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 당신은 무엇을, 왜 먹고 있는가?
크리스토퍼 그린슬레이트 & 케리 레너드 지음, 김난령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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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는 않지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만큼 먹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먹고 그것을 에너지로 바꾼다. 물론 먹는 것에는 이러한 기초적인 기능 외에, 심리적 만족감이나 사교적인 측면 등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다. 아직도 제3세계에는 식량이 부족한 국가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에는 식량이 넘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비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일까?  이 책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원제 On a Dollar a Day)>의저자인 크리스토퍼와 케리는 고등학교 교사 부부로, 치솟는 물가와 엄청난 식료품 가격을 보고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 프로젝트에 한달간 도전한다. 그들이 정한 규칙은, 하루에 소비되는 총 음식의 가격이 1인당 1달러를 넘지 않도록 할 것, 공짜 음식이나 기부 음식(친척, 친구 등이 선물로 주는 것도 포함)은 지역 주민 모두에게 주는 것이 아닌 이상 피할 것,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면 그 사람의 몫을 따로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를 위한 식비에서 나눠서 사용할 것 등 지키기 수월치 않은 것들이다. 그들은 또한 블로그에 프로젝트를 연재해서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들이 낳은 결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처음에 그들은 식비를 줄이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본래의 목표보다 훨씬 가치있는 결실을 얻게 된다. '식품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깨우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고과당 식품을 섭취해왔는지에 놀라고, 판매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이 화학물질 투성이라는 것에 역시 놀란다. 그들은 프로젝트 중 종종 다투기도 하고('쿠키 사건'은 정말이지 힘들었을 것이다.) 식사의 양이 부족해서 체중까지 꽤 줄었으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확실히 1달러를 가지고는 배부르게 먹기는 커녕 간신히 허기만 면할 정도의 식사밖에 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하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아침에는 소량의 오트밀 죽을 먹었으며 점심이나 저녁 메뉴 역시 콩과 쌀로 만든 적은 양의 식사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다가 기분전환으로 땅콩버터 약간을 맛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이것도 하루 식비에서 몇센트라도 남을 때의 일이다). 그들은 이러한 '가난한 식사'를 통해서, 그간의 식생활의 문제를 성찰하게 된다. 

그러나 이 '1달러로 먹고 살기' 프로젝트는 식비 절감 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 영양학적으로 무리 없는 식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번 프로젝트로 '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SNAP : 미국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책정한 지원금)'으로 한 달을 지내기로 한다. 그들이 실제로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푸드 스탬프'를 받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 SNAP 지급액을 가족 수에 맞춰 산출하고 저소득층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돈을 식비에 포함시켜 하루에 1인당 약 4.31달러를 식비로 사용하기로 한다. 더불어 농무부에서 권장하는 '알뜰식단계획'에 가깝게 식단을 구성하는 것 역시 계획에 추가했다. 물론 하루에 1달러를 식비로 쓰는 것보다는 이 쪽이 영양학적으로도, 또 정신건강에도 좋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알뜰식단계획 역시 어이없는 탁상공론적인 식단임을 그들은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소박한 식사를 직접 해먹지 않고 건강에 좋지 않은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는 포만감이라도 주는데, 유기농 야채나 과일 같은 것은 몸에는 좋지만 아무리 먹어봤자 배부른 느낌은 없다. 그러므로 적은 돈으로 배부른 것을 찾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오히려 저소득층에 속하는 아이들이 비만 비율이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저소득층 부모는 대부분 장시간의 노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단을 챙겨줄 수가 없다. 결국 아이들은 패스트푸드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고,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보다 살이 더 찌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식생활과 건강까지도 양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빈부 차에 따라 나뉜 지역에 형성된 상권이 다르기 때문에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선택권 역시 달라진다는 사실에서 '식품 인종차별(food apartheid)'을 고민한다. 아무래도 유색인종이 주로 사는 빈곤한 지역에는 음식을 싼 값으로 살 수 있는 대형 할인점 같은 것이 입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가까운 예를 들면, 한국에서도 먹거리를 싸게 살 수 있는 대형 마트는 가난한 동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 뉴스에서 본 것처럼 정말로 빈곤한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있지 않고 주거지 역시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멀리 대형마트까지 장을 보러 갈 수도 없고, 결국 집 근처 조그만 가게에서 더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돈을 더 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먹는 방식에 도전한다. 물론 이전처럼 단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그들이 좋아하는 타코벨에서 외식을 자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채소를 텃밭에서 재배하고 지역의 공동체에 가입하여 갓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한다. 계산해 본 결과 하루에 약 2.36달러면 경제적으로도 무리를 주지 않으며 영양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고기와 생선이 빠지고 콩으로 만든 고기 대용식을 사용하는데, 실제로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경우 굳이 대용식을 쓸 이유는 없으므로 고기와 생선이 적절하게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식생활을 하기 위하여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그들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가장 건강하고 적절한 식단을 도출해냈고 덤으로 우리 모두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하루에 1달러로 먹고 살기'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될 것 같아서 그만둬 버렸다. 사실 나는 수도승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에, 먹을 것에 욕심을 내거나 더 좋은 것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나의 식생활을 보면 청빈과는 좀 거리가 있다. 물론 커피 한잔 값이 가난한 사람의 한끼 밥값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테이크아웃 커피나 조각 치즈케익 같은것을 사먹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있지만, 충분한 양의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있으며 야채나 과일 같은 것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밤에 출출하면 언제든지 준비해 둔 과자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청빈의 관점에서, 또 건강을 위한 관점에서 나는 필요한 것보다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보게 되었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와 삶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외에도 음식과 식생활, 빈곤층과 복지제도, 윤리적 소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탁상공론으로 쓰여진 것이 아닌, 실제로 겪어보며 쓴 책이라서인지 여러 가지로 공감이 많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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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 영어 학습자가 알아야 할 영문법의 모든 것, 2nd Edition
최인철 지음 / 사람i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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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이후로 영어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는 토플을 봐야 했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게 한 것 같은데, 막상 대학 이후로는 별로 의욕이 없었다. 일본어를 영어보다 훨씬 좋아했기도 하고 영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언어 제국주의적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에 아주 오랫만에 토익 시험을 보게 되고 처음 본 시험 점수는 875점, 첫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좀 아쉬운 점수라 900점을 맞기 위해 몇 번 더 시험을 봤고, 지난달에 응시한 토익에서 900점을 넘겼다. 그런데 내가 주로 점수가 깎이는 부분은 청해보다도 독해인데, 그 이유가 아마 영어공부를 차근차근 하지 않고 야매(?)로 해서가 아닐까 추측된다. 그렇다고 해커스 토익같은 기본서를 보기도 귀찮고, 뭔가 문법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데 우연히 읽게 된 이 책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2nd edition>은 그동안 간과하고 지나갔던 영문법을 확실하게 챙겨주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영어 문법 책들은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 많아서(성문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요즘에도 이 책 많이들 보나?) 용어도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고 또 정작 네이티브들은 잘 모르는 1~5형식 같은, 실전 회화에 별로 쓸모도 없는 어색한 문장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계적인 학습을 지양하고 살아있는 표현들을 통하여 그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문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구문편(Sentential Structure), 품사편(Part of Speech), EFL 이중언어 모델(Dual Language Model), 어휘편(Vocabulary), 발음편(Pronunciation)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인 구성은 다양한 예문과 함께 설명이 나와 있고 한 챕터가 끝나면 연습문제가 들어 있어서 공부한 내용을 확인해 보기에 좋다. 연습문제의 수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것이 약간은 아쉽지만, 문제집으로 나온 책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한 회화체, 구어 표현들은 대부분의 진지한(!) 문법책들에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부딪치며 익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관용적인 표현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고 있고 미국의 고유한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문화의 차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지 않도록 친절히 알려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또한 영국식 영어를 선호하는 입장으로서, 발음이나 표현 등이 미국식과 영국식이 서로 다를 때 나란히 병기해주는 서비스 역시 훌륭하다. 또한 이중언어 모델을 다룬 챕터에서 제시된 구문, 표현들을 익혀서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코퍼스(Corpus, 이 단어를 나는 국어정보학 시간에 처음 접했다)는 꽤 도움이 될 것 같고 어휘편 역시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지겹지 않게 볼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언어학이나 영어학에서 주로 쓰이는 학술적인 용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고 본문 속에 잘 녹아들어간 느낌이 든다. 이 책의 독자를 학생들로 한정한 것이 아닌, 영문학 전공자나 영어과 교사들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니 거의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라서 짧은 시간 안에 후다닥 보기는 어려울 듯 하지만, 약간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앞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공부해 나가면 괜찮을 것 같다. 중급자 이상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난이도로, 토익 등의 시험 대비는 물론 영어의 탄탄한 기본기를 잡는데에 꽤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토익 900 넘긴걸로 끝내지 않고 930점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 또 텝스 등의 다른 영어 시험에도 도전하기 위해 이 책으로 차근차근 공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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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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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9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0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평화 발자국 7
임소희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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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민족의식이 희박한 편이다. 내 자신이 한국인의 특성들 중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 못해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오히려 겉모습이나 식성, 취향, 사고방식 등은 일본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재일동포적인 특성을 꽤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일동포들 역시 혈통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고 사고방식 역시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자연히 재일동포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재일동포문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수많은 재일동포 작가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이 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읽고 내심 놀랐다. 책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리정애는 오사카 출신 재일동포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총련 계열이다. 그는 굉장히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본학교에 다녔지만 대학은 조총련이 세운 조선대학교에 편입해서 다녔으며 한국어도 꽤 능숙하다. 이상형의 남성도 바지저고리와 수염, 상투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마치 사극에서 나올듯한!) 그리고 그의 국적은 '조선적'이다. 일본 내의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한국 국적과 일본 국적, 그리고 조선적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일본은 북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조선적은 북한 국적이 아니라, 분단되기 전의 '조선'국적이다. 그들은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여권도 없고 외국에 갈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잠재적인 테러집단으로 여겨져서 직업을 선택할 때도, 일상 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수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추세이고, 조선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총련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일동포들은 항상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소수집단으로서의 차별을 받는가 하면, 한국으로 가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재미교포 등과 달리, 재일동포라는 집단은 자신이 원해서 도일한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 때의 징용이나 생활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택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리정애도 한국의 어학당에서, 하숙집에서, 여기저기에서 그러한 '내부로부터의 차별'을 경험하곤 했다. "'우리나라'에 태어나 우리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마치 나만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너무나 부럽다. (중략) 하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 왔다." 라고 그는 슬프게 말한다. 나같이 민족의식이 희박한 사람도 외국에 나갈 때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나가며, 한국에서 제공하는 교육, 의료, 그 외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으며 모국어는 당연히 한국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리정애는 일본 남성보다는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데, 조선 국적을 가지고는 한국 국적의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국적을 바꾸라는 것은 양가 조부모들을 버리라는 것이고 자신을 참다운 조선 사람으로 키워준 조국을 버리라는 것이니, 내 존재를 버리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조국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연모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아닐지 추측한다.  

하지만 8.15 민족대회에 참가해서 북조선 동포들을 배웅하며 통일기를 흔들고, 무려 '공화국 기념 배지'를 달기도 하며, 북조선 깃발을 방 안에다 걸어두는 모습은 솔직히 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북조선은 독재국가인데다가 비인간적이고 낙후된 나라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북조선에 대한 것은 예외인 듯 하다. 확실히 리정애는 총련계 재일동포로서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참 의아했던 것이 그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북조선 출신이 아닌 제주도 출신이고(재일동포 중에 제주도 출신이 참 많다. 이는 한국의 아픈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면 북조선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인데 왜 그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조선에서 그에게 보여준 환대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포용에 근거한다. 일본에서 조대에 다닐 때, 선후배들이 따뜻하게 자신을 맞아 주었으며 한국어를 배우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도 북조선의 안내원들이 재일동포인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운 반응을 보여서 눈물이 핑 돌아서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북조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포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화내며 함께 슬퍼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것을 밝히면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각해서 일본어로 말을 걸거나 해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나 또한 상대가 일본인이든 재일동포든, 무조건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들에게 일본어가 더 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일본어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재일동포 중에서도 소수자의 입장에 놓인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괴로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 내에서 북조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더 심했을 것이다. 북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북조선 사랑'에 크게 공감은 할 수 없지만, 그의 용기 있는 모습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신념의 자유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 이상 수많은 '리정애'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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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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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수많은 책을 구입하고, 빌리고, 읽고, 혹은 읽지 못하고 쌓아 두었다. 그 중 한 권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끌려서 구입했지만 다른 책들에 치여서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저쪽 서재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 로쟈의 두번째 책인 <책을 읽을 자유>가 나왔고,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양으로, 그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동안 책을 읽고 쓴 서평과 이야기들이다. 사실 나의 위치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비교적 정기적으로(한달에 약 10권 정도는 의무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는듯 하다), 또 자기 필명을 내걸고 글을 쓰고 있으니 프로일 것 같지만, 글 쓰는 수준을 보면 프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나에게, 이 책은 '프로 서평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수많은 책들의 서평이 30개의 챕터 아래 모여서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굳이 요약하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고, 꽤나 두꺼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이 책에 실린 로쟈의 리뷰는 모두 147편이며, 언급되는 책의 권수는 총 321권이다. 물론 길게 언급한 책들이 있고 지나가는 식으로 짧게 언급한 책들이 있지만, 제목만 보기에도 결코 쉽지 않을 책들을 깊게 읽고 이런 멋진 서평을 써낸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또한 저자의 독서와 사유는 꽤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그의 전공분야인 러시아문학은 물론이고, 책과 글쓰기에 관련된 책, 동서양의 고전, 사회과학, 경제학, 자연과학, 번역론, 문학, 예술, 철학 등 참으로 넓은 스펙트럼이 형성되어 있다. 저자는 그가 꽤 좋아하는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책들은 물론이고 가라타니 고진, 데리다, 라캉, 발터 벤야민, 도스토예프스키, 레닌, 앤디 워홀, 강상중, 밀란 쿤데라, 장정일 등 시대를 풍미하는 작가와 학자, 사상가들, 그리고 그들의 저서에 대해 꽤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10년 동안 저자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또 이렇게 많은 글을 썼는데 나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일종의 자책이었다. 또한 그가 읽은 책들은(적어도 이 책에 등장한 책들은) 상당히 깊이가 있고 분량도 많다. 책을 꽤나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차마 도전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책들이 많은데, 그는 이러한 책들을 읽고 번역이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원문 대조까지 한다! 영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정통한 듯 하다. 일본어로 쓰여진 텍스트도 한국어같이 편하게는 못 읽는 나로서는 그저 부럽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날카로운 오역 지적은 번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뜨끔할 것이다. 그에게 굉장히 동질감을 느낀 부분인 것이, 고등학교 때 어떤 일본 만화의 원본과 번역본을 보고 나서 번역 틀린 부분을 지적해서 출판사에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틀린 것은 바로잡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격이 닮은 듯 하여 내심 반가웠다. 또한 글 마감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이, '글 쓰는 이'가 짊어져야 하는 어떤 숙명을 이야기하는듯 하여 그 역시 참 인간적이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모든 글에는 마감기한이 있고, 나 역시 어떤 글을 쓰든 항상 마감기한을 생각하고 때로는 괴로워한다. 

또한 로쟈가 읽은 책들을 단순히 이 책에서만 약간 접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끌리는 책들을 위시리스트로 만들어서 하나씩 정복해 보는 것도 재미가 아닐까. 물론 저자가 꽤 깊이있는 독서를 하고 또 멋진 글로 그것들을 풀어냈지만, 이 책 한 권만 읽는다고 등장한 수백권의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책들은 그냥 과감히 빼버리고,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을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항상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로서는, 고민거리를 늘리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특히 지젝과 데리다의 책들을 읽고 이해하고 머릿속에 쌓고 싶다는, 지적 승부욕을 불태우게 된 것 역시 이 책을 읽고 얻은 수확이다. 자유로이, 그리고 제대로 책을 읽는 로쟈를 반의 반이라도 닮고 싶다. 나와 그의 지적 격차가 꽤 크지만, 아무래도 그가 나보다 살아온 세월이 좀더 길다는 것(초등학교 4학년 딸이 있다는 것을 토대로 그의 나이를 유추해볼 뿐이다)으로서 약간의 변명거리를 찾아 본다. 또한 이것은 사족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종이 재질이 참 부들부들 좋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종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의 촉감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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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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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20대들은 참 불행하다. 기껏 힘들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던 공부나 활동을 하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열중하지 않으면 안되고, 막대한 돈을 들여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 투표를 해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명문대가 아니면 '지잡대'라는 열등감 속에서 살게 된다. 운좋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한 조건에서 긴 노동시간과 적은 급여에 시달리며, 연애조차 순수한 것이 아닌, 계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20대들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스스로를 '잉여', '밥버러지'로 칭하는 자학적인 호칭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다. 왠지 억울하지 않은가?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러한 20대의 성장과 고군분투에 대해 연세대 원주캠퍼스, 덕성여대의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기록이다.  

지금까지 20대들을 어느 누구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368세대도 지금의 20대들을 비난한다. 우파들은 청년들이 높은 보수만 바라고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한다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반면 좌파들은, 지금의 청년들이 소비주의에 물들어 물질적인 풍요에만 신경을 쓸 뿐 세상의 불의에 대해 반응하지도 않고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20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비싼 돈 들여 대학까지 나왔는데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자기 시간도 없는 3D업종에서 평생을 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에만 집착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의 촛불집회도 주로 2~30대의 젊은 층이 주도하고 참여했으며, 선거 때 누구를 뽑아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나마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그들은 투표에 참여한다.  

또한, 7~80년대에는 고교 졸업생의 30% 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생의 수가 적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고 적극적으로 시국에 참여할 명분이 생겼다. 하지만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 시대에는 대학생이 더 이상 지식인으로서의 특권과 사명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이라는 책을 읽으며, 불의에 저항하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사색했던 전공투 시대의 대학생들을 부러워했다. 그 당시에 불의에 항거하며 수업과 시험을 보이콧했던 학생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토익책과 각종 수험서를 들고 도서관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20대들의 잘못일까. 지금의 학생들과 3~40년 전의 학생들을 비교해보면, 분명 지금의 학생들이 과거의 학생들보다 공부를 안하거나 무능하거나 게으르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갈수록 경쟁은 심화되고 여기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들에게, 세상의 불의에 대항할 용기와 힘은 이미 고갈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저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매스컴 등에서 보여지는 '이상적인 가족'의 허상을 지적한다. 정말이지 그런 것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소통이 활발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범적인 중산층 핵가족은 의외로 흔하지 않다. 하지만 저런 이상적인 가족상을 접하면서 우리 집은 대화가 없으니까, 편부(모) 가정이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그 외에 많은 이유로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가정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가족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는 한 학생의 말이 수긍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나의 가족들 역시 모두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싸울 때는 싸우고 때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90년대부터인가 폭압적인 교육에 반기를 들고 생겨난 '열린 교육'에 대해서도 저자와 학생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역시 크게 동감한 부분으로, 열린 교육은 가만히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무조건 손을 들고 발표를 해야 했고, 조용히 있을 자유나 혼자 생각할 자유를 박탈했다. 폭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입 닫고 가만히 있을 의무를 강요했다면, 열린 교육은 무조건 말해야 하는 의무를 강요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은 초중고교 시절보다도 오히려 대학교 때로, 당시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는 프리젠테이션 같은 것을 해야 하는 발표나 스피치 같은 것이 참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때로는 영어로)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고, 사람 많은 데서 말 못하는 사람은 학교도 못 다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과 일종의 분노가 몰려왔었다. 확실히 나는 말을 잘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껴봤을 다이어트나 외모관리, 패션에 대한 일종의 암묵적 압박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참 반가웠던 것이, 사람들은 왜 다이어트를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의식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고도비만으로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된다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맞지만, 그저 약간 통통할 뿐인데 매스컴 등에서는 자꾸 마른 체형을 찬양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뚱뚱해 보이게 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외모관리나 성형 역시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취업이나 연애 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관리'가 안되는 사람으로 매도당한다. '자기관리'라는 것도 결국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남들이 많이 입는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으면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일까봐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이 지나게 될, 그래서 입지 않게 될 옷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지향적인 풍조는 최근에 들어 더욱 심화된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몇십년 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데도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것 역시 소비를 부추기는 풍조에서 비롯된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부모님 등골 안 빼먹으려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더라도 대부분 시간당 4천원 남짓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공부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돈이 없다면 자유마저 빼앗겨 버린다. 여기서 '자유'의 개념은 내가 소비자로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정치적 자유가 아닌 경제적 자유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청년들의 불꽃과도 같은 열정은 그것이 교환가치가 없으면 '잉여들의 삽질'로 치부되고, 교환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업 구조에 의한 착취를 당하고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는 일종의 노예로 전락한다. 자본이 착취하거나 교환할 수 없는 것은 '순수한 유희'뿐이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제목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부터가, 이것도 엄연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일종의 반란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그동안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했던 많은 것들이 이렇게 공론화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차마 못 하던 말을 대신 해준 것만으로도 아주 후련할 지경인데, 너희 탓이 아니라고, 너희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등장하는 화두들 모두 그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뭔가 상당히 불합리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판을 뒤집어 엎을' 힘이 없으니 많은 20대들이 그저 마음속에 묻어놓고 있었던 것들을 저자는 밖으로 꺼내서 공론화시키고 함께한 수많은 학생들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대학 서열화, 취업중심의 대학교육, 20대의 탈정치화, 열린 교육, 가족 해체, 강요된 자기관리, 소비지상주의 등 지금의 20대들이 직면한 현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학생들과 함께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이러한 담론들이 활발히 형성되고 많은 사람들의 자각이 따라야만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이 바뀐다. 그렇게 시작하여 판을 뒤집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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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2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진짜 읽고 싶네요. 글 속 내용들이 너무 공감이 갑니다.
교고쿠도님의 감정처럼 이 책 읽고 속 시원한 느낌 한 번 받았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교고쿠 2010-11-21 16:51   좋아요 0 | URL
분명 옳지 못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20대들에게는 판을 뒤집을 힘이 없기 때문에 그저 다들 마음속에 묻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그런 그들의 탓을 하지 않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