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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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이 흘러내리는 팬케이크, 하늘과 맞닿은 듯한 인피니티 풀, 색색의 빛으로 꾸며진 갤러리...오늘날 인스타그램은 가상 공간의 울타리를 넘어 현실을 바꾸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압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밀레니얼들의 욕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인스타그램의 소통 방식은 밀레니얼의 소통 방식에 부합합니다.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인스타그램에서의 네트워크는 밀레니얼 세대의 인간관계와도 닮아있습니다. 현재 2·30대는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물리적으로 가까운 친구보다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 공동체를 선호합니다.

책의 저자 정지우는 인스타그램을 주로 사용하는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로 인해 우울, 좌절, 증오, 혐오 같은 현상이 얼마나 일상화되고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이 세상, 이 사회, 이 현실 전체의 변혁이나 변화가 자기 삶을 이끌어줄 것이라 믿지만, 청년세대는 그런 믿음을 지녀본 적이 없고, 자기의 협소한 삶이나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 믿으며 견뎌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초에 태어난 사람들까지를 이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과도기 세대입니다. 이들은 결혼이나 육아, 그 밖의 전통적 관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때건 화려한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 ‘환각의 세대’입니다. 이들은 개개인의 삶의 영역을 엄격히 지키면서도 타인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도 중시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으려는 특성이 강합니다. 또한 새로운 집단주의를 구현해내고 있는 세대이다. 그 특징으로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의 단합, 공유 등을 제시합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1장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통해 ‘세대’ 문제와 극복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았다면, 2장에서는 또 하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는 젠더 문제를 살펴봅니다. 끝으로 3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는 공동체 문제를 살펴봅니다. 여기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 편견, 분노와 증오 각종 혐오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지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세대, 어느 한 영역에 온전히 몸 담그지 않는 세대, 확고한 정체성 대신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의미와 가치의 기준을 계속 이동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시소의 세계관’이라 설명합니다. 또, 기존의 자신이 써왔던 다른 글들 중 가장 절실하고 의무감에 휩싸여 쓴 책이라고 고백하며,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실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저자 스스로는 자신이 청년세대를 지나쳤다고 말하지만 독자에게 그는 누구보다 청년세대를 대표합니다. 기성세대의 사회가 아닌, 기성세대가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밀레니얼 세대가 그 삶을 살아간 주체로서 써 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기존의 청춘 또는 세대에 대한 분석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그쳤다면, 저자의 시선은 청춘의 내면을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인 분들께도,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실 세대, 나이, 성별 막론하고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문제만큼은 우리 모두가 마주한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외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야기되어야 할 내용들이 차곡차곡 담겨있으며,

정답이나 정리해버리는 담론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저자의 시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존’으로 바라본다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대화와 성찰은 한 세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불과 어제까지 우리는 핫플레이스에서 콜드브루 카페라테를 마시고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와 연어샐러드를 먹었고, 지난달에는 제주도로 여행 가서 오름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이란 그 화려했던 이미지들과는 완전히 무관함을 깨닫는다. 원룸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어느 오후에 문득, 내 삶의 주된 시간이란 대부분 그런 ‘이미지‘가 없는 살이고, 그저 잠깐잠깐만 그런 이미지를 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삶의 대부분은 무미건조한 회색 권태로 뒤덮여 있고, 술을 마시는 순간에만 웃을 수 있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 P27

‘미닝아웃meaning out’은 이러한 시대에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대변한다. 단순히 취향으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신념에 맞추어 소비를 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자기 안에 숨겨둔 주장이나 취향 등을 표출하는 ‘커밍아웃coming out’의 결합어다. 최근 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신념에 따른 소비’를 드러내고 있다
- P42

사회 전체, 시대 전체, 이 세상 자체에 대해 ‘발언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는 사실 이미 이해관계에 얽혀들어 있으며, 그들의 하루하루를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이미 속하게 된 자신의 삶 안쪽을 향하는 시야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삶 앞에 선 청년, 자신들이 시작하게 될 삶의 조건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응시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시대 전체와 미래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시야는 항해에 앞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눈빛처럼 예리하고 투명하다
- P79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양쪽에서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 P98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 또한 이런저런 상처들로 얼룩져 있을 테고, 나의 여러 이상한 부분은 그런 상처들이 만들어낸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부분들, 이상하게 예민한 측면들, 쓸데없이 나를 방어하거나 높이려는 순간들이 있을 테고, 그런 부분들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문제들을 짐작하게 할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고, 그래서 나 자신의 실수를 대할 때나 타인의 이상징후를 대할 때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 P116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 P151

결국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은 구성원을 좌절과 증오로 몰고 가는 사회 및 문화 구조 그 자체에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진 삶‘을 지시한다. 이 불가능성, 균열되고 좌절된 삶의 문제에서 태어난 분노는 사회 모든 곳을 향하다가, 이제 양성이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낭떠러지 자체‘이다. 해야 할 일 역시 그 낭떠러지에서 어떻게든 손을 잡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 절망의 사회에서 다른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 P165

결국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은 구성원을 좌절과 증오로 몰고 가는 사회 및 문화 구조 그자체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진 삶’을 지시한다. 이 불가능성, 균열되고 좌절된 삶의 문제에서 태어난 분노는 사회 모든 곳을 향하다가, 이제 양성이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낭떠러지 자체’이다. 해야 할 일 역시 그 낭떠러지에서 어떻게든 손을 잡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 P185

그나마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위용을 발휘하던 시대도 지나 가족이란 그 힘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이 주는 순기능은 사라지고, 가족 내에서 온통 트라우마를 입고 쫓겨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또 다른 야생을 만들고, 가족의 해체는 흔해졌다. 그런데도 사회는 가족을 대체할 만한 방책을 거의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붕괴되어가는데 사회는 여전히 온갖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긴다. 각자도생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책임의식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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