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 메이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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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곽재구-은행나무

 

한국인에게 은행나무는 향수가 짙게 배어있는 정감이 가는 나무입니다. 거리 곳곳에 노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아름다운 가을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은행나무가 곧게 자라며 운치도 있고 병충해가 없어서 여러 가지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가을에 열매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가로수로 부적합 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은행나무의 고운 나뭇결을 보며 어린 시절 은행나무를 떠올리며 생각에 젖게 됩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심었고 초등학교 졸업 후 이사가기 전까지 저희 집마당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수나무라 은행은 열리지 않았고, 여름이면 그늘을 지어주고 가을이면 은행잎을 융단처럼 깔아주던 나무였습니다.

저희 가족이 이사 후 그곳에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그 은행나무를 부득이 베어내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를 떠올리는 계기가 된 책이지만, 책 속에는 따뜻하고 뜻깊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특히, 나무 의사의 나무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어려서 천문학자를 꿈꿨지만 색약 판정을 받고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만둔 채 방황하다가 어느 원예농장에 들어가서 나무 키우는 일에 종사했고, 그 후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가 되어 아픈 나무와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거룩한 일을 합니다. 저자는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다 버린 후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갗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그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의연함에서,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정말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p92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우듬지가 꿈이나 희망이랄까. 나무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다스려 가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가듯, 사람은 꿈이나 희망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만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이겨 내며 앞으로 갈 수 있다

 

책은 모두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30년간 나무의사를 하며 나무들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후반부는 16가지 나무들의 각각 고유한 특성과 함께 그 속에서 느낀 저자의 생각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무관심하게 여겨지던 나무와 사람들이 조금 더 가까워져 녹색 빛 여유로움을 되찾기를 바라는 나무 의사 우종명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봄에 연둣빛으로 뾰족이 돋았다가, 그 뜨거운 여름을 잘도 견디더니 어느새 다갈색으로 물들어 가을의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간밤에 분 바람에 미련 없이 우수수 떨구어 스스로 놓으며 나목이 되어가는 나무를 봅니다.

나무가 이런 과정을 70 혹은 80회 정도 거치고 나면 단풍처럼 화려함을 뽐내다가 결국 낙엽으로 떨어져 바람에 날리듯 쓸쓸히 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다르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늙는다는 것에 ‘그런 시간이 내게 올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월은 생각보다 더 빨리 훌쩍 흘러갈 것입니다.

p126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 있고, 외진 구석에 있어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어떠랴. 볼품없는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좋을 존재란 없다.

알고 보면 은행나무는 외로운 나무입니다. 여타의 나무들과 달리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는 오직 은행나무 한 종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특별한 존재이지만 종종 그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생각해보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합니다

기온이 내려가고 나무들이 단풍으로 만들어 화려한 자체를 뽐내는 시기가 오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과거를 후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무처럼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지금도 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렇게 되뇌곤 한다.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나아가 보자고, 때론 그 작은 한 걸음이 답일 때가 있다고
- P28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이는 것에 역시 집중한다. 하지만 나무는 흙 위의 보이는 부분을 잘 키우기 위해 흙 아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 신경 쓴다.
- P31

어느 노스님의 말씀을 읽고 나는 연명치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젊은 스님이 연락을 드린 모양인데 그냥 두시지요. 살 운명이면 그냥 둬도 살 것이고, 죽을 운명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죽지 않겠소.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려는 나무를 억지로 살려 내는 것도 순리는 아니지요."
- P48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P56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시시때때로 걷는다. 다만 가다가 쉬기도 하고 어느 때는 한 곳에 멈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두 발에 족쇄가 될 짐은 저만치 내려놓은 채 가볍게 걷다 보면 삶의 온갖 문제들로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 P65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하는 증거다
- P94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자세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다림 그 자체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듯, 우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 P96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곧추선 나무가 한여름 폭풍우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법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 P133

"아직 껍질이 채 생기지 않은 여린 나무뿌리 끝에는 흙을 파고들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뿌리골무라는 조직이 있다. 단단한 바위를 부지불식간에 갈라 버리는 것이 바로 뿌리골무다. 그렇다면 뿌리골무가 암반 천공기의 드릴처럼 단번에 바위를 뚫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일까? 그건 아니다. 뿌리털 끝을 감싸고 있는 뿌리골무는 오히려 나무의 그 어떤 조직보다 연약하다. 그저 뿌리 끝에 달린 생장점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채 끈끈한 점액질을 분비할 따름이다.
- P145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들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 P150

어쩌면 나이가 들어 점점 무기력해지는 노년에도 매일매일을 젊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가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나는 죽을 때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고 유익한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P155

한때 나는 쓰러진 나무의 밑동을 얇게 켜 레코드 음반처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 먼 옛날의 바람 소리와 새소리, 인간이 일으킨 전쟁의 소리, 나무 앞에서 간절히 전하는 누군가의 기도 소리…. 그렇게 매 순간이 나이테에 기록되어 그 주위에서 발생한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중한 역사이지 않을까.
- P171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인생이 있고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여정은 오로지 자기의 몫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홀로 섬이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 해결하되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을 때는 기꺼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자립이 아닐까.
- P224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아무 걱정없어 보이는 사람도 말 못할 속사정은 하나씩 다 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무탈한 하루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는다. 또한 인생은 너무 길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내 인생을 책임져야할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 P239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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