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선의 역대 왕 이름의 앞자를 따서 달달 외웠듯 조선의 임금은 총 27명입니다. 500년 사직에 28명의 임금이 나왔지만 거론조차도 안 되는 왕들이 많습니다. 태조는 조선을 창업했던 왕이니 거론이 되는 것이고, 정종을 건너뛰고 태종에 대해서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골육상쟁한 것 말고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뽑히는 세종 임금 다음에 생각나는 군왕들을 꼽으라면 세조, 성종, 영조, 정조 임금 정도입니다. 천하를 다스렸을 28명의 절대군주 중 후세에 그 이름이 거론되는 왕이라곤 5~6명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각 왕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조선시대의 왕들의 삶을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삶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된 왕 중 한 명은 바로 숙종과 광해군입니다.

다른 유명한 왕들에 비해 숙종에 대해서는 그동안 아는 게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숙종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숙종은 14세 어린 나이에 왕으로 즉위했고 당시는 당쟁이 절정에 올라 신하들의 위상이 대단하던 시기였으나 그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해 나가며 당대 최고의 노론 영수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릴 정도로 강단이 있었습니다. 또한 숙종은 단종과 사육신을 복권하여 역사 바로 세우기에 역점을 두었고, 상평통보를 유통하여 상업과 수공업의 발달을 촉진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방 강화에도 힘써 여러 도성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고 군사적 중요자료인 지도 제작에도 공을 들이며 북방 영토 회복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에 반해, 그의 아들 광해군은 지방을 돌며 의병을 모으고 왜적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명이 기울고 청나라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던 시기에 탁월한 외교적 역량으로 전쟁을 억제했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습니다.

왕(王)이라는 글자는 삼(三)과 곤(丨)의 합성어입니다. 즉 하늘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땅 위의 모든 존재를 일관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통치권을 위임받은 군주의 권한은 글자 그대로 무소불위였습니다.

한 예로, 성종은 태종과 영종, 중종의 서자 등용문제를 놓고 재임기간 내내 신하들과 싸워야했고, 현종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복상문제로 예송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효종은 청을 벌하겠다는 북벌론을 주장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그 뜻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감당할 수 없는 왕관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살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진 조선의 왕들은 일상과 업무를 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적 그림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사극은 그런 권력을 중심으로 배신과 음모, 사랑과 치정, 충성과 배신의 극적이면서도 대립각을 세우는 그림으로 클라이맥스로 끌어가서 반정 혹은 반정의 극복 아니면 전란의 폐해를 딛고 성군으로 일어서는 구조로 보여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왕의 실상을 열어보면, 끊임없이 명,청으로부터 견제와 왕권에 대한 불신임 혹은 교체에 대한 무언의 압력 등을 받았거나, 왜와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서 몽진을 해야 하거나, 역성혁명의 시도를 비롯하여 숱한 반정의 시도를 제압해야 했으며, 곳곳에서 발생한 민란도 문제였습니다. 한편, 외척의 득세에 대한 견제와 성리학적 기조에 의해서 왕에 대해서 기어오르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모자라서 왕명을 끝까지 수행하지 않으면서 신하들의 신권 확보 태도를 논리적으로 반박하여야 하고, 사림과 훈구, 붕당의 균형을 맞추면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정치적 지원과 견제를 해야하는 엄청난 압박의 대상이었던 것이 조선시대 왕의 자리였습니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왕의 가족, 왕이 된 후의 정책, 조언을 받은 참모, 왕의 라이벌 등 왕의 주변인물이나 주유 사건들의 면모를 두루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유명한 왕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왕과 그들의 업적까지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모습을 통해 한 국가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꼈고, 그들의 긍정적, 부정적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아 현재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왕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딱딱하고 권위적이거나 어려울 것 같지만, 이렇듯 흥미로운 이야기로부터 쉽게 접근한다면, 점차 무궁무진한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조선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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