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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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기괴한 곳으로 현실보다 훨씬 과장되게 묘사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가서는 안될 곳으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정신병원은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가 주목하기 좋은 소재입니다. 환자들의 모습은 ‘비일상’적이고, 병원은 일반적인 건물보다 ‘폐쇄’적인 곳이기 때문에 정신병원은 주로 공포영화의 배경으로 활약하면서, 때때로 인간성과 자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정신병원 입원’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떠오르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막연한 두려움과 불쾌감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상상을 할 때면 자연스레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고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비추어지는 정신과 입원 병동의 모습은 공포와 편견을 유발하기 쉬워 현실과는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네티컷 주 정신과 의사로 고용된 예일 의과 대학 졸업생인 주인공 파커는 어렸을 때부터 진단을 받지 못한 고립된 장기 환자인 조에게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조는 원래 어렸을 때 병원에 입원했었고, 그를 치료하려는 모든 사람은 광기나 자살에 빠졌습니다.

베테랑 간호사인 네시의 조언과 상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오만한 파커는 조의 배경을 파헤 치고 정신 병원에서 수년간의 의료 과실을 발견합니다. 조와의 상호 작용으로 치명적인 분노 또는 자해 감정을 불러일으킨 수십 년 동안의 간병인 중 최근 희생자인 네시가 사망했을 때 파커는 자원하여 조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합니다

파커는 조가 정상적이지만 부모가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다고 생각하고 그를 병원에서 탈출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들통이 나서 실패하고, 결국 브루스와 행크에게 잡혀 병원장실 문 앞까지 가게 됩니다. 거기에는 낯익은 목소리의 노인과 로즈가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처음으로 조를 치료했던 토머스였습니다.

그들은 조를 탈출 시키려고 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탈출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준 사람이 조였습니다. 어떤 간호조무사에게 말하고 그게 원장 로즈의 귀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쫓겨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를 자르지 않겠다고 로즈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조의 담당 간호사, 의사로 치료했던 시절에 대해서 빠짐없이 이야기해주는 로즈와 토머스의 이야기에서 놀라운 이야기들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흔히 정상과 비정상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그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 둘 사이를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광인들과 의사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두서없는 말 안에도 날카로운 논리와 진실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인간 무리에 끼어 살지만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하지 못하는 병든 마음으로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비정상이라고 지목받은 이들의 생각과 행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상과 비정상, 권력과 저항, 포섭과 배제,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됩니다. 일단 그러한 관계가 수립되면, 전자가 후자를 상대로 권력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보여주듯이 권력의 가장 적나라한 행사가 바로 '정신병동' 안에서 이뤄집니다. 잔인한 억압과 강력한 저항 (혹은 비협조)이 소설 속 병원 내에 형성됩니다.

환자는 의사가 제시한 기준을 완전히 내면화할 때까지 감시와 평가, 처벌을 받습니다. 의사가 정한 규율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이 반복되는 식입니다. 일체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으며, 환자는 독자성이 없는 익명의 정상적 인간이 되길 강요받습니다.

책에는 소수의 인물, 정신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그들의 역할 모두가 잘 수행되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약을 검사하는 수석 의사에서부터 친절하고 돌보는 간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습니다. 주인공 파커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약간 열망하고, 이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약간 자만심이 있지만 그의 행동은 신중합니다

조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흥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그런 임상적 방식으로 접근하여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는 흥미진진했습니다.

분량도 길지 않아서 한 번에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주제와 속도를 고려할 때 완벽한 길이였고 별다른 이유없이 늘어지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정신질환과 정신병동’이라는 소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공포감을 좋아하고 오싹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배우 라이언레이놀즈가 투자 및 판권 계약을 했고,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도 진행 중이라고 하니, 곧 스크린에서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이런 상태로 계속 정신과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분명 윤리적으로나 사업적인 관점에서도 좋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조금이나마 믿어줄 수 있는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내게 이 일은 인류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 P13

조는 병실에서 나오는 법이 없었고 집단 치료에 참여하지 않는데다 정신과나 치료실 직원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거의 모든 직원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고, 말도 꺼내면 안 됐다. 듣자하니 조는 숙련된 전문의든 누구든 간에 사람을 만나면 상태가 악화됐다. 조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침대보를 갈거나 식판을 수거하는 간호조무사 아니면 약을 복용하게 하는 간호사뿐이었다
- P29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말아요. 지금 한 말은 못들은 걸로 하죠."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네시, 전 정말로..."
"아니, 그건 미친 농담이었어야 해요.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딴 말을 진심이라고 뱉을 수는 없어요."
네시의 초록빛 눈이 노여움에 불타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새끼를 위험에서 구한 어미 곰 같았다

- P34

이 기록을 보기 전까지 조에 대한 관심이 호기심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집착하게 되어 버렸다. 정신 의학 역사상 진단된 적 없는, DSM에도 기재된 적 없는 완벽히 새로운 질병을 내가 발견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P56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겁나요
- P84

지금부터 당신이 조의 담당의입니다.
언제라도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게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내게 와서 정확하게 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당신이
담당의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는지 낱낱이 알려줘야 합니다
- P85

인정한다. 아주 능숙한 사이코패스라면 이 모든 걸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때 사이코패스가 상대의 감정을 조작하는 수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와의 만남 자체가 완벽하게 예상 밖이었던 데다 나 자신도 미숙했던지라 감정적으로 훨씬 휘둘렸던 것 같다
- P104

상상은 생각이랑 비슷한 거야. 우리는 좋은 생각을 할 때도 있고 나쁜 생각을 할 때도 있지. 무시무시한 생각도 있고. 근데 조, 무서운 생각도 그냥 생각일 뿐이야. 네가 상상하지 않으려고 하면 무서운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단다
- P189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그동안의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던 순간,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순간 나나 로즈나 토머스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P238

무슨 일이 있어도 괴물을 본다는 아이에게 너의 상상일 뿐이라고 말하지 마라.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아이의 무덤을 파는 갈지도 모르니까.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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