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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 마을에 몰아칠 때 인간들은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합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마을에 있는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서 섬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무슨 짓이던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살아남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알제리의 오랑시에는 페스트가 만연하자 오랑시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됩니다. 모든 것이 봉쇄된 한계 상황 속에서 역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도시는 커다란 혼란에 빠집니다. 의사 리유와 지식인 타루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싸움을 벌이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의사라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타루는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합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이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수송되어 질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는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파리에 아내를 남겨 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시에 들렀던 신문사 특파원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리유와 함께 페스트퇴치작업을 벌입니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생각하고 기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페스트에 감염되어 사망합니다. 그리고 타루도 페스트에 희생됩니다. 그리고, 리유는 그의 아내도 병사했다는 전부를 받습니다.
드디어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페스트는 완전히 퇴치되고 오랑시는 해방의 기쁨에 휩싸입니다. 열차는 다시 들어오고 랑베르의 아내도 오랑시를 찾아와 그와 플랫폼에서 감격의 재회를 합니다.
소설 속에는 의사, 공무원, 저널리스트, 죄수, 종교인 등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한다. 페스트라는 질병 앞에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표출합니다. 의사 리유처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수백 마리의 쥐가 이상한 증상을 보이며 떼죽음을 당하며 죽어나가는 현상을 보고서도 오직 수거하여 소각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낙관하다가 페스트를 초기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공무원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당국의 안이한 대처에 분노하며 항의하는 리유로 인해 시당국은 페스트로 확정을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방역대책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마치 2015년 메르스 발생당시 초기 대한민국 방역당국의 현상을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반면, 전염병의 와중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도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 과정을 극복하고 타인을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것 또한 인간군상의 한 면이라는 것을 작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이나 언론의 반응, 시민들의 피해 등을 살펴볼 때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다를바가 없어 보였고, 페스트로 인한 사람들의 절망이나 자포자기, 무질서와 타락한 모습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 또한 잃지 않았습니다.
고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메시지가 주는 감동과 공감이 있는 듯 합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삶은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부조리를 응시하여 인식하고, 이겨내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p165-166 그러나 서사시 같은 어투나 수상식의 연설 같은 어투 때문에 의사는 매번 짜증이 났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은 인간들이 자신을 인류와 연결해주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상투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예를 들어 그랑이 매일같이 기울이고 있는 작은 노력들을 드러낼 수 없기에, 페스트 속에서 그랑 같은 사람이 의미하는 바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따금 자정에 이제 인적이 끊긴 도시를 둘러싼 깊은 침묵 속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여볼까 하고 자리에 누우면서 의사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돌려보곤 했다. 그러면 세계의 저 끝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 질러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서투르게나마 연대의식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랑! 오랑!’ 그러나 그 음성은 연대의식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을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후원하는 목소리가 바다를 건너와도 소용없고, 리외가 주의를 기울여봐도 소용없었다. 목소리가 곧 웅변조로 높아지면서, 그랑과 그 웅변가를 서로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본질적인 거리가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오랑! 오랑! 천만의 말씀.’ 리외는 생각했다.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는 거야.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그런데 그들은 너무 멀리 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