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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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입니다. 단편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책 속의 이야기들이 한 가지 느낌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들은 모두 상실이 주는 공허와 슬픔,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입동'은 한 부부가 갑작스럽게 아이를 잃은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이 슬픔을 견디다가 집안의 더러워진 벽을 새로 도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부부가 도배를 하다가 벽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를 보는 순간 조금 새로운 국면에 도달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벽 아래편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처럼, 슬픔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도배지를 벽에 붙이듯이 슬픔은 덧씌워질뿐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노찬성과 에반’은 초등학생 찬성이 버려진 개 에반을 키우는 이야기입니다. 에반이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앓을 때, 찬성은 돈이 없어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알바를 하며 돈을 번다. 찬성은 에반을 위해 자신의 개념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진정한 공감과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침묵의 미래’ 에서는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연구합니다. 그 연구가 단순히 학술적이지 않고,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유리 안에 전시하고 관람객이 오면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듯 인사하는 식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천여 개의 언어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모든 인간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따로국밥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연민과 공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줍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작품입니다.

상실을 마주하는 태도를 너무나도 서글프지만 연민 있게 그렸습니다. 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는 괴로워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남편을 애도하고 학생을 원망합니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학생의 누나가 쓴 편지를 읽고서 화자는 울면서 남편의 용기와 희생에 끝내 눈물을 흘립니다. 아내는 주로 시리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 인간이 잃어가고,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숨이 막히는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아픔과 절망, 상실은 그들을 주저앉게 하고 그들에게 숨도 못 쉴만한 상황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그들의 꿈은 사라져만 갑니다. 하지만 작가가 추적한 그들의 모습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무너져 있어야 하는, 춥고 어둡고 배고픈 그들이 문을 열고 나가는 곳은, 바깥은 여름일 것이라는 소망을 남겨둡니다. 절망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들의 슬픔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서 더 먹먹하게 느껴졌습니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지만 차분하면서도 울림이 있었습니다.

인물이 받는 불편한 감정, 그리고 불합리하다고 여겨질만한 상황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솔직하면서도 비겁한 생각들까지 매우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책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 했다.
- P16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 P21

그 시절 찬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몇 가지 깨달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찬성은 그곳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자동차 배기가스와 어른들의 하품을 먹고 자랐다. 환한 대낮, 차 안에서 일제히 잠든 이들은 모두 피로에 학살당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졸음 쉼터 자체가 자동차 묘지 같았다.
- P43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 P92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 P99

웃는 것, 또 웃는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
- P133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 테니까.
- P190

나는 어떤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 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돋아날 수 있다는데 놀랐다.
- P238

이튿날 아랫배에 분홍색 반점이 여덟 개로 늘어났다. 어떤 것은 백원짜리만 하고 또 어느 것은 완두콩만큼 작았다. 다음날은 열두 개, 그 다음날은 스무 개였다. 그것은 곧 온몸으로 퍼졌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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