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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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53세 때 쓴 소설로,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뒤흔들던 추억들이 담겨있습니다.

전반부는 뛰어난 젊은 학자인 나르치스와 다정다감한 소년 골드문트와의 만남과 헤어지는 내용이고, 중반부는 골드문트가 여자를 알고 수도원을 떠나 애욕의 편력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후반부는 골드문트가 수도원으로 돌아와 다시 두 사람이 우정으로 맺어지고, 골드문트가 지와 사랑을 융합시킨 마리아상을 조각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야기는 밤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다니엘 원장과 그의 제자 나르치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골드문트라는 어린 소년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곧 모든 사람들과 친해졌지만, 참다운 벗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끈 사람은 바로 나르치스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과 정반대인 나르치스를 존경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안젤름 신부의 심부름으로 고추 나물을 캐러 간 골드문트는 리제라는 집시 여인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르치스를 찾습니다. 나르치스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골드문트는 약속한 장소에서 리제를 만나 육체적 쾌락을 즐기지만, 날이 밝자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후 골드문트의 기나긴 방랑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하는 방법, 사랑의 기교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방랑생활이 두 해가 지난 뒤, 골드문트는 두 딸을 가진 노기사의 저택으로 갑니다. 어느 날, 영주가 부인과 함께 놀러 온 것을 계기로 골드문트는 영주의 부인에게 접근함으로써 노기사의 딸 리디아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그녀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런 후 리디아는 골드문트의 잠자리에 나타나 정사를 벌입니다. 언니의 행동을 눈치챈 동생 율리에는 골드문트의 방에 들어와 자신도 함께 즐기자고 합니다. 이에 놀란 언니 리디아는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백합니다. 골드문트는 당장 쫓겨나고, 리디아는 하인을 시켜 그녀가 짠 재킥과 소금에 절인 고기, 금화 하나를 건네줍니다.

길을 재촉하던 골드문트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해산 광경을 통해 쾌락과 고통은 동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빅토르라는 유랑자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지만, 도벽이 심한 빅토르는 골드문트가 잠자는 사이에 주머니를 뒤지다가 발각되어 목으로 조르고 달려듭니다. 골드문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빅토르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그저 방황하다가 빅토르와 만났던 마을 근처에 쓰러져 크리스티네라는 부인에게 구출됩니다.

이후, 그는 어느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는 빅토르를 죽인 것을 참회하려고 청당을 찾았다가 성모 마리아상에 매혹되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조각가 니콜라우스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를 찾아 떠나 마침내 그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리스베트라는 아름다운 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골드문트는 여러 가지 얼굴들을 그리며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아그네라는 총독의 첩과 눈이 맞아 육체의 쾌락을 즐기다가 들키게 되자 도둑으로 가장하고 구속됩니다. 감옥에서 그는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생겨 고해성사를 받으러 신부가 들어오면 그를 죽이고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의 옛친구인 나르치스였습니다.

나르치스의 구원으로 그는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2년 동안 작품 제작에 열중할 수 있었으나, 작품이 완성되자 다시 방랑을 하기 시작합니다. 프란체스카라는 처녀에게 구혼을 했다가 실패하자 자신이 늙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디아의 모습을 부각시킨 마리아 목조상이 완성되자 그는 방랑을 결심합니다. 나르치스는 자신이 친구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개탄하며 골드문트를 떠나보내지만 그는 어느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와 나르치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은 그의 내면에서 살아 숨쉬는 이성과 감성의 거대한 움직임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듯한 강한 느낌을 줍니다.

나르치스는 소위 냉철한 이성과 직관력의 소유자입니다. 골드문트와 달리 철저한 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 금욕의 생활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직관해가며 성실한 생활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골드문트(GOLD MUND)´는 직역하자면 ´황금 입술´이라는 뜻으로 정열이 넘치는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과 정열적인 생활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듯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청아한 눈빛과 입가에 머금은 미소, 수려한 외모, 정열적인 생활, 누구와도 어울리는 달변가로서 그는 인기몰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누구라도 추파를 던지면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랑을 했습니다. 그의 내면의 지주였던 어머니와 수도원 생활에서 사귀었던 영원한 친구 나르치스만이 오직 그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르치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골드문트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정화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순간은 이성과 감성과의 만남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르치스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골드문트는 그의 물음에 답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일생과 최후에는 죽음에 내몰았고 전적인 희생 이후의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자유와 방종을 또다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골드문트를 끝없는 방황으로 내몰았던 내면의 충동과 번민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방황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헤세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골드문트는 고정된 관습의 세계를 거부합니다. 골드문트의 내면 심리에 조응되는 만큼의 현실만이 묘사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시대적 배경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가 중세적 질서와 권위의 정신적 기둥인 수도원을 탈출하여 속세를 향해 정처없이 나아가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골드문트가 문제적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드문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거부와 일탈은 그 자신의 자아 역시 미리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낯선 세계와 부딪히며, 때로는 존재의 위기마저 감수하는 그러한 모험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자아가 지나온 삶의 총화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골드문트가 마지막에 도달한 예술의 세계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고된 탐색의 끝에 얻어진 값진 자기 인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 우리 삶은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지, 두부 자르듯 나뉘어져 있진 않으니까요. 저는 나르치스도 아니고, 골드문트도 아니고, 둘 중 어느 것이 낫다고도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중 어떤 방식으로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기질과 서로 다른 영혼, 인생, 깨달음이 있을 뿐이며 둘의 불꽃같은 인생을 보며 철저히 세속과 격리되고 보호되는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낄 지라도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인간은 없지만, 이 두 가지를 늘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늘 고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은 영혼 속에 깃들인 정신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합일시킬 것이며,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성과 감정의 대립, 정신과 육체의 양립, 신과 인간의 갈등이 두 주인공을 통해 극복 되고 융화되는 과정이 스토리 전반에 녹아 드는 불후의 명작임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시종일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혼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주옥같은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골드문트의 본성을 환히 꿰뚫고 있었으며, 서로 대립되는 기질에도 불구하고 그 본성을 아주 내밀하게 이해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드문트의 본성은 바로 그 자신이 잃어버린 또 다른 반쪽이었기 때문이다
- P51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렇지는 않아. 나는 가야만 한다고 느끼기에, 그리고 오늘 너무나 놀라운 일을 경험했기에 기꺼이 떠나는 거야. 그렇지만 순전히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 달려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 생각에는 힘든 길이 될 거야. 그렇지만 멋진 길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한 여자에게 속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잖아! 내가 하는 말이 어이없게 들리더라도 비웃지는 마. 그런데 보라구.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것, 그녀를 온전히 내 속으로 감싸고 또 그녀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끼는 것은 네가 <사랑에 빠진 상태> 라고 하면서 다소 비웃는 그런 상태와는 달라. 그건 비웃을 일이 아니야. 나에게는 사랑이 곧 삶으로 통하는 길이고 삶의 의미로 통하는 길이야. 아, 나르치스, 나는 네 곁을 떠나야만 해! 나르치스, 너를 사랑해. 그나마 잠 잘 시간도 없는데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서 고마워. 네 곁을 떠나려니 마음이 무거워. 나를 잊지 않을 거지?"
- P128

뤼디아가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사랑스럽고 쾌활해 보여요. 그런데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쾌활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슬픔뿐이에요. 당신의 눈은 마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거든요. 당신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슬퍼 보여요. 당신한테는 고향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은 숲 속에서 나타나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는 다시 길을 떠나 이끼 위에서 잠을 자면서 방황을 계속할 테죠. 그런데 저의 고향은 대체 어디일까요?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물론 저한테는 아버지도 계시고 여동생도 있죠. 제가 들어앉아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방과 창문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사라지고 말 거예요."
- P182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나는 말씀이나 사상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위 속에서, 삶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네.‘
- P186

"세상이 온통 죽음과 공포로 가득 차 있으니까 나는 늘 마음을 달래려고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꺾었던 것이지. 쾌락을 찾으면 잠시 동안은 공포를 잊을 수 있었지. 그런다고 해서 공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 한번 잘했네. 그러니까 자네가 보기엔 세상이 온통 죽음과 공포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쾌락을 도피처로 삼는단 말이로군. 하지만 그런 쾌락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일세. 그런 쾌락은 다시 자네를 황폐한 곳으로 몰아낼 걸세."
- P412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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