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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데이트 폭력과, 최근 이슈가 되는 여성혐오와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주인공 진아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재판에서 승소하고 자신이 겪은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주목과 응원을 받지만, 직장 동료 여성이 반박글을 올리면서 평판이 망가집니다. 그는 어느날 트위터에서 자신에 관한 이상한 글을 발견하고 대학 시절 친구 유리와 수진을 떠올리며, 그 글을 쓴 사람을 찾아 고향 안진으로 갑니다.
데이트 폭력, 사제 간의 성추행, 강간 등 여러 성폭력을 당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의 상처에 집중합니다. 등장하는 주인공은 직장상사이기도 한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합니다. 주인공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맞아, 나는 그런 인간이야. 그래서 그가 나를 때린 거야’라고 자기 자신을 혐오합니다.
데이트 폭력과 온라인 댓글 테러로 상처입은 진아.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했지만 무시당하고 이용당했던 유리. 성폭행으로 임신하고 아기를 지워야만 했던 수진. 그녀들을 이용하고 상처입혔으나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가해자들. 그들의 관계를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당하고 싸워야 했으나 싸우지 못한 기억은 결국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하고 병들게 만듭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고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인물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성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소설 속의 그들과 진정 다른 사람일까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우리가 잊었다고 믿고 있던 불편한 진실에 대면하게 합니다. 그 진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있어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진아와 수진, 유리와 이영을 이해하게 될 때, 더 이상 ‘다른 사람’일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주인공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각자의 기억과 심리에 대해 잘 표현해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표지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듯 했습니다.
댓글 중 그런 말이 있었다. 겨우 그 정도 표현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여자는 한심하다고 다들 이렇게 스스로에게 계속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한 순간, 더 쉽게 와르르 무너질 테니 - P19
본질을 감추고 외피를 만드는 데 언어만큼 적당한 건 없다 - P105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뭔가를 잘못한 것 같죠? 아이를 지웠기 때문인가요? 그런데 그게 정말 아이였나요?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긴 세포를 반드시 아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나는요? 내 인생은요? 내 몸은요? 당신들은 어떤가요. 기사에는 어떤 대답도 나와 있지 않았다. - P204
그래서 소설을 읽었다. 소설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맨정신으로 원하지 않은 일을 당한 여자들도 있었고, 의식을 잃은 여자들도 있었다. 수진처럼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걸 극복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만일 수기나 인터뷰였다면 수진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의 목소리를 읽는 건 겁이 났다.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건 편했다.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읽는지 눈치 재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소설을 거대한 담론과 목표에 연결 지어서 이야기했지만 수진은 그런 것 따위 관심 없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중요했다. 오직 한 사람의 목소리. 자신만의 이야기. 그곳의 분노는 수진에게 위로였고 증오는 기쁨이었다. 그녀는 ‘매리앤‘들을 읽을 때 편안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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