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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평점 :
사회에는 위계가 있고, 위계가 있으면 갈등이 생깁니다. 제아무리 수평적인 사회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위계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로 인한 갈등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위계에 걸맞은 덕목을 요구하여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예컨대 책임, 공정, 포용은 윗사람의 덕목이고, 근면, 성실, 복종은 아랫사람의 덕목입니다. 착각하기 쉬운 것은 ‘예의’입니다. 아랫사람의 덕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의는 예로부터 윗사람의 덕목이었습니다.
예의는 본래 통치의 기술이다. 강제성은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권력이 하드 파워라면 예의는 원활한 권력 행사를 돕는 소프트 파워입니다. 예의는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리더의 자질이고, 예의가 없다는 것은 윗사람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는 윗사람의 예의라는 것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른과 스승과 상사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어린이와 제자와 부하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는 소홀합니다. 아랫사람의 예의는 오히려 지나쳐서 문제입니다. 예의 때문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합니다.
이 책은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현직 언론인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1부 인간이라는 한계, 인간이라는 구원' '2부 어둠 속, 갑자기 불이 켜지면' '3부 사람에 대한 예의' '4부 각자도생이라는 거짓말을 넘어서' 등 총 4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순, 편견, 법, 사건과 피해자, 노동현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노동 문제'가 책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합니다. 현대 사회의 노동격차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p142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들이 주변의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사무실에,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크고 작은 편견의 미세먼지들이 뭉치고 뭉쳐서 내 가치관이 되고, 신념이 된 것은 아닐까. 그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나 균형감각 있고,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단골로 나오는 소재들 중에 하나가 한국의 높임말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예의를 중요시해서 말도 웃어른께 사용하는 표현과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표현이 다르다’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흔히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한국 사람들은 정말 예의가 바르구나’ 라고 말합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공손하게 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미처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자세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양에서 인간관계가 수평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듯이 인간관계가 수직적이라고 해서 상대방을 반드시 더 많이 존경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어떤 형태의 관계에서도 기본에 깔려 있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p77 인간이란 성냥개비로 지은 집 같습니다. 마음속 작은 나사 하나만 틀어져도 망가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해도 스스로는 서서히 망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굳게 쥔 주먹하나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무조건 상대방을 배려한다기보다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고, 같이 살기 위해서는 그 환경을 같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예의은 오고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예기> ‘곡례’에 나오는 말처럼, 예의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위계의 차이를 앞세운 일방적인 예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위계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중 하나라고 말한바 있다. 개는 문이 열리지 않으면 문을 긁거나 땅을 파거나 으르렁거리는 따위의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좌절이나 놀라움 또는 두려움에 대처하기위해서다. - P22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한 발 한 발이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남의 인생에 전세 사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어른으로 행동 할 때 어른이 되는거다. 어른과 어른으로 일하다 서로의 길을 찾아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거다. <파워풀>의 마지막 장 제목은 이것이다. ‘멋지게 헤어져라.‘" - P107
자기를 안다는 건 또한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까지 객관화해서 볼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다. 다시 기자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분야를 잘 알고, 그 분야 사람들과 친하다고 해서 전문 기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 분야를 잘 알면서도 비판의식을 잃지 않아야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 착각하지 마라. 잘 아는 것과 유착하는 것은 다르다. 전문가는 몰입하되 매몰되지 않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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