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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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소설에는 각자의 사연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것들이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등장인물에 연민을 느끼거나 공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손톱

한 달 월급 백칠십만 원으로 옥탑방 월세와 대출금을 갚고 간신히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소희에게 다친 손톱을 위한 치료비는 과도한 지출입니다. 소희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습니다. 어디가 아프고 무슨 일이 생겨도 상의할 대상이 없습니다. 엄마와 언니가 있었지만 차례로 소희 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언니의 적금과 대출을 받아 떠난 것처럼 언니도 소희에게 대출을 남기도 떠났습니다. 시청료를 내지 않으려고 텔레비전도 없애고 매운 짬뽕 곱빼기 한 그릇을 선뜻 주문하지도 못한 채 살아갑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계산을 거듭해도 갚을 수 없는 빚더미,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와 언니에 대한 분노는 안에서 펄펄 끓다가 손톱으로 터져나옵니다.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박스를 정리하다 굵은 고정쇠에 오른손 엄지손톱을 찔려 손톱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깁니다. 치료도 제때 받지 않고 방치하다 혹이 생기고 덧나자 뒤늦게 병원을 찾지만, 치료비 7만원을 내고 소희는 절망합니다.

*너머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한 달간 계약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N은 어쩌면 한 한기, 혹은 그 이상으로 재계약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학급 담임도 잘 해내고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과도 잘 지내고 싶었지만, N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를 은근히 드러냈고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계산하고 먼저 이익을 따지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치사한 일이었고 부아가 치밀었지만 N은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그녀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압니다. 한 달의 병원비를 위해서 그녀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학교와 요양병원은 전혀 다른 공간이지만 N과 어머니가 놓은 상황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친구

낮에는 여성용품 마케터로 일하고 밤에는 고깃집에서 일하는 해옥은 아들 민수를 보며 고단함을 잊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민수는 다행스럽게도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다해옥에겐 영란이란 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일을 소개해 주었고 해옥의 건강도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란은 자신의 이모가 파는 다이어트 식품을 해옥에게 아주 싼 가격에 판다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해옥을 이용했습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민수를 때린 아이들처럼. 해옥은 민수가 학교 폭력 피해자란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담임은 해옥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민수는 친구끼리 장난친 거라 했고 해옥은 아이들에게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해주기로 합니다.

해옥에겐 신이 있고 그분의 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해옥은, 의심도 하지 못하는 해옥과 아들은 불합리를 인지도 못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 중에서는 딱히 잘못한 인물이 없습니다. 잘못이 없는데 사회구조 때문인지 서로에게 죄인이 되고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주변부 사람들, 소수자들의 현실과 아픔을 처절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애달프고 아픈 이야기이지만 작은 희망과 따뜻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직 멀었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충분하지 못하다, 덜 됐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양에 차지 않는다, 더해야 한다는 말인 줄도 알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미흡하고 충분하지 못하고 덜 됐고 양에 차지 못해서 더 해야 하는지는 얼른 알지 못하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과연 작품 속 인물들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직 멀었을까요? 우리도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죄없는 사람들이 더 상처받는 현실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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