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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법정.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호 작가가 생전의 법정스님과 나눈 세 시간의 대담을 회상 형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스님의 입적 당시부터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 무렵 최인호 작가는 침샘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죠. 작가는 힘든 상황에도 스님과의 인연 때문에 빈소가 차려진 길상사로 향하고 그곳에서 스님의 영정을 친견하고 스님과의 인연과 길상사 요사채에서 있었던 세 시간에 걸친 대담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님은 기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지만, 맑은 정신이 되어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안타깝게도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스님 입적 삼 년 뒤 선종합니다. 지금은 비록 한때 우리 시대 청춘의 대명사였던 작가도 영면하였지만, 그들의 글과 정신은 늘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굳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시절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는 법 - P23
하찮은 꽃구경 같지만, 그처럼 우리 주위엔 기쁜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 혼자 "아, 좋다, 좋다" 소리를 가끔 하는데 행복이라고 표현하기도 쑥스럽습니다. - P44
친구지간이든 부부지간이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신의와 예절이지요.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의와 예절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까울수록 예절을 차려야 하는데 서로 무례하고 예절이 생략되어 버렸기 때문에 공동체 유대에도 균열이 간 것 아니겠습니까. - P60
우리가 허구한 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지만 과연 내 집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내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서로 할 말은 해야 하고, 또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하는 곳이 가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반대로 가고 있지요. 밖에서도 충분히 피곤했으니 집에서는 복잡한 얘기 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가정은 모든 것이 유예된 공간이 되어 버리고 말지요. - P63
가정은 우리 최후의 보루입니다. 가족은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 너무 억울한, 우리 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 P67
여전히 내게는 버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 내게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할 부분입니다. 소중히 지녀야 할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투명하고 평온한 마음 같은 것이지요. - P73
모든 사람이 남에게 보이는 자기 모습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보니 본래의 "나"가 상실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 P75
글 쓰다 보면 그런 일이 있지요. 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하면 됩니다. 사실과 진실은 조금 다르지요. 그런데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절절한 것입니다. 진실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고 자기들 일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 아니겠어요 진실에는 메아리가 잇어요 역사와 예술 작품이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입니다. - P87
옛날엔 먹을 갈며 생각을 정리하고 한 획 한 획 붓을 놀리며 책임 있는 글들을 썼는데 요즘 사람들은 손가락이 빨라서 그런지 무책임한 글을 많이 씁니다.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 P121
무엇을 갖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그 끝없는 야망은 분명히 병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것도 분명히 현대인의 병이죠.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 P125
현대인들은 사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자신의 게으름이나 어떤 논리에 의해서 제1순위의 가치를 7위쯤으로 가져다 놓는 건 아닐는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P128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에게 끝없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거들고 보살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학한 지식보다 훨씬 소중하지요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인 우주로 확대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 P136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큰 죄도 없습니다. 참으로 큰 죄이죠.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니까요. 느림이란, 여유란 시간의 낭비를 뜻하지는 않을 겁니다. 느림이란 "여유 있게, 침착하게" 이되 시간은 허비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때는 분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P148
"아, 나도 누구에게 뭔가 주고 싶으면 살아 있을 때 줘야겠구나, 죽은 다음에는 내가 가졌던 물건들도 동시에 빛을 잃고 생명력을 잃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152
사랑은 물질뿐 아니라 시간과 노력도 나누게 합니다. 그런 뜻에서 나눔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너와 나"의 관계 회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 P156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충실하다면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미뤄 둔 채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것은 별로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 P167
죽음이란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대신 내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과제이지요. 현재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 또 이것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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