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교과서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70% 이상의 중학교, 고등학교의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난쏘공’은 시험 문제에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곤 했었습니다. 특히, 문학 추천 도서로 유명한 도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난쟁이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영수, 영호, 영희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매일을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외 계층입니다. 아버지는 ‘키 117cm, 몸무게 37kg’의 왜소한 체격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가난도 그렇습니다. 하수도 오물을 뒤집어쓰고, 부엌칼을 갈아주고, 건물 유리창을 닦으며 뼈빠지게 일해도 갈수록 더 궁핍해집니다. 살던 판잣집마저 아파트 개발로 철거됩니다. 대가로 입주권을 받지만 입주비가 없습니다. 입주권은 결국 돈 있는 거간꾼의 차지가 됩니다. 실낱 같은 기대감으로 천국을 꿈꾸지만 통장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말미암아 철거 계고장을 받는 순간 이들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영수네 동네인 낙원구 행복동주민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비가 없는 마을 빈민들은 시에서 주겠다는 이주 보조금보다 약간은 더 받고 거간꾼들에게 입주권을 팔고 맙니다. 그 동안 난쟁이 아버지가 채권 매매, 칼 갈기, 건물 유리창 닦기, 수도 고치기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으나 어느날, 아버지는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고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그만둡니다.

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입주권의 값이 뛰어오르고 영수네도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내에게 입주권을 팝니다. 그러나 명희 어머니에게 전셋값을 갚고 나니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영희는 집을 나갑니다. 영희는 승용차를 타고 온 그 투기업자 사무실에서 일하며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에게 순결을 빼앗긴 영희는 투기업자가 자기에게 했듯이 그의 얼굴에 마취를 하고 가방에 있는 입주권과 돈을 가지고 행복동 동사무소로 향합니다. 서류 신청을 마치고 가족을 찾으러 이웃에 살던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갑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사회적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도시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빈민들의 생존권은 무시당한 채로 이뤄지는 철거정책과 그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악덕 부동산업자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를 통해 시대와의 대결을 보여줍니다. 영수와 은광그룹의 대결은 노동쟁의를 막으려는 기업의 횡포와 여기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나타냅니다.

소외된 근로자의 여러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고용자로부터 강요되는 부당한 노동 행위, 노동 조합에의 탄압, 폭력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극한적 심리 상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사치, 그들의 교묘한 억압 방법 등 산업 사회의 부정적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밝은 미래, 희망도 던져주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을 뿐입니다.

197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소설이 쓰이게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책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란 상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소설처럼 보이지만, 개별 작품 하나하나에 난장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사연이 녹아 있습니다. 이러한 사연을 모아 낸 난쏘공 초판 1쇄가 나온 시점은 1978년 6월이었습니다. 무려 4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 책을 공유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러한 비극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자신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을지 모릅니다. 1970년대보다는 근로조건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또 다른 성격의 불평등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20년 도시의 박탈감은 오히려 행복동보다 초현실적입니다. 유례없는 전염병이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간극을 더 헤집어놓았고 각종 사고에 노출된 노동자들에 삶은 변함이 없습니다. 공동체의 위기나 비상 상황에서는 가진 것 없고 소외돼 있는 약자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막내 영희는 큰 오빠를 다그치며,

“화도 안나?”

라고 말합니다. 영희의 절규는 더 이상 난쟁이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암울한 시대를 보여주는 과거이자 현재, 혹은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아직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난쏘공’을 느끼고 그것의 의미를 계속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사회가 이쪽과 저쪽으로 양분된 것이 아니란 것을 드러내면서 타인을 공감하기 위한 노력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의사들은 아버지가 아무도 찾아낼수 없는 병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뒤에도 무서운 동통과 싸우며 두 해나 더 살았다. 아버지는 전생애를 통해서 그의 시개 사회와 불화했던 사람이다. 신애는 남편이 같은 형통의 사람임을 잘 알았다. 좋은 책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던 남편은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실어증 환자로 생각했다. 중오하는 돈도 죽어라 벌었으나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부모의 병을 고쳐주지도 못하면서 병원은 그가 죽어라 하고 벌어들이는 액수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늘 요구했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그에게는 울 힘조차 없었다
- P29

아버지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이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 잡혀 아버지가 늙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는 스스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체념과 우울에 빠졌다. 실제로 이가 망가져 잠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눈도 어두어 지고, 머리의 숱도 많이 빠졌다.의욕은 물론 주의력과 판단력도 줄었다
- P95

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난 곳에 산을 흘려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첫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나나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 P131

동생은 병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손가락을 입에 댔다. 동생 머리맡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갖다놓은 것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을 제일 약하게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었다.
- P158

나에게는 우연 같지가 않았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림 ③의 실체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 실체를 무시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③을 들고 "그럼 이것은 뭡니까?" 내가 물었는데 그는 간단히 "그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P260


p300 "정말 끔찍한 건 이 세계라구요. 몇몇 나라들이 그들의 사회제도로 부터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미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어요."
"병이 난 사람들이겠지"
"질병하곤 상관이 없는 일예요."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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