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바야흐로 프로든 아마추어든 작가, 특히 수필 작가, 에세이 작가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아마추어들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머리와 가슴 모두에 울림을 주는 것들도 결코 적지 않지만, 개중에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살짝 건드려 달래줄 뿐, 결국 그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책들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글'이 갖춰야 할 최소한도의 조건은 고사하고, 평범한 소재도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없는, 소위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이죠.

기억에 남는 에세이집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베스트셀러중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책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이 책은 가벼운 듯 보이나 가볍지 않고, 유머러스하지만 깊은 사유가 함께 있습니다. 저자는 교수이지만, 독자를 가르치려들지 않고, 글에 특별한 교훈을 넣어 우매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강박도 없습니다. 다만 아주 가볍게 우리의 통념을 뒤집으며, 시시한 것의 힘을 믿을 뿐입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에는 ‘일상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일상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자극을 주고받고 사회에서 부조리를 목도하고 영화를 통해 질문을 움틔우고 대화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이자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1부와 2부에서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사소한 일들 또는 사건들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말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특히 새해에 ‘행복’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p23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락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책에는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 등 답만큼이나 질문 또한 많습니다.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본질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명절의 역할을 짚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가족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가족이기에 말할 때 더욱 섬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p37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 밖에 없고, 성장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위한 무기는 바로 죽음에 대한 감각’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인간은 쉽게 부도덕해지지만, 죽음을 감각하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p175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1부와 2부는 유쾌한 내용이라 저절로 웃음이 나지만, 주제가 "사회"인 3부에서부터 슬슬 진지해지기 시작해 웃음기가 슬며시 사라집니다.

4부에는 저자가 1998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에 참가하여 상을 받은 작품인,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대한 영화 리뷰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홍상수의 초기 영화와 ‘양들의 침묵’, ‘고스트 독’에 대한 리뷰가 실려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모르거나 영화에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면, 이 글들이 무슨 내용인지, 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다음 5부는 김영민 교수가 각각 김민정 시인, ‘신동아’의 송화선 기자와 만나 나눈 인터뷰 두 편을 모아 두었습니다.

에세이는 눈도 마음도 편하여 부드럽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리 읽게 되면, 그만큼 쉽게 증발되는 경향이 있어 기억에 두고두고 남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천천히 곱씹으며 완독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설레고 감동적입니다.

 

설거지의 윤리학. 설거지는 밥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게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취식은 공동의 프로젝트입니다. 배우자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하지 않고 엎드려서 팔만대장경을 필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귀여운 미남도 그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 P40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남이 해줄 때만 맛있다. 추석 음식을 마음 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직접 음식을 하지 않는 가정의 권력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송편 속에 콩을 넣는 만행이 지속되고 있다. 송편을 한입 물었는데, 그 속이 꿀이 아니라 콩일 경우 다들 큰 좌절감을 맛보지 않나
- P64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남이 해줄 때만 맛있다. 추석 음식을 마음 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직접 음식을 하지 않는 가정의 권력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송편 속에 콩을 넣는 만행이 지속되고 있다. 송편을 한입 물었는데, 그 속이 꿀이 아니라 콩일 경우 다들 큰 좌절감을 맛보지 않나
- P115

나는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서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여, 논문 심사라는 부실한 역할극을 완성했다.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는, 인생이라는 극장 위의 배우들이 이처럼 별생각 없이 자기가 맡은 배역을 수행한다. 당시 교수들도 자신이 위력을 행사하고 있으리라고는 새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직접 명령할 필요도 없다. 니코틴이 부족해 보이면, 누군가 알아서 담배를 사러 나간다.
- P131

이들이 야근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들렀을 때, 다음과 같은 유족의 편지가 벽에 매달려 있었다.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 가." 엄마는 이미 지옥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P182

선거가 끝났다는 것은, 자신의 당선이야말로 불행을 끝내고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면이 있다면, 그 모든 허황된 약속의 역겨움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가고자 한 결단에 있다.
- P187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을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과 악의 비판자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 악을 요청한다. 상대가 나쁘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비판하는 자신이 너무나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 P189

그 고약한 신과 피조물 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는, 더 행복한 존재 대 덜 행복한 존재 간이 아닌, 더 도덕적인 존재 대 덜 도덕적인 존재 간이 아닌, 더 아름다운 존재 대 덜 아름다운 존재 간이 아닌, 똑똑한 존재 대 바보 간의 위계질서다. 이 고약한 신은 세상의 미만한 사랑과 도덕이 모두 해석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진열장 안의 피조물들보다 똑똑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력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마치 실연 끝에 오는 허망한 지력과도 같은 것이다. 실연 끝에 오는 연애에 대한 통찰이 그다음 연애를 보장하지 않듯이, 불행히도 그러한 지력이 우리 삶에 줄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 P271

어떤 대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냉정한’ 지식을 획득했을 경우, 그 지식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이 우리를 홀리는 힘을 벗어나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역으로 말하여, 우리가 어떤 대상의 마력에 홀릴 때는 그 대상에 대하여 무지한 경우가 많다.
- P280

기계로서 사는 인생에 대가로 다가오는 것은 엄청난 권태다. 오랜 결혼생활에 이른 부부가 더 이상 상대의 육체에 매혹되지 않을 때처럼. 그 부부는 상대의 육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지 모르나, 그들의 인생이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냉정한 지식은 지식 소유자의 대상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주고, 대상의 마법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하지만, 그 인간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즉 한니발의 지식은 한니발로 하여금 세상으로부터 짓밟히지 않고 유유히 살아가게 만들지만, 그를 궁극적으로 구원하지는 않는다.
- P285

우리가 가장 상관하는 것은 늘 자신의 삶이며, 삶이란 저녁식사와 같은 일상의 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저녁식사 순간이 예술의 경지가 된다면, (바로 그 부분의)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한니발은 그러한 순간을 망가뜨리는 ‘무례한’놈들을 싫어하며, 그들을 먹어치운다). 즉 예술의 인간에 대한 궁극의 공헌은, 만들어내거나 향수하기 위해 사들인 예술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예술품을 만들거나 향수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고양된 자신의 생 자체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소가 일상임을 아는 사람이다
- P292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다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 P318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그러한 책들의 주장에는 특히 확신이 없거든요. 그런 책들은 확신한 근거나 없는 것들까지 확신하기에, 그런 책들을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
- P3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