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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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개구장이처럼 할머니를 부른다는 것이 어쩌면 더 이상 흥분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할머니’를 정겹게, 그리고 자주 불러보고 싶습니다.

저마다 할머니에 대한 제각각의 추억들을 갖고 있겠지만 ‘할머니’에 깃든 모두에게 공통된 정서는 아마도 ‘여유로움’ 아닐까 싶습니다. 떡 한 번 하더라도 엄마가 하면 딱 우리 식구 먹을 만큼만 하고 말지만 할머니가 했다 하면 온동네 잔치가 벌어지곤 하던 것처럼, 엄마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삶에 대한 여유와 넉넉함이 할머니에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존재는 참으로 크고 공고했으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매년 명절이면 할머니는 십여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의 세뱃돈과 설빔까지 일일이 챙기시곤 했습니다.

이 책은 여성 작가 6명이 '할머니'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집입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저마다의 고유한 감각과 개성이 드러나있습니다. 때로는 대담함으로, 때로는 섬세함으로 나타납니다.

어제꾼 꿈

할머니는 남편의 제삿날에도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해 하면서도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를 해주는 좋은 할머니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위로해주는 듯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p33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빌었어.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도 해주겠다고 지후가 올해 주문이 성공하면 내년에도 같이 하자고 말해서 나는 그러자고 했다

흑설탕 캔디

젊었을 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포착해내는 문체가 돋보였습니다.

p67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베드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가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혼자 남겨질 노년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유산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집을 둘러싸고 겪게 되는 사건이 주된 내용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긍지를 잃지 않는 여성상을 잘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화자가 3인칭 시점으로, 다소 복잡한 구성을 편안한 문장으로 그려낸 것이 돋보였습니다.

11월행

할머니, 딸, 손녀딸 3대가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리아드네 정원

멀지 않은 미래의 노인 문제와 세대 갈등, 이민자 문제 등을 꼬집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도 곧 겪게 될 고령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p199 오늘의 다음 날은 두근거리는 미지의 내일이었다. 노년은 하물며 떠올려볼 수조차 없었다

부모도 모두 아이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힘들어서, 아니면 그 순간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혼내거나 화를 냅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은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듯 합니다. 아마도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인 것 같습니다.

신이 모든 사람들 돌보지 못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 위에 또 하나의 어머니, 할머니들 또한 신의 보살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십니다.

소설 속의 할머니들도 그랬고, 제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할머니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애지중지 사랑을 쏟아 주셨던 나의 할머니는 그리움만 남겨둔 채 60세를 넘기지 못하시고 먼길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할머니의 자리를 물려 받으셨고. 또 그 빈자리는 제가 채우게 되겠지요.

저도 할머니처럼 살다가고 싶습니다. 자녀와 손자들에게 제게 기억되었던 그 할머니로 저도 남고 싶습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맡아 키우는 걸 기꺼이 선택했을까? 나를 사랑하긴 할까? 아니면 그저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 할머니는 나랑 사는 게 좋을까... - P89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고, 그 시점에서 돌아보는 과거는 아둔하고 순진해 보일 뿐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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