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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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마치 처음엔 서서히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읽게 만드는 강한 흡인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단순히 '흥미진진하다' '범인을 꼭 밝히고 싶다'는 흥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뒤에 감춰진 고통과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두 명의 형사가 한 집을 향하고 그곳에서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사인 엄마가 아들을 때려죽이고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쏴 죽인 이 엽기적인 사건은 아들의 방 벽에 피로 적혀진 ‘내 아들이 아니야’라는 문구로 그 기괴함을 절정에 달하게 만듭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안힐’이라는 마을은 과거 광산으로 유명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뒤떨어진 도시입니다. 20년 만에 고향인 이곳에 돌아온 주인공 조 손은 이 모자가 살던 집에 세를 얻습니다.

그가 20년 전 마을을 떠났던 이유는 여동생 애니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애니가 죽었을 때와 같은 사건이 반복되었다는 의문의 메일에 그는 안힐로 와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마을에는 그를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여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지독한 악연으로 뭉친 스티븐 허스트입니다.

거칠고 사악한 그는 조 손을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합니다. 교육위원장인 만큼 교사로 안힐로 돌아온 조 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쫓아낼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에 스티븐 허스트의 아들과 아내 마리는 조 손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어 괴롭힙니다. 강한 힘과 영리한 머리로 영악하게 아이들을 괴롭히는 스티븐 허스트의 아들은 과거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가 교사들에게 폭력 사실을 걸릴 때마다 내세우는 변명은 어머니가 암에 걸려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븐 허스트의 아내인 마리는 과거 조 손이 좋아했던 존재로 마을을 떠나 꿈을 이룰 줄 알았던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와 결혼한 건 물론 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낙담합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다시 안힐에서 반복되고 있고 그는 이 사슬을 끊고자 합니다. 죽은 교사의 집에 묵게 된 조 손은 그곳에서 죽은 애니의 악령과 만나게 됩니다.

결말이 궁금해서 멈출 수 없어서 단숨에 읽었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습니다. 허를 찌르는 반전에 줄곧 감탄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요? 그래도, 냅다 곤두박질치는 롤러코스터처럼 주위를 다 잊을 정도로 단숨에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조와 현재의 조를 오가며 한 겹 한 겹 비밀을 벗기는 식으로 전개되는 구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킹에게 ‘여자 스티브킹’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하네요. 그녀의 전작도 궁금해집니다.

근사한 집, 근사한 차, 근사한 옷, 하지만 절대 모르는 법이지. 그 속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 P12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 P27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네가 무서워해야 하는 쪽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
- P33

나를 붙잡고 있는 관계,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 나를 어떤 아이덴티티에 묶어놓는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아주 멀찌감치 도망치면 적어도 당분간은 내 자신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자아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새로운 나를 으리으리하게 꾸밀 수 있다.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 P108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 P133

그렇게 유일하고 일시적인 것들이 있다. 흉내 내고 다시 만들 수는 있지만 되살릴 수는 없다. 전과 다르다
- P160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땅속 깊이 뚫린 상처만 남았다. 그건 잃어버린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흔적이었다. 일부 가족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데로 떠났다. 우리 아빠 같은 그 나머지는 적응했다. 마을은 절뚝거리며 회복 비슷한 걸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절대 낫지 않는 흉터도 있는 법이다.
- P204

는 행복하고 순수하고 태평하게 깡충깡충 뛰어가는 애니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때가 마지막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 P219

쭈뼛쭈뼛하고 사회성이 떨어졌던 또 다른 아이. 또 다른 희생양.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가장 많은 걸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무도 모르게 흡수한다
- P244

우리는 하나같이 너무 바쁘고 , 하루하루를 버티려는 노력(일을 하고 공과금과 주택담보대출을 해결하고 장을 보고) 만으로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보다 더 깊숙하게는 들여다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다. 그저 모든게 괜찮길 바란다. ‘더할 나위 없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대처할 만한 정신적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 안좋은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우리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 P299

이곳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둘지 몰랐다. 심지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수법이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소유했다.
- P324

동생은 돌아왔다. 애비-아이스를 으스러져라 끌어안고 엄청 큰 담요를 두르고 다리를 흔들며 경찰서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때 나는 뭐가 이상한지 알았다. 뭐가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이상한지.
- P341

이 세상의 어떤 것들-아름답고 완벽한 것들-은 다시 만들면 반드시 망가지게 되어 있다
- P347

거짓말이었지.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건 없다.거짓말은 절대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 아니다. 전부 회색이다. 진실을 가리는 안개다. 가끔은 그 안개가 너무 짙어서 우리 자신조차 진실을 볼 수가 없다.
- P407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삶을 숙명이다. 심연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도록 계속 바쁘게 생활하며 신선을 피하는 것. 그걸 들여다보았다가는 광기에 휩싸일 것이기에
- P421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는다고 하잖아요. 가끔은 죽음도 그렇지 않나 싶어요. 결국 모든 카드를 쥐고 있는 쪽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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