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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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In sleep he sang to me

in dreams he came

that voice which calls to me

and speaks my name

And do I dream again? For now I find

the Phantom of the Opera is there

inside my mind

잠들면 그는 나에게 노래를 불러

꿈속에 찾아와

나를 부르고 내 이름을 말하는 그 목소리로

아 나는 또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지금 저기 오페라의 유령이 있네

내 마음 속에

 

1986년 영국에서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은 지금까지 세계 41개국 183개 도시에서 1억 4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메가 히트작입니다. 엄청나게 유명한 뮤지컬인지라 예전부터 꼭 한 번 읽어야지 했던 책이었는데, 최근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어 더욱 원작을 읽고 싶은 충동에 펼쳐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제목, 오페라극장 지하에 사는 가면의 괴신사가 여가수를 짝사랑해 지하로 납치한다는 것, 그리고 그 유명한 테마곡이 전부였습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추한 남자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노트르담의 꼽추' '미녀와 야수' 등과 함께 서양 문화권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 구도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령' 이 거론되는 환상과 공포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임에도 그 줄기를 관통하는 미추의 상징성이 선악과 생사가 뒤얽힌 현실처럼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860년 파리 오페라 하우스. 새로운 오페라 '한니발' 연습 도중 갑자기 무대장치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오페라의 유령이 한 짓이라고 수근 대고 화가 난 프리마돈나 칼롯타는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무대에 설 수 없다며 극장을 떠납니다. 발레감독의 딸이자 크리스틴의 단짝 친구인 멕 지리는 크리스틴을 새로운 여주인공으로 추천하고 그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레슨을 받아온 크리스틴은 오페라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둡니다. 공연을 본 오페라하우스의 후원자 라울은 한눈에 그녀가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임을 알아보고 저녁 식사에 초대합니다. 잠시 혼자 남은 크리스틴은 거울 뒤에서 나타난 반쪽 얼굴을 하얀 가면에 가린 채 연미복 차림을 한 팬텀을 따라 미로같이 얽힌 파리의 지하 하수구로 사라집니다. 낮과 밤의 구분조차 모호한 지하세계의 어둠 속에서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자신의 음악을 가르치겠노라 노래하고 며칠 후 극장 측이 준비하는 새로운 오페라에 크리스틴을 주인공으로 기용하라는 메모를 남깁니다. 극장주 피르맹과 앙드레가 이를 거절하자 에릭은 공연 중에 무대 직원을 살해하고 무대는 온통 뒤죽박죽이 됩니다. 에릭을 피해 지붕으로 피신한 크리스틴과 라울.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질투에 휩싸인 에릭은 복수를 결심하며 샹들리에를 무대로 떨어뜨립니다. 소동이 잠시 조용해진 사이 크리스틴과 라울은 남몰래 약혼을 합니다. 가면무도회 중에 다시 나타난 팬텀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돈 주앙의 승리'를 오페라하우스 재개막 공연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라울은 이를 기회로 에릭을 사로잡을 계획을 꾸민다. 극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크리스틴은 돈 주앙의 가면을 벗겨 에릭의 정체를 폭로하지만 이내 그의 손에 이끌려 지하 은신처로 납치됩니다. 라울은 마담 지리의 도움으로 에릭의 은신처를 찾아내지만 잠시 방심한 사이 그에게 붙잡혀버립니다.

p441 제발 나를 사랑해주시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준다면, 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난 어린 양처럼 순해질 수 있을거요

그는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으면 라울을 죽일 것이라 협박하지만, 크리스틴은 팬텀의 순수한 영혼을 이해하고 그에게 다가가 키스하고, 에릭은 라울을 풀어주고 하얀 가면만을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립니다.

에릭은 자신의 추한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슬프고 고독한 사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강렬한 카리스마에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그가 크리스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라울을 고문실에 잡아가두는 등의 야비한 짓을 하였더라도 결코 그가 미워보이지도 경멸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의 그런 태도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발견해낸 천상의 목소리를 내는 그만의 천사를 그는 결코 손에서 떠나보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는 부드럽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비열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사랑하는 방법이 썩 좋은 쪽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그가 그녀에게 원했던 것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위해 노래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는 천재였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그가 사랑했던 크리스틴은 그를 떠나고 맙니다. 그녀의 어릴 적 친구였던 라울을 선택한 것입니다.

p249 그 사람에게는 끔찍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의 존재는 제 마음을 공포로 가득 채우죠.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어요. 라울, 제가 어떻게 그를 미워하겠어요? 지하의 호숫가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저를 인도하고는 발 밑에 꿇어앉아 사랑을 고백하는 에릭을 생각해봐요! 에릭은 스스로를 저주햇어요. 자신을 비난했어요. 그리고 제게 용서를 빌었어요!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도 고백했지요. 에릭은 저를 사랑해요! 그는 저 지하 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넓고 비극적인 사랑의 왕국을 펼쳐놓았어요. 에릭은 사랑 때문에 저를 데려간 것예요. 사랑 때문에 땅 밑에 저를 가두었지만 하지만 에릭은 나를 존중해줬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크리스틴을 향한 라울의 사랑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숨을 걸고서라도 크리스틴을 구하려던 라울의 결심에서 그가 크리스틴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해줍니다.

그런 그들의 사랑이 결코 우스운 것이 아님을 이 책의 후반부에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혼자 남게 된 에릭이 몹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에릭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 그것은 그의 외모보다도 더 찬란했던 그의 재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서 맴돌던 어둡고 적막한 고독의 느낌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크리스틴이 오페라의 유령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곁을 쉽사리 떠날 수 없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p501 불쌍한 에릭! 우리는 그를 동정해야 하는가? 에릭이 원한 것은 단지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추한 외모 탓에 자신의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또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다. 평범한 외모였다면, 에릭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국을 호령할 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그는 어둡고 답답한 지하 세계에 생을 묻어야 했다.

외모와 더불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중시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형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에 대해 거부감이 생길 거라는 저 자신의 속물적인 면에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외모나 물질적인 것,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적인 것들이 가치있다는 진리를, 우리 인간들은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왜 실제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치우쳐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믿으려 하는 것일까요?

 

영화는 영화 나름대로 음악과 영상이 있어서 좋았고, 책으로 접해본 작품은 끝없는 여운과 함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소설 못지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일까,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로맨스 소설의 느낌을 두 가지 다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져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책에서 말하는 사랑 또한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에 감동이 여전하고 그 느낌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뮤지컬은 본 적이 없지만, 생생한 감동과 전율을 온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원작 오페라를 화려한 오페라극장에서 꼭 보고 싶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정말로 존재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처럼 예술가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거나 감독들의 미신 때문에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었다
- P9

하지만 애야, 너라면 언젠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크리스틴, 내가 하늘로 올라가면 너에게 음악 천사를 보내주마!
- P112

언젠가는 당신이 지금 내뱉는 모든 추악한 말들에 대해 제게 용서를 구할 날이 올 거예요, 라울. 그때가 오면 저도 용서를 해드리지요

- P201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술사와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악당과 결투를 벌이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만 모습을 드러냈고,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뛰어난 과학 지식과 영리함, 상상력 그리고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은 상대방의 눈과 귀를 현혹시켰고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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