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김새별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넉넉한 형편이 되지 않아 제대로 장례를 치루지 못 할 형편이거나 억울하거나 느닷없이 예고되지 않은 죽음에 이르렀거나, 고령화에 따른 각종 질병의 증가와 가족해체 등의 이유로 1인 가구가 확산되어 급증하는 고독사 등의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거나 경계에 있는 자들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고독하게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정갈하게 정리해주는 이들도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의문의 죽음과 고독사가 늘어난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어쩌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직업군인 것입니다.

책의 저자는 말 그대로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죽은 이의 지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유품으로 생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그는 역으로 살아 있는 이들의 현재 모습에서 마지막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유품정리사가 된 계기가 된 사건을 시작으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딸을 위해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쓸쓸히 죽어간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부터 자신의 월급을 털어 서른 명의 노숙자들에게 밥을 지어 먹인 한 남자의 특별한 우정 그리고 일등만을 강요하며 폭력을 휘둘러온 어머니를 살해한 뒤 방 안에 감춰뒀던 아들의 이야기까지, 각각의 에피소드는 길지 않지만 그 짧은 글에서도 눈물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읽다가 눈시울이 촉촉해져서 책을 몇 번이나 덮기도 한 구절도 있습습니다.

p22 자식이 부모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장례지도사로 일할 때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그때 돌아가신 부모를 안고 우는 자식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는 반드시 자식을

품에 안는다

 

반면, 죽음의 현장에서 보이는 산 자들의 추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남은 자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수의 버선에 돈을 저축해 두기도 하는데, 혼자 죽은 부모가 혹시 무어라도 값나갈 것 남기진 않았나 찾느라 자녀들이 생쇼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부모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없고 부모가 남긴 재산만 찾으려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반면, 유품정리사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 죽은 현장을 정리하는 것임을 알고 차 빼라고 하는 모습, 이런 회사 옆에 있는 것이 짜증난다면서 민원을 넣어서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p33 "그럼 그 사람들 아빠한테 되게 고맙겠다. 길 잃으면 무섭고 싫은데 아빠가 길 찾아주는 거잖아. 근데 왜 아빠를 무서워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딸아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결코 기분 나쁘거나 불쾌할 이유가 없는 일. 그러나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해야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이 직업의 모순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실제로 이런 일을 하는 분이 있는지 몰랐는데, 돈보다도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슬프거나 침울한 분위기로만 점철되는 것이 아니고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 덕분에 책장은 빨리 넘어가 단숨에 한 권을 읽어버렸지만, 그 여운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 합니다.

p187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 구석을 따뜻하게 덮혀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차라리 유품정리사가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게 진짜 이름을 남기는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단,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후회없는 삶, 언제 죽어도 괜찮은 삶을 하루하루 살아야 겠습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버티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번뜩이며 찾아올 때가 반드시 있다. 끝까지 버텨야 그런 날이 온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P74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인은 확실한 죽음을 원했을 것일까.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죽음을 선택하지만. 그 순간의 고통 역시 참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수면제를 먹고 시도를 한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이 그래서 있을 것이다
- P83

힘든 것도 살아있으니 겪는 거고 행복한 것도 살아있어야 겪는 것이다. 그러니 힘든 것 도 행복한 것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인생에 행복이 없을 수 없고 괴로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취하려 한다. 행복한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서 행복인줄 을 모르고. 괴로움은 원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원망하고 비관함으로 자신을 파괴한다
- P153

고독사가 의미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고독사는 그가 얼마나 고독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고독하게 살았는가를 말해준다. 병 때문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든, 그 쓸쓸한 삶이 고독사를 불러오고 그 자리에는 비워진 술병, 높다랗게 쌓인 쓰레기, 텅 빈 냉장고, 먼지 앉은 바닥, 때로는 명품 의류와 번쩍거리는 보석들이 증거로 남는다. 삶의 의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들이 죽은 것은 아마도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 P158

그동안 만난 외로운 죽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이나 이웃의 단절, 유품에서 나온 자녀들의 사진.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도움이나 위로보다는 그저 따뜻한 안부 인사 한마디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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