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이 극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행하는 인신공격, 편협한 언행을 고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화신이고 안토니오는 의리있는 불운한 상인일 뿐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형적이고 뻔한 인물들이 보기에 따라 선악이 갈리며 해석에 따라 운과 불운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마치 기승전결로 완결되지 않는 위대한 자연과 같았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돈을 갚지 못한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살덩이 1파운드를 요구한 샤일록이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심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샤일록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악인으로서보다는 박해받고 고통 받는 비극적 주인공으로 더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릴 적 읽은 내용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메시지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욕망과 적개심에 가득한 한 인간과 그를 용서하는 자비, 그리고 그 속에서 아우성 치는 고뇌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