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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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도심에서 살지만 ‘자연’, ‘유기농’, ‘천연’ 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또 여유가 생기면 ‘자연’으로 떠나 휴식을 즐기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또, 자연이 우리에게 좋다는 것이 점점 널리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자연과 동떨어져 살면서 이처럼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게 됐지만, 정작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서툴기만 합니다. 도시의 삶은 편리하고 안락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자는 지난 25년 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녀는 오두막을 둘러싼 들판과 삼림 지대를 정기적으로 산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자연계 표본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수집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눈을 통해 우리는 야생 꽃, 새와 야생 동물, 벌과 곤충을 봅니다. 그녀의 글은 마치 친구와 산책하며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야생 동물 자체에 대한 것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그녀의 마음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입니다.

p25 숲속이나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삶이 대체로 괜찮게 느껴질 때도 할 수 있는 일이며, 일상적 우울감과 언젠가 닥쳐올 까칠하고 고된 나날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

자연이 계절마다 변화를 일으키지만 매년 알아볼 수 있는 패턴을 따른다는 사실은 모든 도전을 통해 우리가 진화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특유한 위트와 솔직함으로 글을 쓰고,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은 자연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해 했던 모든 사람에게 특별하게 다가갈 것입니다.

p112 해가 지평선에 가 닿는 동안 올빼미는 먹이를 물어 뜯고, 나무와 산울타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평생 목격한 것 중에서도 손꼽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삼 내가 얼마나 우울증에 지치든, 얼마나 기만당하고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든 간에 이런 광경과 만나고, 그에 따른 치유 효과로 머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계속 싸워나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숲에 가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낙엽의 폭신함, 모양과 색깔도 다른 나뭇잎, 희한하게 생긴 애벌레, 싸르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섞여 들리는 다양한 곤충과 새들의 울음소리까지…, 그간 눈에 보이지 않았고 듣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제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예쁜 꽃이 피어있기도 하고 싱그러운 향도 납니다.

갈수록 개인의 편의만 생각하고, 남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인생의 최대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저마다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마음까지 좀먹게 됩니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욕심내지 않고, 괜히 다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잠시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새들을 보고, 매끄러운 돌을 집습니다. 간단하고 쉬운 일이지만, 어떤 약보다 그 효과는 강합니다. 자연을 느끼고 이해하는 일은 곧 나와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저 집 밖으로 나가 오두막 맞은편의 가시자두나무와 보리수를 보는 것 만으로도 내면에서 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난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내 뇌의 화학작용이 나에게 위안과 동시에 치유를 가져다준다
- P14

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지난달에 나타난 사양채와 갈퀴덩굴 새순처럼 이 꽃차례 배아도 그런 신호 중 하나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 P60

딱히 목적지도 없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생태학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일이란 걸 알기에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 길가를 선회하는 황조롱이, 들판에서 꽥꽥 울어대는 굳센 뇌조 무리를 발견한다면 내 마음속에 미묘하지만 거대하고 간절한 전율이 일어나리라는 것도 잘 안다. 마치 은신처로부터 날아오르는 찌르레기 몇 마리를 보았을 때처럼.
- P79

새 떼 자체도 장관이고 경이로운 광경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먹잇감을 찾는 송골매의 모습은 내게 더욱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겨우내 무거운 생각에 짓눌려 심신을 까딱하지 못했던 내게 춤추는 찌르레기 수만 마리 사이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맹금을 바라본 장대하고 야성적인 몇 분의 시간은 머릿속의 암담함을 몰아내고 한숨 돌릴 여유를 준다.
- P125

내 마음은 우울증이 갈망하는 자기소멸을 향해 비틀비틀 나아간다.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방법들을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찌나 강렬한지, 일 년의 대부분을 절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주던 이런저런 기분 전환 요령들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그만 뗏목 하나에 의지해 나이아가라 폭포 꼭대기에 놓여 있는 기분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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