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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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낸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낸 하루였나요? 아니면 지독한 현실에 맞서 싸운 하루였나요?

이 작품은 작가 솔제니친이 스탈린을 조롱한 죄목으로 체포돼 수용소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새벽 5시, 언제나처럼 기상 신호가 울렸습니다. 두껍게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짤막한 음향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습니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늦잠을 자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은 웬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오슬오슬 추웠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그들 104 작업반은 '사회주의 촌락' 건설장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허허벌판 눈 덮인 작업장,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러야 합니다. 밖으로 나갔던 전직 해군 중령인 부이노프스키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기운을 내라! 영하 30도는 내려갔는걸!" 하고 외칩니다. 슈호프는 늦잠을 잔 것이 당직 간수 타타르에게 들켜 본부로 가서 훈훈하게 타오르는 페치카 옆에서 마루 청소를 했고, 그것이 끝나자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사를 끝낸 슈호프는 숟가락을 방한화에 꽂고 의무실로 가서 진단을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는 막사로 돌아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새 작업장의 벽돌을 쌓는 일을 하는 대열에 낍니다. 반장 추린(수용소 생활 19년의 고참)은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적군에서 쫓겨나 체포된 인물로서, 투지와 강한 신념으로 작업반을 잘 이끌어 갔습니다. 줄을 지어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걸어가는 슈호프의 머리 속에는 갖가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p83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렸다 . 즉,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반면, 인정하면 얼마가 됐든지간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서명했던 것뿐이다

 

그는 독소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지금까지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8년을 보냈고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석방되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고 체념과 주저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슈호프의 일이란 것이 남의 심부름도 하고, 장갑을 짜주기도 하고, 얼마간의 잔돈을 얻으면 먹는 일과 담배를 사 피우는 일이 고작입니다. 정직하며 순진한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칠 줄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을 줄도 모르는 순수한 농민이었습니다. 게다가, 뛰어난 잔재주도 없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잘 도와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반장을 도와 언제 몸이 아팠었느냐는 듯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 속에서도 수용소에는 훈훈한 인심이 있습니다. 슈호프는 오후에도 열심히 작업을 하고 몸도 아주 거뜬해졌습니다. 그렇게 슈호프는 자기의 형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꼭 10년(3,653일)을 하루같이 보냅니다.

작품 속에서 슈호프가 살아가는 공간인 수용소은 죽음에 맞닿아 있습니다. 수용소는 생존이 어려운 가혹한 조건을 재소자들에게 강요합니다. 재소자들은 극한의 추위와 싸우며 종일 중노동에 시달립니다. 죽과 빵으로 구성된 형편없는 식사는 재소자들의 건강 유지에 충분치 않고, 간수들의 가혹한 대우 역시 재소자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p75 이렇게 이루어진 계획량 초과에 따른 이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수용소를 위한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건설 공사에서 수많은 이익금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장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다. 규율감독관 볼코보이의 채찍 수당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죄수들은 저녁 식사 때 이백 그램짜리 빵을 보너스로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백 그램의 빵이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 많은 등장인물이 죽 한 그릇, 담배 한 개비와 같은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배신하고 정제되지 않은 이기심을 표출합니다. 수용소 생활을 3개월밖에 하지 않은 부이노프스키 중령조차도 먼저 식사하던 재소자들에게 ‘죽을 다 먹었으면 빨리 일어나라’고 호통치고는, 정작 자신은 죽을 다 먹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식당의 따뜻함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죄수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다른 죄수다’라는 슈호프의 생각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지극히 평범한 죄수가 수용소에서 겪게 되는 하루의 생활을 유머러스하고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소련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가벼운 해학적인 솜씨로써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의 눈을 통하여 많은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이른바 ‘수용소’라는 이름의 소련 사회를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자유로운 삶의 가치, 행복이라는 것의 조건, 타인과의 관계,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린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이 되는가,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며 또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희망은 무엇이고 절망이란 또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떠올랐습니다. 또, 육체적인 고통과 허기짐이 인간 개체의 행복감을 결코 밑바닥까지 빼앗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행 속의 행운이 행복 속의 불운보다 더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증오속의 사랑이, 사랑속의 증오보다 더 두터운 사랑이듯이.

우리 모두의 일상은 마치 형기를 치르는 듯 질곡의 터널과도 같습니다. 생계에 갇혀서, 병에 갇혀서, 공부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 그 가운데 기쁨이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는 것, 다달이 조금이나마 돈벌이가 있다는 것, 4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나 곁에 있어서 하찮게 지나쳐버리고, 멀리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인가에 매달려 삶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겠습니다.

지루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스토리 전개의 흥미진진함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동녘 하늘이 푸르스름해지고 밝아오긴 했지만, 아직 수용소 주변은 어두컴컴하다. 뼈를 애는 가느다란 동풍이 뼈 속에 스며드는 것 같다. 점호를 하러 가는 순간만큼 괴로운 순간도 없을 것이다. 어둡고, 춥고, 배는 허기진데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나 하고 생각하면 눈 앞에 캄캄하다
- P36

저녁이 되어 이때쯤 여기서 인원 점검을 받을 때 그 다음 수용소 문을 통과하여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P157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은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 P175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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