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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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이 되면 약 70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 추정합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그와 더불어 도시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도시가 인구 천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책은 <알쓸신잡>에 출연하고 있는 건축가 유현준씨가 그동안 여러 칼럼에 게재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하여 출판한 책으로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는 각종 국제 및 국내 건축상을 수상한 실력 있는 건축가이지만 방송 출연, 칼럼 집필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건축만의 딱딱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다른 매체를 통하여 발표되었던 글들을 모아서 편집을 한 것이다 보니 각 장내에서 이야기 흐름이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흩어진 느낌을 주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기도 합니다.

건축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건축은 단순히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환경, 경제, 정치, 사회 등 모든 것이 종합되어서 건축물에 들어갑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공간의 구조가 권력을 재분배하고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TV, 영화 등 언론에서는 종종 전원 생활 자랑을 홍보합니다. 귀농, 귀촌이 과연 좋을까요? 도시의 삶은 이중성이 존재합니다. 도시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그대로 배태되는 공간이므로 당연히 인간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잃어 가는 인간성과 여유로움, 소통과 질 높은 삶을 되돌려 줄 것입니다.

지난 시절 도시계획, 도시재건축은 도시문화를 망가뜨렸습니다. 그나마 서울시는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길'은 명사이지만 그 자체가 생동력이 담겨있습니다. 둘레길, 해안길, 산길, 마을길, 동네길 등등..

미래의 도시 모습에 대한 고민을 통해 우리나라도 근대적 효율성에 길들여진 도시에서 벗어나 기존의 도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모범적인 도시, 새로운 가치를 담은 '마음의 고향'을 가져볼 때가 되었습니다. 도시에서의 행복은 가까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무심코 지나던 거리, 거리의 고층건물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도시 개발 정책에도 관심이 생깁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인간을 만든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공간은 막연하다. 하지만 벽을 세우게 되면 막연해서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 P17

거리에 다양한 상점 입구의 수는 TV 채널의 수나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P26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삼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 주도적인 삶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연성이 넘친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리가 더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 P31

사람은 적당히 그 공간에 묻혀서 걸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의 속도를 가진 공간을 원한다.
- P44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 P57

주변 경관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고 본인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부자들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맨 꼭대기에 산다. 돈으로 공간의 권력을 사는 것이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확실히 보여 주는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남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 P77

자신이 소유한 공간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이다. 더 큰 체적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해석을 한다면 더 큰 공간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90

정사각형이 아닌 가로로 긴 직사각(격자)형. 짧은 세로의 에비뉴를 통해 상권과, 다양성, 개발 및 활력의 가치를 부여하는 한편, 긴 가로의 스트릿을 통해 사적, 폐쇄성, 공동체의 기능을 얻을 수 있다
- P115

더 이상 건축 문화재를 박재시켜 놓고 우상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 P118

살아 있는 생명 시스템은 세포를 끊임없이 없애고 새로운 물질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오래된 세포를 교체시키면서 성장한다.
- P125

우리는 건축 자재로 건축물을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축이 다시 우리의 삶과 정신과 문화를 만든다
- P138

훌륭한 건축은 대지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건축이고, 더 훌륭한 건축은 좋지 못한 에너지까지도 좋게 이용할 줄 아는 건축이다.
- P158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195

한강 개발에 대한 많은 접근 방식에서 우려되는 것은 비어 있는 한강을 지나치게 밀도 높은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은 마치 비어 있는 마당이나 도가 사상으로 만들어진 선정원같이 정신없는 서울의 일상에서 벗어난 비움의 공간으로 잘 이용되고 있다. 빈 땅이 있으면 그 땅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뿌리박힌 ‘개발 DNA"가 한강에서는 잘못 작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 P201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면서 공간의 부족으로 없어지는 사생활의 자유는 대도시의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완벽한 익명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멀리 해외여행을 간다. 그런데 아주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마음먹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거기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김이 샌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비싼 돈을 들였는데 거기서도 완전한 익명성이 없기 때문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익명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보통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유를 소유하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크기가 건물의 규모를 넘기 어렵다.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한 도시 크기의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 P222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은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재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 P235

건축은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건축 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듯 주관적인 관점에서 공간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관점은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객체의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 P251

지난 수천년간 서양 과학은 끊임없이 작은 ‘최소 단위‘를 찾는 데 매진해 와서 양자역학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한 발견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과학의 흐름이 콤플렉시티 이론이다. 우리말로 ‘복잡계‘라고 번역된다. 과학자들이 20세기 후반에 미국의 산타페에 모여서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 P267

사람은 자원이다.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은 많은 이벤트가 형성되고 그 만큼 중심적인 ‘장소성’을 구축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이 아무리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결국에는 사람이 공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 P273

신사동 가로수길은 이름처럼 가로수가 아름답게 있는 거리도 아니고, 인도 폭이 좁아서 걷기도 어려운 거리이다. 그런 가로수길이 지금의 보행자들이 찾는 거리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 고수부지 공원이다. 대중교통 정류장과 자연 요소, 이 두 요소를 연결하는 거리는 사람들이 걷기 좋아하는 거리가 된다
- P284

미국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거리를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하고, 일보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공간을 심리적으로 커 보이게 한다
- P290

건축은 밖에서만 바라보는 조각품과는 다르다. 건축은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관점을 중요하게 여긴 건축이다.
- P298

진정 훌륭한 건축 디자인은 어느 한 땅에서는 훌륭하게 작동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그런 건물이 그 대지가 가진 에너지를 잘 이용한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P312

만약에 우리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건축물에 적용한다면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 P316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생태계가 변화할 때 한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하나의 스타일로만 전체적으로 통일이 되어 간다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류가 한 번에 ‘훅’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가 모두 똑같은 서구식 현대인의 삶을 사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는 데 치명적인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P340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 P360

어떠한 것이 되든 재료, 기술, 한계를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데는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필자는 강북의 북촌이나 강남의 뒷골목을 가면 한국적인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주어진 건축물에 생존을 위해서 디자이너가 몸부림친 흔적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P375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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