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2년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유대인 의사의 중산층 아들인 한스와 유명한 귀족 가족의 후예인 콘라딘이라는 두 십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자 유대인 한스는 가장 유명한 학교인 칼 알렉산서 김나지움에 다닙니다. 귀족풍의 우아한 옷을 입은 독일소년 콘 라딘이 전학을 옵니다. 콘라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스는 학교에서 튀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집하는 오래된 동전들로 그의 환심을 사고,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한스는 집에 자주 친구를 초대해서 놀지만 콘라딘은 집에 초대하지 않다가 부모가 집을 비울때만 초대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유태인 혐오주의자였습니다.

시간은 흘러 히틀러와 나치가 권력을 잡게 되고 유대인인 한스의 가족은 점점 위기를 맞게 됩니다. 한스의 부모는 더 위험해지기 전에 그를 미국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독일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독일에 의해 자살을 강요당합니다.

30년이 지난 후, 미국에서 한스는 하버드로 진학하여 변호사가 됩니다. 삶 전체가 망가진 그는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독일에서 모금운동에 참여해달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김나지움에 재학 중 나치에 의해 피해를 본 학생들을 위한 성금인데 그의 친구들의 이름들도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그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짧지만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감정들이 정말 잘 묘사되어있고 책에 빠져서 그런지 실화같이 느껴졌습니다. 콘라딘이 전학 온 이후, 한스는 이 소년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쉽사리 그에게 다가가서 그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친구무리들이 그 소년에게 다가가서 친해지려다가 퇴짜를 맞는 장면들을 섬세하게 관찰합니다. 반 학급에서의 미묘한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콘라드에게 다가가고자 주인공 한스가 취했던 전략들은 흥미롭고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히틀러 영향으로 아이들이 잔인하게 유태인 친구를 고립시키고 선생님마저 분위기를 조장하고 괴롭혀도 넘어가고 은유적이지만 누구나 알 수 있게 유태인을 비난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대인 입장에서 쓰여진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인 것임은 맞는 것이지만, 유대인이 아닌 순수 독일인의 입

장에서 그 순간들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면 독일인에게 있어서는 유대인들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기억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난 후, 다시 책의 첫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 마지막 문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짦은 이야기이지만 마지막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히 담아낸 작가의 필력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는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무거운 책상과 걸상이 있던 교실, 마흔 개의 축축한 겨울 코트에서 풍겨 나는 시큼한 곰팡내, 눈 녹은 물이 고인 웅덩이들, 전에 한때, 그러니까 혁명 이전에 빌헬름 황제와 뷔르템베르크 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임을 보여 주는 회색 벽에 남은 누르스름한 선들. 지금도 나는 눈을 감으면 내 급우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 P22

나는 그날 콘라딘이 내게 무슨 말을 했고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우리가 젊은 두 연인처럼 한 시간쯤 길을 다라 오르내렸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서로를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겨우 시작일 뿐이며 이제부터는 내 삶이 더 이상 공허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우리 둘 모두에 대한 희망과 풍요로 가득 차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 P52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P62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 가치 없으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인 것 같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 P70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 P81

나는 우리 부모를 부끄러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실 언제나 그들을 자랑스러워했었다. 그런데 이제 콘라딘 때문에 내가 재수 없는 어린 속물처럼 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쫙 끼쳤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그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그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느끼게 된 것은 그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만일 내가 내 부모를 멸시한다면 나 자신은 더욱더 멸시하게 될 터였다
- P90

이제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 내가 전에 현실과 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이, 그가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문이 그의 명령에 순응해서 그가 들어가도록, 그리고 나도 받아들이도록 조용히 열렸다
- P102

마침내 그들을 보았을 때는 달아나고 싶어졌다. 유대인 아이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볼 때, 채 몇 분도 못 가서 내 심장에 들어박히게 될 단검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통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슨 이유로 친구를 잃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까? 무슨 이유로 의심이 잠으로 달래지게 놓아두는 대신 증거를 요구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달아날 용기도 없어서 고통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떨리는 심정으로 기둥을 버팀목 삼아 기대어 서서 처형당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 P111

우리는 전에 그랬던 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났고 그도 우리 어머니를 보러 왔지만 차츰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상황이 다시는 전과 같아지지 않을 것이며 이제 우리의 우정과 어린 시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다.
- P122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 텐데 그가 죽었건 살았건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오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 P1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