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0
쥘 베른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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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제겐 세계여행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지로 모릅니다. 하지만 때때로 꿈 속에서 세계 여행을 가보곤 하는데, 아는 나라라고는 고작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곳 저곳 찾아보곤 합니다.

당분간 여행을 자제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펼쳐든 책, 책을 통해 실제로 세계 여행을 한 것처럼 느낄 수 있을까요?

1872년 영국, 막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온 시기에 학술적 연구와 토론을 위해 만들어진

혁신클럽.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영국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어느날 혁신클럽의 친구들과 잉글랜드 은행의 도난사건을 두고 대화를 하던 중, 범인이 세계로 도망가서 잡힐 것인가, 쉽게 빠져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더이상 범인이 도망칠 곳이 없다는 친구의 반론에, 포그는 ‘80일이면 세계를 일주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답하고 결국 이 대화는 사상 초유의 내기인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도화선이 됩니다. 포그는 혁신클럽 회원들에게 2만파운드라는 큰 돈을 걸고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어마어마한 내기를 하게 됩니다.

한편, 포그의 하인이 해고당한 직후, 프랑스인 장 파스파르투가 새로운 하인으로 들어오게된 시점이라 포그는 파스포르투와 80일의 일정을 목표로 세계를 일주하는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시작합니다. 포그일행이 길을 떠난 후 잉글랜드 은행의 범인 몽타주가 포그와 흡사한데다가 포그가 때마침 세계일주를 하기위해 영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입수한 영국경찰의 픽스형사가 포그를 은행절도 용의자로 확신하고 그의 뒤를 쫓아 세계를 돌게 되면서 벌어지는 각국의 이야기와 헤프닝들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당시 기준으로는 혁신적인 스토리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나 일부 국가들만 중심으로만 주인공들이 다녀가서 사실상 전체적인 '세계'가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은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대를 앞서간 상상력과 뛰어난 필력, 묘사력은 정말 전설적이었습니다. 당시 배경이 되는 시대가 1800년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세계를 '일주'한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서로 교류하고 있고 210개국도 넘는 나라들이 서로들 간의 존재를 알고 회합을 맺어가고 있고, 우주, 심해 등 제 3세계를 향한 끝없는 개척정신과 도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혹은 '세계화'의 도전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좋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세계 일주 코스는 런던을 출발해 파리-이집트 수에즈 -예멘 아덴-인도 뭄바이, 캘커타-싱가포르-홍콩-일본 요코하마-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영국의 리버풀을 거쳐 런던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로였습니다. 그들의 여행에는 끊임없이 뜻밖의 변수들이 끼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포그를 은행 강도로 의심하여 여행 기간 내내 쫓아다닌 픽스 형사였죠

또 다른 큰 변수는 언론의 오보였습니다. 영국에 보도된 인도 횡단 철도의 완공 기사가 실은 잘못된 정보였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나던 포그 일행은 남편이었던 늙은 추장의 장례식에서 산 채로 화장을 당하게 된 여인 아우다를 구해주게 된다. 이후 아우다는 끝까지 여행에 동행합니다.

그 밖에도 돌발변수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미국 횡단 중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대륙횡단 기차를 습격하고, 기차를 놓친 포그 일행은 돛 달린 썰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리버풀로 갈 땐 배의 연료가 떨어지자 타고 가던 화물선의 나무란 나무는 죄다 석탄 대신 때어가며 항해해야 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세계 일주를 다 마치고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막 타려 할 때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만 픽스 형사가 포그를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진범이 3일 전에 이미 잡힌 것으로 밝혀지고 풀려나긴 했지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런던에 5분 늦게 도착합니다. 포그는 이로써 내기에서 지게 된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반전의 계기는 여인 아우다인데, 그녀는 내기에 져서 재산을 몽땅 잃게 된 포그에게 오히려 청혼을 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포그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스파르투가 목사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갔을 때, 목사는 다음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례를 해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서야 파스파르투는 자신들이 동쪽으로 날짜변경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파스파르투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포그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가 극적으로 약속시간 3초 전에 리폼 클럽에 들어가고, 마침내 그는 내기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게 됩니다.

주인공 포그는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치밀함과 정확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이를 타개하는 담대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80일간의 세계 일주’란 목표는 그런 포그조차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론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도처에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도사리는 여행길에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단 3초의 차이로 성취해내게 이끕니다.

이 작품은 겉으로만 보면 돈이 여행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내기로 시작된 세계 일주 여행이 위기 때마다 돈에 의해 난관이 돌파되다가 마침내 포그가 내기에 이김으로써 여행 중에 썼던 막대한 돈을 되찾게 되는 단순한 내용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실 여기엔 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본질적 가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유럽인들이 가진 사고방식의 한계 때문에 곳곳에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흥미와 긴장감만큼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홀로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증명한 포그씨의 용기와 추진력은 큰 자극이 됩니다.

책을 통한 세계 일주가 훗날 내가 배낭 여행이나 세계 여행을 할 때 좋은 여행 길잡이가 되어주길 기대해봅니다.

 

‘명망 있는 신사‘가 이제 ’은행 강도‘ 신세로 전락했던 것이다. 경찰은 다른 회원들과 함께 개혁 클럽에 보관되어 있던 필리어스포그의 사진을 철저하게 살폈다. 그것은 경찰 수사 결과에서 밝혀진 은행 강도의 인상착의와 하나에서 열까지 똑같았다
- P52

"픽스씨, 그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우리 주인어른이 정말 당신이 쫓고 있는 강도라고 해도...저는 전혀 믿지 않지만... 난 그분을 위해 일하는 하인이고...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친절하고 너그러운 분인지는 내가 잘 압니다. 그러니 절대 그분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세상의 돈을 전부 다 준다고 해도요."
- P201

비록 겉으로는 냉정해보이지만 매일 온갖 정성을 다해 자신을 보살펴주는 포그씨에게 그녀는 정을 느끼고 있었다. 포그 씨에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른채 그저 감사의 마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그 씨에 대한 감정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 P294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서 이겼다. 그는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했다. 80일간 세계 일주를 위하여 온갖 이동 수단을 활용했다. 증기선, 기차, 마차, 배, 상선, 썰매, 코끼리까지. 이 괴짜 신사는 여행 내내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가 세계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 여행이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준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것을 제외하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계 일주에서 얻을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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