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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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란 미국사회에서 백인노동계층을 일컫는 말로 히스페닉과 흑인계층 보다 더 낮게 취급받는 시골 촌뜨기, 또는 백인쓰레기라고도 불립니다. 이 책은 한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환경이 한 인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밴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 바탕으로 적어내려갔습니다. 산업고도화 속 가난이 되물림 되는 사회, 지긋지긋한 가정폭력과 가족의 무책임한 행동과 배신 그리고 미래 삶의 가이드가 되어줄 롤모델의 부재등 암울한 현실만 있는 힐빌리, 그 안에 밴스가 있었습니다.

밴스의 무기력했던 유년기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등장합니다.

강하고 직설적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다혈질의 힐빌리 할모와 할보, 밴스를 옆에서 사랑으로 지켜낸 두 분. 남자친구가 셀 수 없이 바뀌고 간호사이지만 마약쟁이인 철부지 엄마 그리고 엄마대신 밴스를 지켜주는 린지누나. 경멸대상이 되어도 신경쓰지 않는 복지여왕들. 대마초를 화단에 키우는 엄마의 남편후보 등등

엄마가 나오는 부분은 불안과 절망, 실망 그리고 공포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충분한 애정을 받기에도 모자른 아이가 폭언과 폭행과 불안한 가정 앞에서 무기력하게 휘둘리고 상처받는 모습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엄마의 개과천선 같은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어도, 다행히 밴스는 할모 같은 최소한 주변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학습된 힐빌리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친구 그리고 연인을 만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정신적 빈곤을 벗어나 결국 신분상승을 이뤄냅니다.

마지막 부분의 밴스의 괴물 꿈 얘기에서 두렵고 피하고 싶은 괴물의 존재가 어느 순간 밴스 본인이 괴물이 되어 강아지를 뒤쫓아 목졸라 죽이려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밴스이지만 상상조차 못할 큰 고통을 받았는지를 짐작이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며 신분상승에 성공한 밴스가 관계 트라우마가 전혀 해소 되지 않은 채 불안감을 안고 사는 시한 폭탄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힘없고 슬픈 눈빛을 보내는 강아지, 무기력했던 본인 스스로에게 화가 났으나, 화를 참아내고 안아주며 본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퇴적물같이 쌓인 슬픔,분노,감정이 서서히 쓸려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한사람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믿음과 사랑을 줄 수 있는 지지자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와 가족에게서, 청소년기에는 친구와 학교에서 , 다 큰 성인은 회사와 다양한 경로로부터 지지자를 만난다면 최소한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비록 부모의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을 일어서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믿음과 사랑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동,청소년에게 사회적 복지시설, 피난처보다 가족,이웃,친지들의 사랑이 가장 큰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중서부 산업 지대가 쇠퇴하고 백인 노동 계층의 경제 축이 무너지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제조업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데 대학 학위 없이는 중산층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염려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걱정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은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나쁜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회적 부패에 대항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더 조장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다. --- p.29~30

 

진실은 냉혹하다. 그중에서도 산골 사람들에게 가장 냉혹한 진실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잭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냥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약물 중독자도 널려 있고,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잭슨의 경치는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환경 폐기물과 마을 곳곳에 널린 쓰레기가 그 아름다움을 가린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가 푸드스탬프에 의지한 채 살아가며 땀 흘리는 노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잭슨은 블랜턴가 남자들만큼이나 모순투성이다.--- p.54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내가 내뱉은 어떤 말이 엄마의 화를 돋웠다. 그러자 엄마는 시속 160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속도로 달리며 같이 죽자고 했다. 나는 혹시 안전벨트 두 개를 한꺼번에 매면 사고가 나더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뒷자리로 얼른 뛰어 넘어갔다. 그런 내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엄마는 날 두들겨 팰 작정으로 차를 세웠다. 그때 나는 차에서 뛰쳐나와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차에서 내린 곳은 외딴 시골 마을이었고, 내리자마자 나는 너른 풀밭을 가로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속도를 낼 때마다 키 큰 풀들이 내 발목을 철썩철썩 때렸다. --- p.137

 

할모네 집으로 들어가기 전의 내 삶을 돌이켜보자. 3학년을 다니던 도중에 우리 가족은 밥 아저씨가 살던 프레블 카운티로 이사했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 프레블 카운티를 떠나 미들타운 매킨리가 200번지로 이사했다. 5학년을 마칠 때쯤 매킨리가 300번지로 이사했고, 그 무렵 칩 아저씨가 나타났다. 6학년을 마칠 즈음 칩 아저씨는 스티브 아저씨로 대체됐다. 7학년이 끝날 때는 맷 아저씨가 나타났고, 엄마는 맷 아저씨의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8학년을 마쳤을 때 엄마는 내게 데이턴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친아빠의 집을 잠깐 거친 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9학년을 마치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켄 아저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엄마는 마약을 했고, 가정 폭력으로 재판을 받았으며, 할보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 당시 상황을 쓰기 위해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불안이 밀려든다. --- p.250~251

 

공부 욕심이 있는 친구들을 사귀었던 건 전부 할모 덕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또래의 동네 아이들 대부분은 이미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모는 내가 그런 부류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대개 어떤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는 어른의 지시를 무시하지만, 그건 지시를 내리는 어른이 보니 밴스 여사 같지 않아서일 거다. 할모는 만약 내가 금지 목록에 있는 친구와 놀고 있는 꼴을 본다면, 그 즉시 친구를 차로 받아버리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서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할미가 그랬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 p.256

 

할모의 보험료를 대신 납부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할모의 수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만족감이 느껴졌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에는 누군가를 도울 만한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어떤 격려 연설이나 강연에서도 보살핌을 받기만 하다가 누군가를 보살피게 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 깨우치고 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 p.276~277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p292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할 무렵에, 나는 해병대에서 익힌 불요불굴의 의지가 몸에 배어 있었다. 빠듯한 일과였으나, 열여덟 살 때는 무섭기만 했던 독립생활의 모든 면이 이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할모와 함께 학자금 지원 신청서를 훑어보며 ‘부모/후견인’란에 엄마 이름을 써야 할지 할모 이름을 써야 할지 몰라서 골머리를 앓던 나였다. 또 어떻게든 내 법적 아버지인 밥 하멜의 재무 정보를 입수해서 제출하지 않았다가는 사기죄가 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던 나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 p.296~297

 

내 주변에는 건실한 어른으로 성장한 친구들도 있고, 미들타운에 감도는 끔찍한 유혹의 희생자가 되어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들도 있다. 본인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누구는 성공한 어른이 됐고, 누구는 실패자가 됐다. 그런데도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다’라고 외치는 우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 p.318

 

면접이 진행된 일주일 내내 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변호사들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학부를 마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열 군데도 넘는 곳에 지원서를 보냈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예일 법대를 겨우 1년 다녔다는 이유로 동기들과 나는 연방 대법원에서 변론을 하던 사람들에게서 여섯 자리 숫자에 달하는 금액의 연봉을 제안받고 있었다. --- p.343~344

 

에이미 추아 교수님이 내게 저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일러준 게 그 무렵이었다. “판사나 교수가 될 거라면 편집위원 경력이 유용해요. 그게 아니면 시간 낭비일 뿐이고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일단 도전해보세요.” 100만 달러짜리 조언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 없었으므로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도전하기로 했다. 1학년 때는 탈락했으나, 2학년 때는 목표를 달성해 권위 있는 간행물의 편집위원이 됐다. 요점은 내 글이 실렸느냐 실리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교수님의 도움 덕분에 정보 격차를 해소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349

 

힐빌리를 하나같이 군침이나 흘리는 바보 천치들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대해 할모는 늘 분개했다. 그러나 내가 출세하는 데 몹시 무지했다는 게 현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걸 모르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 십상이다. 나는 학부 시절에 면접 복장으로 전혀 적절하지 않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복 바지를 입고 일자리를 구하려다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로스쿨에서도 매번 나를 도와준 이들이 없었더라면 학부 때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 p.356~357

 

나는 그들이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할 공공정책이나 획기적인 정부 프로그램을 바란다는 걸 잘 알고 있다.그러나 가족과 신념,문화와 관련한 문제들은 루빅큐브 같은 게 아니므로 그런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369

나는 예일 로스쿨 졸업생이고 명성 있는 『예일 로 저널』의 전 편집자이며 변호사 협회의 건실한 회원이었다. 두 달 전 어느 맑은 날에 켄터키 동부에서 우샤와 결혼식도 올렸다. 성을 밴스로 바꾸면서 마침내 나도 가족들과 같은 성을 갖게 됐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청운의 꿈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냈다. 최소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신분 상승은 결코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떠난 세상은 자꾸만 나를 다시 잡아끌려고 하게 마련이다. 엄마가 다시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p.378~379

 

나는 우리 힐빌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머니를 모욕한 사람을 찾아가 전기톱을 들이대는 사람들이다. 또 우리는 여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을 모욕한 놈의 입을 벌려 면 속옷을 욱여넣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는 브라이언 같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만큼 강한가? 나 같은 아이들이 세상을 등지기보다 맞서 일어서도록 힘을 실어줄 교회를 세울 만큼 강한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만큼 강한가? 공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4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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