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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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 사회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과하게 부끄러워합니다. 저자는 부끄러움을 회피하고, 사과하기보다 변명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탓하기 바쁜 사람들이 상식의 기준을 비틀어가며 타인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으로 자존감을 부여잡으려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속에서 어떻게 해야 끌려들어가지 않고 자기를 보호할 줄 아는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part 1에서는 괜찮지 않은 일에 대해 소제목을 달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구조적 불평등을 보지 못하게 하는 긍정성의 과잉과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기 아집에 빠져 자기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꼰대기질을 비판한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특히 꼰대는 나이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젊은 꼰대 또한 꼰대질에서는 늙은 꼰대 못지 않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p56-57 특정한 권력관계를 악용해 상대의 모든 걸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꼰대다. 나이가 젊다고 다 꼰대가 아닐 이유도 없다. 자유라는 명목으로 주변의 타당한 비판에 귀를 닫거나 개성이라는 달짝지근한 단어를 남발하며 자신의 기준 ‘외’의 것을 다 구린 것으로 바라본다면 그 사람이 꼰대다.

 

part2에서는 앞장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않아야할 항목에 대해 과하게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강박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혼족 강박, 평범함,긍정성,몸관리,인맥,소비,중립 강박 등 강박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p135 독해져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간 예외적 개인들은 정확히는 ‘독함’만이 자신의 상황을 현재에 이르게 했다고 철저하게 믿는 개인들은 이런 이야기에 현혹당하는 데 익숙한 타인을 만나 삶의 비법을 전수하기 바쁘다. 독해지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아야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원래 엉망인 세상은 더 엉망이 된다.

p148 혼자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홀로‘가 아니라 사회적 관습을 잠시라도 거부하는 ’적극적 자아‘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소극적 인물이 아니라 평범을 가장한 일상의 폭력이 연속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단절한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함께 밥먹고 술마시면 피곤하기 때문이다...’함께‘가 되면 관성적으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싫어서다. 내세울 것 많은 사람들의 무용담에 고개를 과하게 끄덕거리는 청중 역할을 피하고플 뿐이다.

p178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말은 인간 관계가 수학공식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서로 간의 갈등은 당연지사며 인맥이 넓든 좁든 각자만의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타인과의 관계가 ’많고 원만할수록‘좋은 사람으로 규정된다.

 

part 3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요지는 ‘내가 괜찮다고 여기던 것들이 남들에게는 괜찮지 않았다.’인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자가 본문에서 다뤘던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노키즈존, 맘충, 여성 혐오, 성차별 등. 대부분의 문제가 ‘배려’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키즈존은 유아나 어린이들과 그의 부모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맘충은 아이를 너무 우선시 하다 보니 다른 부분의 배려를 버린 경우이고, 여성 혐오와 성차별은 맥락이 다소 다르나 기본적으로는 같은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배려가 부족한 사회에 살다 보니 각종 차별이 일어나고, 부끄러움을 등한시 하고, 타인의 희생 없이는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 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왕따를 예방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저자는 ‘빌어먹을 사회를 만든 건 우리’라고 말합니다.

p208 행동의 기준을 과거를 귀감삼아 마련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내 삶의 방향이 그릇됨을 직시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만이 대안이다.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이것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이다.

p220 성공해야지만 살아남는 문제 많은 사회에서 실패해도 죽지 않을 상식적인 사회로의 객관적인 변화는 이를 희망하는 나와 너의 구체적인 실천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게 세상이 달라지면 우리들은 대단한 결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존엄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사회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옛 세대들을 지적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야말로 바뀌어야 하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현 사회를 만든 만큼 변화를 줄 수 있는 존재 또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들 모든 차별을 없앨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사회가 될 거라고 감히 추측해 봅니다.

 

p37 딱 한걸음만 떨어져 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과 행동을 타인을 향해 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혐오다. 그럴만한 이유를 상대를 가려서 주장하는 사람, 혹시 당신 아닌가?

p40 간절해도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흑인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입니다.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은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성공한 ‘예외’에 주목하여 인생은 개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결론 내지 않습니다.

p43 강자의 문화를 옹호하고 직장의 꽃이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꺾여 버리는 그런 꽃으로서 여자는 존재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두꺼운 유리천장 아래서 여성들은 ‘평범한 삶을 우연에 맡겨야 하는’약자다.

p62 한국은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그냥 많다. 그냥 많다는 말은 사회의 시스템이 차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살다보면 누구나 차별에 둔감한 사람이 된다.

p84 통계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그저 여성의 '근속기간, 노동시간'이 짧으니 급여가 낮을 뿐이다. 문정희의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한 구절처럼 배울 만큼 배운 여성들이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내 아내도 결혼한다고 경력단절이요, 애를 키워야 하니 노동시간이 길 수가 없었다. 이런 커리어로는 무슨 일을 악착같이 하더라도 급여가 낮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높으니 전업주부에 충실한 게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차라리 나은 역설이 발생한다.

p94 성실해야만 하는 그 절박한 상황이 겹쳐진 사람일수록 투자한 대가를 얻기란 쉽지 않다. 나는 첫 차를 탔기에 논문을 쓸 시간이 없었고 그러니 대학 안에서 제때 월급 받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출퇴근에만 7시간을 허비하는 일정이 일주일에 꼬박꼬박 한 번씩 반복되는데 무슨 연구를 한단 말인가.

p102 내가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지만 노력할 의지가 북돋아지고 그래야 사회는 정체되지 않는다. 건강한 ‘우리’가 많아야 사회는 발전하며 ‘내’가 그 혜택을 받는 건 당연하다.

p113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 하는 폭력도 때론 필요하다는, 혐오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예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성실, 노력같은 단어로 우롱하고 자기 권리랍시고 타인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만연하는 이유는 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사는 사람만 바보가 될 뿐.

p126 남자는 군대 갔다 왔으니 극한의 일을 경험한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배우고 도전정신은 물론 주어진 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갖춘다. 기업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리더십’, ‘열정’, ‘구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러니까, 그게 결국은 남녀차별이 된 셈이다

p153-154 내세울 것이 있다는 것은 타인을 괴롭혔다는 징표일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사람들 중 가족의 희생이 없었던 경우가 있을까? 미장원에서 잡지책 몇 장만 넘기면 ‘내가 일에만 전념하도록 뒷바라지를 해 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삶이 ‘마이너스’되는 걸 당연 삼아 자신의 ‘플러스’ 인생을 마련하는 우스운 태도도 ‘결정적인 배경’을 애써 감추는 경우에 비하면 그나마 봐줄 만하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들은 죄다 ‘혼자서’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화자찬하면 ‘배경이 달라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을 기만한다.

p169 냉정하게 말해 초등학생까지 화장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점이 과거보다 빨라진 시대의 결과물이다.

p215 하지만 이런 비판이 불편하다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이들은 내게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한 것을 폄훼 말라!”면서 사회구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부정하고,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려고 하느냐?”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개인의 효과적인 실천 방안을 거부한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만의 레퍼토리가 아니다.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판에 박힌 질문을 던진다.

p230 대한민국 곳곳에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를 대비하여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강의가 성행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선 알파고 돌풍과 비례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주는 복지 정책인 ‘기본 소득’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일자리를 잃어 자존감을 상실할 다수에 대한 걱정을 함께하기에 가능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길 원하는가? 그럼 자신감 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p248 공감의 시작은 자신이 타인의 상황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 사람에게 “어쩌다가 그랬어!”라고 묻는 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 거다. “내가 감히 너의 슬픔을 알 순 없겠지만, 노력할게” 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성찰적 사람이 되는게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p251 한국사람 중 집단주의의 단점이 장점보다 훨씬 많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상적인 개인주의자라 할지라도 한국에서는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는 핀잔을 들으며 비정상적인 사람이나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p272-273 그래도 ‘어떻게’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확실한 방법을 소개한다. 가장 자본주의에 어울리는 방법인데, 객관적으로 정치 영역에 돈을 지출해야 한다. … ‘부끄러움’의 본질을 망각시키는 현실이 싫다면 그 반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지향하는 단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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