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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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사건을 다루는 시각도 무거운 작품이라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종교, 개인의 양심, 국가관 등이 서로 맞물려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사를 지낸 이 대위는 육군특무대로 평양에 파견되어, 육군본부 파견대 정보국장 장 대령의 휘하에서 근무합니다. 그러던 중 6.25 당시 12명의 목사가 평양에서 순교한 사실을 조사하게 됩니다. 전쟁 직전 평양에서 14명의 목사가 체포되었는데 그중 12명은 총살당했고, 살아남은 자는 단 2명뿐이었습니다. 1950년 11월, 국군의 평양 입성 후 육군본부 정보처 평양 파견대의 장 대령은 이대위와 함께 순교자들에 관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나(이대위)에게 맡겨진 임무는 생존자 중 한 명인 신 목사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목사는 그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며 대답을 회피합니다.

이와는 달리, 장 대령은 공산당에게 희생당한 12명의 순교자를 애국적인 관점에서 추모식을 거행하여 평양의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정신적 승리를 알려주려고 합니다. 목사 살해 사건을 정치선전의 목적으로 이용하려던 장대령은 살해된 12명의 목사들을 ‘순교자’로 규정하고 추도예배를 계획하는데, 신목사가 자신이 처형현장에 있었다고 발표하면서 사건관련자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신목사와 한목사는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이 대위는 이 두 명을 찾아가 순교자들의 최후의 모습과 그 진실성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 대위의 친구인 박대위는 그의 아버지가 지나치게 신앙에 충실한 독선적 광신자였고 사실상 두 부자는 의절한 상태로 서로 떨어져 지냈음이 밝혀집니다. 박대위는 12명의 순교자 속에 그의 아버지가 들어있음을 듣고도 존경심보다는 광신적인 신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신목사의 편지에 박목사가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과 자신이 추구하는 신앙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말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최후로 처형되면서 ‘기도할 수 없다’고 말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고뇌를 깨닫고 박대위는 아버지와 정신적 화해를 합니다.

한편, 박목사의 신앙심에 감동하고 따르던 한 목사는 마지막 처형장에서 박목사가 기도를 거부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자가 되어 사형은 면하였지만 폐인이 됩니다. 순교자들에 관한 진실과 목회자로서 사명감 사이에 갈등하던 신목사는 마침내 사실을 밝힙니다. 12명의 처형을 목격한 공산군 정 소좌가 체포되면서 목사들이 비굴하게 죽었으나 오직 신목사만이 당당하게 저항하여 오히려 죽음을 면했고 오히려 죽임을 당한 목사들이 배반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군더더기없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깊은 뜻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난해해 하나같이 이야기들이 깊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로 나온듯한 깊이와 무게로 점철되어 있어 읽어내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들과는 달리, 신앙적인 구원, 인간의 고통과 양심의 문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이중성 등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신목사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마치 저에게

‘순교란 무엇인가?’

‘신앙때문에 혹은 신앙을 위해 반드시 죽어야만 순교인가?’

‘누가 진정한 순교자인가?’

‘신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대해 계속 질문하는 듯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질문이 머릿속에 맴도는 듯합니다.

한국인으로서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에 비유되며 노벨상 수상 후보로까지 올라가게 만든 작품으로,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 P37

그는 열두 명의 순교를 미화하기 위해 큰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작은 거짓말을 하기로 작정했던 거야. 아니면 열두 명 중 몇몇의 부끄러운 허약함과 배반을 폭로하느니보다는 작은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게지 - P145

자네 말대로 순교자를 날조해내는 일이 자네의 신께서 반드시 원치 않는 일이란 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그 목사들의 신성한 복장 밑에 더러운 속옷이 숨겨져 있었다고 폭로하기보다는 열두 명 순교자들의 영광을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 자네들 기독교에 더 큰 봉사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 - P149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 P152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 P255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 P257

그 때 난 속으로 다짐했소. 앞으로 다시는 나의 그 잘난 진리. 남들이 모르는 내 진실, 하나님의 종에게 숨겨진 그 무서운 진실을 결코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거요. - P263

나는 인간의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그렇소. 당신이 환상이라 부른 그 영원한 희망 말이오.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하긴 이게 사실이지만)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요. 하늘나라 하나님의 왕국에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 P271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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