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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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에 있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직업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플 때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의사이고 그들은 언제나 죽음에 가까운 환자들을 마주대하기도 합니다.

몇몇 의학 드라마에서 응급의학과를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드라마에서의 ‘응급실'은 깔끔하고 멋진 의사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살면서 아직까지 응급실을 가본 적은 없어서 그곳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책 속의 응급실은 역시나 드라마는 현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1부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응급환자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2부는 그와 반대로 재밌는 에피소드를 섞어 의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개인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국의료의 적나라한 모습, 그 속에서도 응급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환자 앞에서 의료진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 치열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의료진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생사가 갈리는 응급실에서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고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써내려간 글들 이외에 재미있는 글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있었고,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 가벼운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며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의사는 사명감 없이 돈만 보며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의료인으로서, 또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고민하고 갈등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고독한지, 외로운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헌신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19로 긴 시간동안 싸우며, 지금도 분투하고 계실 의료인들의 헌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p291 "근데, 참 사람들이 이기적이다. 죽은 분도, 유가족들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지만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목숨을 해칠 각오를 하면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데, 그리고 인정받지 못하고 내몰려서 묵묵히 일하다가 남모르게 앓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신의 일을 다 했다며, 보상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고 조용한 곳에서 시들어가는데....“

하지만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찾아낼 수 있는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놓쳤거나,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의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 P26

곧 죽을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떤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곧 죽어야 할 사람이 무엇이 더 두려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곧 죽을 사람을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못한다. 죽음은 그 자체로 완벽한 처벌이자 선고니까. 거기서 무슨 일이 더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 P41

죽음에 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가볍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선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을 표하거나 어떤 죽음은 응당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 P43

하지만, 일단 살아난 환자를 포기해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살려야 했다. 하지만 치료되지 않는 병이므로 내가 환자에게 행할 치료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 살려내면 바로 죽을 환자를 살려내고서 그것을 치료라고 우길 것인가. 나에겐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 P158

나는 응급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의사다. 밤새고 일하는 고생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이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외진 응급실에서 조용히 일할 뿐이다...하지만 인간으로서 내 환자가 눈 앞에서 죽어 가면 식은 땀이 나고 온몸이 떨린다. 생각 없는 나도 며칠 동안을 자책하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질문은 무지한 나도 먹먹한 기분이 들게 한다
- P172

응급실은 병원 안에 있지만, 바깥 세상의 한복판에 있기도 합니다.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응급실에서도 고스란히 그 일과 관련된 소동이 벌어집니다...사람들은 이곳에서 슬픔에 젖곤 하지만, 사회라는 곳이 꼭 슬픔만 가득찬 곳이 아니듯 응급실에도 가끔씩 기쁘거나 미묘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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